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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cute)

칼럼

by 바람

'귀여운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읽지는 않았지만, 역시 진화론을 심리학과 사회학이랑 짬뽕시킨 이론이겠거니 생각해본다. (읽은 사람은 DM으로 후기 좀 알려주라.)


귀여움에 관한 사례 몇 가지를 적어본다.


1. 똥개


"똥강아지, 똥개"


"우리 똥개 뭐하니."


"똥강아지 어딨니."


모친과 부친이 어렸을 때부터 나를 이렇게 부른다. 나는 분명 고귀한 사람인데, 왜 나를 강아지(dog) 취급하는걸까. 애칭이라고 하더라도, 난 다른 별명이 더 좋은데. "청룡" "백호" 이런건 안되나. 부모가 상처 받을까봐 어렸을 때부터 마음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2. 용규쨩


중학교 때 애들이 맨날 나보고 이렇게 부른다. 동성보다 발달 속도가 느리고, 얼굴도 더 어려보여서 분명 동갑인데, 나보고 자꾸 귀엽다고 한다. 내가 왜 귀엽다는 거지. 나랑 너는 분명 같은 나이이고, 같은 학교인데. 어떤 놈은 내가 너무 귀엽다며 막 안아준다. 윽. 그만해, 제발.


같이 수학 보습 학원을 다니며, 나를 존중해주던 M이 어느날 이런 말을 했다.


"용규야, 너 사실 귀엽다는 말 안좋아하지. 뭔가 그래보여."


"응 맞아. 넌 나한테 안그러잖아. 항상 고맙게 생각해."


3. 카와이


고등학교 때도 항상 듣는 말. "카와이네." "커엽누" "귀엽다, 너." "둘리 닮았어." "무민 닮았어."


왜 자꾸 나를 귀엽다고 하는거지. 나보고 왜 둘리랑 무민 닮았다고 하는걸까. 난 장첸이나 갱스터들이 더 좋은데. 나랑 너는 같은 나이이고, 나도 어엿한 고등학생인데. 왜 나를 아기 다루듯이 다루는거지.


4. 군대


"으ㅡ으으으 이요요요용규 확 뽀뽀해버린다."


동기들이 장난으로 많이 그런다. 그들만의 애정표현이다. 싫진 않지만, 그렇다고 100% 좋지도 않다. 난 너희한테 뽀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왜 나한테 뽀뽀하고 싶다는 걸까.


5. 교회


작년에 아카라카 때 타투 스티커를 팔았다. J가 만들었고, 동생 Y랑 H 누나랑 팔았다. 하필 그날 토요일 교회 제자훈련이랑 겹쳐서, 응원복에다가 얼굴에 타투 스티커를 붙이고 갔다. 교회에서 목사님이랑 형, 누나들이 귀엽다고 한다. 난 속으로 되뇌인다.


"난 하나라도 더 팔려고 얼굴에 스티커를 붙이고, 꾸민 것 뿐인데 왜 나한테 귀엽다고 하는걸까. 그들의 애정표현은 알겠지만, 난 분명 민법상 당신들과 다를게 없는 성인인데. 왜 자꾸 나를 '강아지', '애기' 취급하는걸까."


6. 연애


연애할 때도 다 누나들이랑 했는데, 나보고 자꾸 귀엽다고 한다. 내가 볼 때 정신연령은 별 차이 없어보이는데, 그녀들은 뭔 생각을 하면서 사는걸까. 그래 그럴 수 있지.


7. 인턴


인턴할 때 Y과장님이 계셨는데, 뭔가 여자 무민같은 분이다. 근데, 그분이 되게 친절하시고, 섬세하시며, 따뜻하시다. 회계검증 하는 도중에 나에게 우체국 등기 심부름을 시키셨다. 과장님 카드 들고 우체국에 갔다. 근데, 과장님이 빠른 등기로 부치라고 했는지, 일반 등기로 부치라고 했는지 말을 안해주었다. 전화를 했다.


"과장님, 저 이용규 인턴입니다. 그 등기를 무엇으로 부쳐야 하는지 몰라 많이 난처한 상황입니다. 빠르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피식) ㅋㅋ 빠른 등기로 부쳐주시면 되어요 :)"


퇴사 전날에 팀 여성 직원분들이랑 중화요리 집에서 식사를 했다. 난 분명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데 차장님이랑 과장님이 자꾸 뿜는다. 음.


8. 병원


정기적으로 트라우마 치료와 수면제를 타기 위해 1달에 1번 병원에 간다. 내가 이러쿵 저러쿵 말하면 의사 선생님이 자꾸 웃으신다.


"똥개가 짖어도 기차는 갑니다, 이용규씨. 싫은 건 싫다고 말하세요."


똥개. 왜 이 사람도 나한테 똥개라고 하는걸까. 멍멍!!!


내 나이가 벌써 반 50. 25살이다. 자꾸 귀엽다는 소리 듣는거 싫다, 이제. 난 멋지다는 소리 듣고 싶다. 미안하다. 찡찡거려서. Cute보다는 nice. Pretty boy보다는 gentleman이 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제는.


p.s. 칼럼 메인 이미지 첫번째는 민수와 나의 고1 수학여행 사진. 민수랑은 풋살할 때 종종 본다. 멋진 친구다. 두번째 사진은 요즘 산책할 때마다 보이는 '노견'이다. 음. 나보다 저 녀석이 귀여워 보인다. 가끔 마주치는데, 뭔가 삶에 지쳐보여 측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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