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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Feb 05. 2017

남의 집 도서관 3

마치며

자고 일어나니 속이 안좋다. 몸살 기운도 돈다. 도서관 운영 마지막 날이라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건만 수많은 날 중 하필이면 오늘. '그냥 쉴까?' 싶었다가도 나 아니면 도서관을 운영할 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영업을 하면 몸도 마음대로 아플 수 없구나. 예약한 분들께 전화해서 양해를 구하고 취소를 할까도 생각했는데, 운영 초기부터 당일 취소는 아니다 싶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실 청소며, 책 정리 등등을 마치고 손님맞을 준비를 마쳤다. 시간이 좀 남아 침대에 누워 겔겔거리며 '손님들이 취소해 주셨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거의 다 왔어요~'



남자2, 여자2. 균형잡힌 성비로 도서관 운영을 시작했다. 희안하게도 손님들을 마주하니 몸상태가 호전된다. 상황에 맞춰 몸이 되살아 나는 느낌였다. 그래도 호스팅에 큰 에너지는 쓰지 않기로 했다. 원래 오늘은 어제와는 달리 손님들이 책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게 운영하려고 했는데 컨디션도 딱 그 정도만 가능한 상태였다.



말을 최소화하고 손님들이 원하는 음료와 먹거리를 채우는 정도만 유지하며 도서관을 운영했다. 그러곤 나도 주방에 앉아 책을 보거나, 글을 끄적였다. 그렇게 손님들이 책을 읽을 동안 나도 다른 소일거리 등등을 아주 생산적으로 해낼 생각이었다. 못해도 책 2~3권은 뚝딱 해치우겠지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손님들이 불편한 건 없는지, 더 필요한 게 있나 살피다 보면 시간이 금새 지나있다. 내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 비디오가게 아저씨를 보며 '영화를 실컷 보겠구나.' 싶었고, 커서는 카페를 차리면 손님없는 한적한 시간에 독서며 글을 쓰며 '우아하게 짜투리 시간을 보내겠구나.' 했다. 근데 막상 해보니 손님에 신경쓰느라 그럴 여유는 없더라. 혹여나 그런 여유가 생긴다면, 손님이 없다는 방증이고, 그러면 뭐 금방 망할테니 여유롭게 자영업을 한다는 생각자체가 어불성설이구나 깨달았다.



어제도 본 광경이지만 또봐도 신기했다. 남의 집 거실에 처음보는 남남이 모여앉아 책을 읽고 있다니. 이런 공간에서 책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그들도 내가 신기할테지. 모르는 이들을 집에 들여 책보라 하고, 마실거며 먹을 거리를 챙겨주는 이 남자. 무슨 생각으로 저러고 있나 싶을게다.


남의 집 도서관에 대한 만족도가 궁금했던 나는 손님들을 배웅할 때마다 이용후기 작성을 부탁드렸다. 구글 설문으로 만들어 전달해 드렸는데 적잖이 긴 설문였음에도 대부분의 손님들이 정성스럽게 답변을 해주셨다. 남의 집 도서관 이용 후기를 아래에 정리해 본다.

 







기획에 대한 호기심과 공간에 대한 만족감이 후기에 담겨 있어 뿌듯했다. 감사와 응원의 글은 마음에 묘한 동요를 일으켰다. 공간, 책, 먹거리 모두 내가 전해드렸지만 손님들로부터 그 이상의 것을 받은 느낌이랄까. 베풀수록 풍족해진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실물로도 얻은 게 적지 않았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한손, 혹은 두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오셨다. 같이 먹을 간식부터 자취하는 두 남자를 배려한 과일 선물까지. 어떤 분은 맥주를 한가득! 남의 집 도서관 기획 당시 어떤 식으로든 유료화를 꾀해볼까 싶어 책정했던 객단가(?)가 있었는데 그것보다 높은 값어치의 실물들을 전해주셨다. 애매하게 입장료 혹은 음료비용을 받았다면 접하지 못할 경험이다.


남의 집 프로젝트는 거실을 통한 수익모델 발굴을 목적으로 시작되었고, 그 기획 아이템 중 하나가 도서관였다. (물론 발단은 설연휴의 무료함 때문였지만) 도서관을 찾은 손님들은 대다수 만족했고, 호스팅했던 나의 만족도 역시 높았다. 이 프로젝트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내가 조건없이 베풀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기획의도는 남의 집에서 책을 보는 것에 한정되었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주인장이 거실도 내주고, 책도 빌려주고, 마실 것도 끊임없이 내어주는 그 무형의 서비스를 받은거다. 그것도 공짜로.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은 손님들은 어떤 식으로든 호스트에게 보답하길 원하게 되고, 그 결과 나에게 선물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게 아닐까 라는 가설을 세워보았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앞으로 남의 집 프로젝트에 선물 경제학의 프레임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수익화의 실마리를 잡아볼까 한다. 무료함을 달래려 기획한 도서관 프로젝트였는데 예상 외의 인사이트를 얻게 되었다. 역시 실제로 움직이고 부딪혀 봐야 생각이 트이는 것 같다. 생각만 하면 생각이 안나고, 뭐든 해봐야 생각이 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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