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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주 Jan 25. 2023

얼음 위에 무엇이…

“여보, 저기 얼음 위에 뭔가가 움직여.”

휴대폰과 컴퓨터의 영향 때문에 시력이 많이 약화된 눈으로 보니 얼어붙은 유수지 위에 무엇인지 움직이는데 확실한 감이 잡히지 않는다. 

때는 어제저녁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집 뒤에 위치한 ‘달빛공원’의 ‘스윙체어(그네의자)’와 ‘컨벤시아교’로 이어지는 수변 길을 통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간은 7시 40분, 짧은 해로 인하여 가로등이 밝혀주는 산책길 외는 어둠에 잠겨있어 약간의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 물체가 희미하게 보인다.  움직이는 물체가 무엇인지를 식별하러 앞으로 나아간다. 


오랜만에 아파트 단지의 운동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허리가 굳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양손 무릎 잡고 등 구르기와 ‘폼 롤러(foam roller)’를 등에 대고 구르기 등 스트레칭을 하는 중 휴대폰이 울린다. 치과에 갔던 아내다. “여보, 나 지금 스케일링 치료 끝났으니 우리 산책가요. 해 떠있을 때 산책하고 싶네.”한다. 나는 “나 방금 운동실에 왔는데.”라 대답하니 아내는, “당신 거기서 간단히 웨이트 운동만 하고 걷기 운동은 나하고 하면 되잖아.”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아내 말 잘 들어야 만사가 편안하다는 것을 깨우친 나는, “오케이, 간단히 하고 들어갈게.”하였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러 ‘달맞이공원’으로 향할 때는 어느새 다섯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직은 해가 있어 상쾌한 기분으로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산책을 시작한 지 2~30분이 채 되지 않아 시장기가 느낀다. 산책길에서 벗어나 공원에 인접한 ‘더프라우아파트’ 단지 맞은편 상가의 2층에 있는 ‘엄마 밥집’이라는 식당에 갔다. 뷔페식의 한식을 파는 곳인데 후덕한 주인아주머니가 집 밥처럼 음식을 장만하여 파는 곳이라 갈 때마다 정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파김치, 신배추김치, 갓 담은 배추김치 무김치 외에 도토리묵, 콩나물무침, 고등어조림, 돈가스 등 반찬의 종류만 10여 가지가 넘는다. 음식을 조금씩 담으려 노력하나 음식을 담다 보면 큰 접시에 그득하다. 아내와 나는 반찬을 담은 접시와 국과 밥을 담아와 차려 놓으니 식탁이 가득 찬다.  주인아주머니는 누룽지라고 한 공기씩 퍼다 주신다. 후덕한 아주머니의 인심에 조금만 먹어야겠다는 다짐은 어느덧 사라지고 배가 부담이 될 정도로 먹었다. 아내도 나와 마찬가지로 평상시 양보다 많이 초과했다. 부어오른 배를 안고서 1층으로 내려와 ‘She's Bagel Coffee’라는 카페에서 카페라때 샷추가 1잔을 시켜 둘이서 나눠 마셨다. 카페에서 나와 다시 ‘달빛공원’의 산책길에 들어선다. 둘의 아지트처럼 된 ‘스윙체어’까지 걸어가다보니 더부룩하였던 배가 정리가 되었다.


‘스윙체어’에 앉아 각자 휴대폰에 온 카톡을 체크하고, 딸에게서 온 손주 동영상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15여분  후, 날씨가 추우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는 나의 제안에 아내는 동의하여, 우리는 '스윙체어'를  나와서 '켄벤시아교'로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야간 조명이 켜져 있는 테니스장을 지나면서 다리 밑 유수지를 내려다보니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나빠진 시력으로 무엇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 분명히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고양이인 것 같아 고양이가 멀리도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고양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보다 덩치가 크다. 전에 산책을 하면서 몇 번 봤던 괴생물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보니 고양이도 아니고 개도 아닌 것이 산책길 옆에 있는 숲에서 유수지 쪽으로 뛰어가는 것을 여러 번 봤지만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너구리가 자주 출현한다는 말이 있어 너구리인가 보다 생각하고 아내에게, “여보 저거 너구리야!”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신 있게 말하였다. 하지만 일단은 가까이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가까이 가서 보니 길이가 4~50cm 정도, 다리는 짧고 뚱뚱한 물체가 얼어붙은 유수지 위에서 수변에 있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가로등 빛으로 생물체의 윤곽이  자세히 보인다. 분명 우리가 있는 것을 알아챘을 것 같은데 전혀 두려움이 없다. 자세히 보니 꼬리는 둥글게 말려있고 흰 주둥이가 약간 돌출되었으며 얼굴은 흰색이며 눈 둘레가 검다. 책에서 보았던 너구리가 틀림없다.

