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희사(慈悲喜捨)
(그림출처: 구스타프 클림트, <여인의 세 단계> 중에서 엄마와 아기)
무더위가 쉽사리 가시지 않다 보니, 매일 이른 아침이 자전거 타기 시간이 되어 버렸다. 한 주 내내 집안을 배회하는 강아지가 안쓰러워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고 강아지와 산책을 나선다.
워낙 공놀이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그늘로는 해결이 안 된다. 아침 햇살도 따갑긴 마찬가지... 조금 짜증이 올라오다, 이렇게 즐거워 연신 소리 지르며 공을 쫓아 뛰고 물고 오는 녀석의 이쁨에 짜증은 증발하고, 기쁨으로 불어온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사랑이다. 근데 이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기 위함이 아니지 쉽다.
사랑은 주고 기쁨을 얻는다고 해야 할까?
연민이 깃든 사랑이 자애라 했던가?
연민은 이해와 포용을 바탕으로 한다.
어머니가 주린 아기에게 젖먹이며 품고 있는 모습, 도파민, 엔도르핀을 넘어 행복호르몬 세로토닌보다 더 강한 옥시토신이 뿜어져 나오는 최상의 기쁨이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가만히 놓고 보면 그렇다. 노랫말처럼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기쁨이다. 줄 수 있어 기뻤는데, 더 이상 줄 수 없게 된 중년 이후에 우울증이 찾아든다 했던가...
그러다, 문득 서운함, 배신감까지 찾아든다.
내가 어려움에 빠진 저 친구에게 어찌해 줬는데, 내 새끼를 어찌 키웠는데, 어찌 내게 이럴 수가?
방하착(放下著)이다. 내려놓기가 안된 탓에 다시 스스로를 괴로움에 빠뜨리고 만다.
자비희사(慈悲喜捨).
자(慈), 사랑이다.
자애, 사랑은 자신에 대한 이해, 연민과 포용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괴롭히기 시작하면, 이웃과 세상에 대한 부정적, 비관적 마음이 자리하게 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고해 준 스스로를 격려하며, 끌어안아 줌에서부터 시작된 사랑은 이웃과 세상에 대한 자애로 점점 n승(Xⁿ)으로 배가 되어 퍼져 간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생각을, 마음을 바꾸는 것이란다. (법구경)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감사와 행복으로 다가오게 된단다.
비(悲), 슬픔이다.
다른 이의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 했던가, 진정으로 남을 이해하고, 그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희(喜), 기쁨이다.
여기서 기쁨은 나의 기쁨이 아니라, 남의 성공을 함께 축하하고, 기뻐해준다는 뜻이다. 슬픔을 함께 해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내 자식이 시험에 떨어졌는데, 경쟁자였던 친구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해줄 수 있을까? 도인이다!
사(捨), 버림이다.
더욱 힘든 과제다.
힘들게 이룬 성과를, 자리를 내려놓기란...
방하착(放下著), 그냥 자신이 쥔 걸 내려만 놓는 것(放下)이 아니라, 도왔다는, 베풀었다는 그 마음마저 내려놓는(着) 수행이다.
결국 진정한 사랑이란, 자기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하되, 아낌없이 줄 수 있고, 자신을 버릴 수 있어야 완결되니, 결국은 불이(不二), 나와 내 것에 대한 집착과 분별심을 버려야 가능할 듯하다.
S, Stop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멈추고 앉습니다.
T, Take three deep breaths
크게 세 번 깊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며 밖으로 나간 마음을 안으로 불러들입니다.
O, Observe
이제 명령하거나 생각하는 호흡이 아니라,
드나드는 호흡을 가만히 지켜만 봅니다.
P, Proceed with compassion
들어오는 숨을 따라 내 몸의 긴장이나 불안한 마음이 느껴지면
내 쉬는 숨을 따라 긴장을 풀어주고, 고통을 부드럽게 끌어 앉고 달래 줍니다.
들어오는 숨을 따라, 살아있음을 느끼고
돌아나가는 숨을 따라 삶을 가능케 해 준 모든 인연들에 감사와 사랑과 용서로 화답합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임을,
자비는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임을,
용서는 스스로가 과거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임을 깨달을 때,
고통은 사라지고
본래의 모습, 행복이 자리하게 되리라는 믿음으로 자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