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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28. 2020

한국 정전협정의 군사분계선에 관한 고찰 #1(프롤로그)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의 MDL Project를 중심으로

I. 프롤로그  

   

  해병대와 육군은 같은 지상군이면서도 부대 임무와 특성의 차이로 인하여 상호 배타적인 작전환경이 있다. 육군이 해병대의 상륙작전에 관한 경험을 할 기회가 없다면, 해병대는 육군의 비무장지대 작전에 관한 직접적인 경험을 할 수가 없다. 1990년대 중반 필자가 해병대 소총중대장 근무를 마치고 국방대학원 군사전략 석사 학위 과정에 입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 육군 중령이셨던 전공학과의 정모 교수님께서 비무장지대의 폭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필자에게 물으셨다. 주변에서 여러 육군 동료들이 조그만 소리로 귀띔을 해주었다. 그러나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가, 한반도를 동서로 횡단하는 155마일의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을 기준선으로, 남쪽으로 남방한계선(SBL: Southern Boundary Line)까지, 북쪽으로는 북방한계선(NBL: Northern Boundary Line)까지 각각 2km씩 총 4km의 폭으로 형성되어 있는 실상을 직접 관찰하거나 군사지도 상으로라도 접해 본 경험이 없었던 필자에게는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육군 출신들이 들으면 장교로서 기본 소양이 없었던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임관 이후부터 소총중대장 보직을 마칠 때까지 6~7년간 포항에서 상륙작전 위주의 교육 훈련에만 전념했던 필자에게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그리 친숙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던 중 30여 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유엔사 군정위 한국군연락단에 근무하게 됨으로써, 유엔군사령관 관할 구역인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방한계선까지 이르는 남측 비무장지대의 전체 지역에서 백여 회에 걸쳐 유엔사 군정위 소속 인원들과 함께 비무장지대 점검 및 특별조사 활동에 참여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글은 당시에 참여했던 유엔사 주관 MDL Project에 관한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작성한 것이다.


  이 글의 구성은 문제의 제기, 군사분계선의 법적 지위와 그 위치에 관한 논의, 유엔사 군정위의 MDL Project 배경과 그 결과, 그리고 맺음말 순으로 되어 있다. 이 중 MDL Project에 관한 부분에서는, 정전협정 원본 지도에 도식된 MDL의 추출과 그 표식물의 직접적인 측량과 관련하여, 비전문가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용어와 명칭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것은 당시 MDL Project를 담당했던 팀 구성원들의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기법과 관련 활동,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를 독자들에게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함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군사분계선 지도@이문항, JSA-판문점(1953-1994)


II. 문제의 제기 


  2018년 4월과 6월에 각각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북·미) 정상회담으로 인하여 국내외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었다. 연이은 정상회담에 이어서 곧바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개최되었던 미·북(북·미) 정상회담의 협상 결렬로 인하여 또다시 예측하기 어려운 안보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2019년 4월에 개최되었던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북한 최고 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 결과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이 원하는 북핵 문제 해결과 북한이 원하는 대북제재 완화는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4·27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의 하나로 비무장지대에 설치 운용하였던 쌍방의 일부 초소를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폐쇄하기는 했으나, 판문점에서의 상호 자유 왕래와 안보견학 추진은 남·북·유엔사의 3자 협의 과정에서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욱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을 포함한 협정 체결 쌍방의 협의 절차와 과정도 필요하다. 따라서 그 이전 단계에서 양측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로써, 더 나아가 평화협정 체결 시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대체하기 위해서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이것은 바로 6·25 전쟁의 막바지 단계에서 유엔사와 조·중 측의 합의에 따라서 체결된 정전협정에 명시되어 있는 남·북 군사분계선의 실질적인 위치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다.