“여보 너구리가 맞아. 쟤는 겁도 없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네. 빨리 사진 찍어봐.” 하였다. 내 말을 듣고서 아내는, “맞네, 그런데 사진을 뭐 하러 찍어.”하였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너구리를 찍기 시작하였다. 몇 장을 찍고서 아내를 보니 아내도 휴대폰을 꺼내서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었다. 

갈라진 얼음에 머리를 박고서 무언가를 먹고 있는 너구리

달려오던 너구리는 수변에 있는 깨진 얼음 사이를 뒤져서 밑에 있는 무엇인가를 우적우적 먹는다. 한 참 먹은 후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저놈이 겁도 없이 우리에게 덤비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생겼지만, “짐승들은 배고프지 않으면 자신보다 덩치가 큰 생물에게는 함부로 덤비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생각이 나고,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아내에게 겁쟁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 눈을 부릅뜬 채 주먹을 쥐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가 있는 것을 알아챈 너구리는 우리 곁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으로 나와 우리를 힐끗 쳐다본 후 이상한 괴음을 남기고서 수변의 갈대밭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달아나는 너구리가 매우 고마웠다.

아내가 촬영한 너구리


집에 돌아온 아내는 너구리의 동영상을 가족 단톡방에 올리자 즉각 딸들에게서 답변이 왔다. 작은딸은 “헐”하는 간단한 반응을 보였으나, 큰딸에게서는 “너구리가 사람을 물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쟤네가 고양이도 잡아먹는데 ㅠㅠ . 불쌍하다 춥겠다.”라는 답변이 왔다.. 


내일은 두 손주를 돌보기 위해 작은딸 집에 가는 날이니 일찍 일어나야 한다.  11시가 되어 잠자리에 들어갔다. 한참 잠을 자다가 악몽에 시달려 깨었다. 요즘은 꿈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직장에서 나를 괴롭혔던 임원들이 다시 나타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니 정신이 초롱초롱하다. 시계를 보니 2시가 조금 넘었다. 예전 힘들었던 시절과 그 사람들에 대한 안 좋았던 감정에 휘말려 잠이 다시 오지 않는다. 아내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주방에 들어가 물 한잔을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와서 잠자리에 들어와서 잠을 청해도 잠이 들지 않는다. 두 시간 정도 안 좋은 감정에 시달리다 다시 잠이 들었다. 이번에는 어제저녁에 보았던 너구리가 나타나 공원에서 산책하고 있는 나를 졸래졸래 따라오고 있다. 나는 작은 돌멩이 몇 개를 주워 던지면서 가라 하지만 계속 따라오고 있다. 나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이놈은 강시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나를 따라온다. 도저히 이놈을 달리기에서 이길 수가 없다. 나는 마주쳐서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섰다. 바로 앞에 있는 큰 돌을 주워서 이놈을 이것으로 제압하리라 다짐을 한다. 아 그런데 뒤에서 누가 내 엉덩이를 꽉 문다. 뒤돌아보니 또 한 마리의 너구리가 내 엉덩이를 물고 있다. “아~~ 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하고 악을 쓰니 누가 옆에서 엉덩이를 쿡 찔러 온다. “여보 왜 이래. 또 꿈을 꾸는 거야?”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휴 또 이런 꿈이...” 하면서 시계를 보니 5시 40분이다. 5시 20분에 맞춰 논 알람을 못 듣고 둘이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 빨리 준비해. 10분 내로 출발해야 해. “ 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부랴부랴 옷을 입고 화장실에 들러 서재방으로 가서 어젯밤에 챙겨놓은 백팩(backpack)을 메고서 나오니, 아내도 옷을 차려입고 어젯밤에 꾸려놓은 자기의 가방을 들고서 나온다. 딸은 새벽에 회사로 출근하므로 우리가 늦으면 두 손주를 돌보고 있는 사위가 엄청 고생하고 회사에 지각을 하게 된다. 황급히 차를 몰고서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있는 딸 집을 향해 출발한다. ‘제3경인고속도로’ 진입 직전에  어제 너구리를 보았던 ‘컨벤시아교’의 아래가 보인다. 밑을 내려 보면서 마음속으로 외친다.

”너구리야,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 

컨벤시아교에서 스윙체어로 이어지는 산책길(너구리 발견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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