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
밑은 쳐다보지 말고, 뒤는 돌아보지 말고, 달려 나가자
영화 <엑시트>
소문대로 훌륭한 영화. 빅배급사가 매년 여름마다 내놓는 흥행밀어주기 영화들은 대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영화는 볼 생각도 안 했지만 엑시트는 –늦은 감은 있지만- 시간 내서 봤다. 그렇게 본 만큼이나 좋아서 좋았다.
<엑시트>와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재난영화를 싫어한다. 한국영화만 그런 건 아니고 재난 장르가 싫다. 물론 한국재난영화가 제일 싫음. 배후의 정치권력이 불러 일으킨 재해, 속수무책으로 이용당하는 소시민, 그 속에서 홀로 하드캐리하는 영웅(보통 남성 가장의 얼굴로). 놀라울 정도로 고정된 캐릭터와 서사와 함께 ‘재난’에 대한 고찰과 문제의식보다는 스펙터클 구성에 집중하는 영화들이 2000년대 이후 우후죽순 쏟아졌다.
재난영화에 느끼는 불편함은 여럿 있는데. 매번 말하는 수동적 캐릭터들이 하나이고 ‘재난’을 영화로 재현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이 마땅히 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하는데에서 비롯한 아쉬움이 하나이다. 엑시트는 우선 재난현장을 하나의 무대로, 화려한 스펙터클로 구성하지 않는다. 감독의 인터뷰를 먼저 확인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카메라 프레임 밖의 피해자들을 구태여 끌어들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엑시트는 "탈출하기"에 집중한다. 그래서 더부룩하지 않다.
재난을 가운데에 두고 선과 악을 대비시키는 건 흔한 구조이다. 이럴 때 선은 영웅 한 사람의 얼굴이 된다. 엑시트는 절대선의 권력이 아닌 자잘한 구성원들의 연대를 이야기한다. 가만히 보면 기존의 재난영화였다면 주인공 용남이 할법한 일을 엑시트는 다른 인물들에게 배정한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권력을 갖지도, 그와 같은 의미로 고립되지도 않는다.
재난 탈출 상황에서만 봤을 때, 로맨스가 없는 혼성 듀오 자체가 신선하다. 누가 누구를 지키거나/ 위험한 상황에 한 명을 빠뜨려놓고 다른 한 명이 어떤 걸 포기해서 그 사람을 구하는 상황이 없어서 좋았다. 소위 '민폐'라고 하는. 각자의 능력이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놓여진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티키타카가 지루하지 않다. 콧물 흘리며 찔찔하다가도 일단 달리고 보는 두 사람. 내가 생각하는 일상연기 갑 조정석이 또 해냈고 그 에너지를 소화하는 윤아에게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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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구조 헬기 장면에서 윤아의 의주를 보고 엔드게임의 나타샤가 떠올랐다. 나타샤가 호크아이를 대신해 희생할때 말한 건 그에게는 지킬 가족이 있다는 것이었다. 가족의 정상성을 지키기 위해 대신 희생되는 개인(가정을 구성하지 않은, 그래서 책임을 덜 져도 된다고 판단되어진)으로 다가왔고. 가련하고 로맨틱한 희생이 잔인하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의주의 선택은 비슷한 상황이면서도 다르다. 의주는 부점장이라는 자신의 직업적 소명,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선택한다. 의주가 구출한 사람들은 가족이 아닌 손님이다. 영화는 의주의 선택을 선한 희생으로 얼버무리지 않는다. 그러는 동시에 의주에게 말할 시간을 준다. 찔끔 울며 나도 먼저 타고 싶었다고 말할 때, 의주는 자신의 선택을 마주한다. 영화는 희생을 감내하게 하지 않으며 무책임하게 신화화하지 않는다. 나타샤의 말을 듣지 못했던 아쉬움과 슬픔을 뜻밖이지만 의주에게서 위로 받았다.
용남 캐릭터 역시 - 가족~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으니 탈출해야해!~라는 플래시백 차라라한 신파장면이 나올법한데도 이렇게 진행하지는 않는다. 두 사람에게 중요한건 의무감, 부채감보다는 자신의 탈출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맘놓고 오로지 두 사람의 탈출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엑시트에 관해 들었던 재밌는 이야기는 영화가 교육적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유행하는 "따따따"부터 응급 침상, 지하철 장면까지.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재난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재난영화에게 교육적이라는 말은 엄청난 칭찬이 아닌가. 가족영화로 불려도 충분히 적절하지 않나.
이번에도 CJ ENM을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17,18년 ‘씨제이 감성’의 참패를 맛보고 난 뒤 19년부터 움찔거릴 정도로 잘 뽑아내고 있다. 각성(?)이후의 영화들을 다 챙겨본 결과,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게 확실하다. ‘씨제이 감성’이라는 판(덫이었던 것인가..)을 만들어놓고 다른 영화들이 다 따라하게 만든 후 유유히 그 판을 빠져나갔다. 상업영화의 못된 버릇(을 만든데에는 어쨌든 자신들의 역할이 크지만) 대신 ‘지금 당장의’ 감각을 넣는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CJ의 다른 문화콘텐츠 영향력을 유쾌하게 이용했다. 병 만들고 약 뿌리기인가 싶다가도 병만 주고 있는 영화들도 아직 많은 걸 생각하면 제일 몸집이 크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의 변화는 반갑다. 하반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