  유엔사 군정위에서는 군사분계선의 위치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는 필요성을 다음의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였다. 첫째, 현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군사분계선 표식물의 수가 충분하지 않으므로, 이것만으로는 비무장지대 내에서 적대 병력을 분리하는 선으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전협정 체결 시 양측은 정전협정 원본 지도상에 그어진 군사분계선을 따라서 1,292개의 군사분계선 표식물을 설치하고 이것을 기준으로 적대 중인 병력을 분리하도록 합의하였었다. 그러나 2015년과 2016년에 걸쳐서 유엔사 군정위 측에서 조사해 본 결과에 의하면 최초 설치하였던 군사분계선 표식물 1,292개 중에서 181개 정도만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군사분계선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1953년 정전협정 원본 지도를 지금 사용하고 있는 현대 측지계로 바꾸어 보려는 작업을 단 한 차례도 해 본 사례가 없었다고 한다. 유엔사 군정위 자료에 의하면 정전협정 원본 지도상 군사분계선을 현대 측지계로 변환할 경우, 발생 가능한 오차는 1:5만 축적 지도의 오차 100m, 지도와 실제 지형 간의 오차 100m, 정전협정 원본 지도상 1mm 두께의 펜으로 그어진 군사분계선의 폭 50m 등 최대 250m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한 양쪽의 노력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셋째, 현재 유엔사 측에서 파악한 군사분계선에는 최소한 다섯 개의 유형이 있다. ①1953년 7월 27일 서명한 한국 정전협정 원본 지도상 군사분계선, ②유엔사 군정위 조사반에서 사용하고 있는 구글어스(Google Earth) 상 디지털 군사분계선, ③미국 국립지리정보국이 사용하는 디지털 군사분계선, ④한국 국방지형정보단이 사용하는 디지털 군사분계선, ⑤비무장지대의 한국군 전방 초소인 GP와 OP에서 실제로 인지하고 사용하는 군사분계선이다. 따라서 유엔사와 한국군이 공동으로 인정하는 명확한 군사분계선의 위치를 규정하고, 적절한 시기에 북측과 합의하여 군사분계선의 위치 오해로 인한 군사적 충돌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유엔사 주관으로 3년에 걸쳐서 시행되었던 MDL Project 결과이다.


  정전협정 원본 지도상 군사분계선과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사 측에서 인식하고 있는 군사분계선의 오차를 최소화하고, 남·북 간 상호 합의된 군사분계선 위치를 규정할 수 있다면 양쪽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은 물론,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때 국경선을 어디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미리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유엔사 군정위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회에 걸쳐서 한국과 미국, 그리고 영국의 지형정보분석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 정전협정 원본 지도의 군사분계선 위치를 추출하였고, 지상에 설치된 군사분계선 표식물을 측량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2016년 5월 유엔사 군정위 대표 5명이 보증하는 군사분계선 위치를 규정하였다. 유엔사 군정위는 2014∼2016년에 걸쳐서 실시한 군사분계선 프로젝트(MDL Project)를 통하여 정전협정 원본 지도상 군사분계선을 현대 측지계로 변환한 좌푯값 23,954개를 추출하였고 식별 가능한 군사분계선 표식물 181개의 좌푯값을 측량하였다. 이 자료를 활용하여 유엔사와 한국군이 사용하기 위한 명확한 군사분계선의 위치를 먼저 규정하고, 이것을 토대로 비무장지대 내에서 군사분계선의 모호함으로 인해 발생 가능한 남·북 간의 우발적 충돌을 예방함으로써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하여 남․북 간 합의된 군사분계선 위치를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향후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경우, 이것을 참고하여 국경선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전협정의 정식 명칭은 ‘국제련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 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공 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Agreement between the Commander-in-Chief, United Nations Command, on the one hand, and the Supreme Commander of the Korean People’s Army and the Commander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on the other hand, concerning a Military Armistice in Korea)’이다.
정전협정 체결 시 군사정전위원회는 유엔사 측과 조·중(朝·中) 측으로 구성되었으나, 현재는 유엔사 측 군사정전위원회와 북측 판문점 대표부가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글에서 유엔사 군정위는 유엔사 측 군정위를 의미한다.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을 연해서 설치된 GOP(General Out Post: 일반전초) 철책을 기준으로, 철책보다 북쪽에 위치하는 초소는 GP(Guard Post: 경계초소), 철책보다 남쪽에 위치하는 초소는 OP(Observation Post: 관측소)라고 칭한다. 유엔사 규정 551-4(한국 정전협정 준수).
영국은 남·북한 양측과 모두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유엔사 군정위의 프로젝트에 영국이 참여함으로써 공정하고 정확한 자료를 도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북측의 동의를 얻기에 수월할 것으로 예상할 수도 있다.
2016년 5월 당시 유엔사 군정위 대표는 수석 대표 한국군 소장, 미국 대표 미군 소장, 영연방 대표 영국군 준장, 한국 대표 한국군 준장과 순환 대표 뉴질랜드군 대령 등 5명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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