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중, 아들과의 헤어짐
이번 헤어짐의 슬픔은 크게 다가왔다.
헤어짐 때문에 이토록 가슴이 아플 수 있는걸까?
상상도 못했다.
슬픈의 정도가 줄어들지 않고 지속되는 가운데..
가수 '해바라기'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보고싶어 볼 수없고, 가고 싶어 갈 수없는.. 영혼속에서…
'보석상자'라는 노래제목과
나에게 김세중이란 존재가 가진 의미가
표현하기 어려운 아빠의 감정을
노래 가사가 잘 표현해줘서 고맙다.
가사의 전후를 바뀐것은
나의 마음의 순서가 그러하기 때문.
2017년 4월 중순 필리핀 연휴기간 3박4일 동안
한국을 방문했다.
짧은 일정이었고,
하루는 부모님과 형, 삼촌 가족을,
또 하루는 보고싶었던 친구들을 초대해서 ..
알뜰하게 보냈다.
부랴부랴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너무많은 사람들을 갑자기 만나 즐거웠던
시간들이 짧고 굵은 추억을 남겼지만
정작 필리핀에 돌아온 뒤
기억의 울림이 메아리치는 사건은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아들과 마누라와 셋이서 함께 보낸 마지막 한 시간이었다.
나를 계속 아픔으로 이끌고 있는 마지막 한시간의 기억을 남기고자
키보드를 두드리고있다.
3박4일을 마치고 필리핀의 고온다습한 환경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를 방긴것은 예상대로 연휴간 쌓인 업무였고,
정작 내 마음은 세중이에게 향해있던 관성에 머물러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그리움.
과한 업무량 따위는 그리움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줄 진통의 수단 밖에 되지않았다.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서 가방의 선그라스를 꺼내어 끼기도 했다.
출장가는 택시안에서 창밖을 보다가 세중이가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가 하면
데스크 위에서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속 사진을 뒤적이며 웃고 또 울었다.
몸이 필리핀에 있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것을 느끼지만
나의 정신은 아직도 세중이와 작별인사했던 인천공항의 출국장 앞에 머물러있다.
출국장 투명한 유리에서 불투명한 유리로
유모차를 탄 세중이의 빠빠이하는 손이 사라지고,
그 상황에서 생겨난 애잔한 감정.
이미 떠나고 없는 세중이의 잔상이 남아있는 불투명 유리를 다시 보고, 허전함을 느끼며
앞으로 감당해야할 거대한 슬픔의 더미가 하얘진 머리속에서 증폭되는 것을 느끼며
미련을 갖은채 다른 세상으로 걸어가는 그 순간.
까지가 나의 기억이다.
세중이와 헤어지는 한시간의 과정에서 이상했던 부분이 몇가지 있었는데,
그 부분이 설명 되려면 세중이는 매우 조숙한 정신상태를 지닌 아가여야만 한다.
위로를 했던 것이 세중이고 위로를 받는 것이 아빠라는
이상한 방정식이 성립해야 그 한시간이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세중이는 아빠와의 이별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있는 듯했다.
그전에 아빠한테 땡깡 부리고, 크게 소리쳐 울거나, 짖궃은 행동은
한시간 속엔 없다.
아빠가 슬프니까 내가 어깨를 빌려줄께?
인천공항 2층에 위치한 잠바쥬스에서 세중이는 철제 파넬 뒤에 자꾸 숨었다.
세중이가 시야에서 사라졌을때,
저 파넬뒤로 갔는데 세중이가 없다면? 같은 끔찍한 상상을 했다.
그리고 바로 달려갔을때 세중이가 정말 없었다.
분주해진 내가 세중이를 발견한 곳은
파넬 넘어 또다른 파넬로 접혀진 작은 홈이었다.
숨바꼭질을 개념을 정확히 알고있는 세중.
정말 잘 숨어있어서 아빠가 발견하지 못했다.
나의 착각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세중이의 모든 행동들은
오늘 우리가 헤어져야한다라는 것을 마치 알고있는 것같았다.
나는 한편으로는 세중이가 아직은 이별의 개념을 모르겠지? 라고
생각했고, 잠이든 틈을 타 떠나버리고 세중이가 느껴야할 고통을 줄여주고 싶었다.
반면
자다가 눈을 떴을때 영문도 모른채 아빠가 사라진 상황은 만들고 싶지않았다.
배신감을 느낄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모습은 꼭 보여주고 싶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앞으로도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릴 지도 모르는
트라우마를 만들어낼지도 모르기때문이다.
불안이란 감정의 씨앗을 뿌려선 안된다.
배신이나 불안 따위의 감정을 세중이에게 남기고 싶지않았다.
선의일지라도..
그러나
세중이가 가지말라고 잡아도 잡혀줄 수없는 상황이 나에겐 큰 고문이었다.
난 세중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은 왠만하면 해주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세중이가 하고 싶어도 하게 해줄 수없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다.
잠바주스가 있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면 바로 출국장이 보이는데,
에스칼레이터로 내려가려고 하자 그때부터
세중이는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느새 1층에 내려와 있었고,
세중이는 출국장 앞에 서있는 나에게 안겼다.
심장과 심장이 만나 뛰는 것이 느껴졌다.
쿵쾅쿵쾅
세중이는 온몸으로 나를 안았다.
꽉안은 팔의 힘이 목덜미에서 느껴졌고,
내 허리를 감싸안은 다리의 힘이 느껴졌다.
세중이의 볼이 내 볼위에 포게졌다.
온몸으로 세중이의 존재자체가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내 아들이다 !
언제나 그랬다.
세중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잡기위해 열심히 쫒아가도
한발치 앞에서 더 빨리 저 멀리 달아났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하는 가슴 아픈 운명의 굴레처럼
한번도 세중이와 함께했던 시간이 길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잡혔다싶은 적은 없었다.
늘 예약된 헤어짐을 가슴에 넣은채 세중이를 만났다.
나에게 주어진 턱없이 짧은 시간을 비굴하게 구걸하듯
세중이와 함께한 시간을 아까운 마음으로 소비했다.
세중이를 안고 눈을 지긋이 감았다.
세중이에게 나는 아가 냄새와 강아지 처럼 찡찡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이제 가야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중이는 더욱 세게 안았다.
그냥 세중이에게 안긴채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있다면..
세중아 놀랐지? 다 장난이었다 라고..
말할 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해줄 수 없는 아빠의 입장은
무력함과 미안함이었다.
아빠 가야되 세중아.
내가 이해가 어려웠던 부분이 이 부분이다.
세중이가 징징대면서 울거나 떼쓰는면서 아빠를 힘들게 하고 맞다.
장난감 가게에서 처럼 드러누워서 뗴를 써야한다.
사고 싶은 장난감도 떼만쓰면 자기것이 되고
찡찡 대면 젤리나 주스도 후하게 건내주는 아빠가 떠나는 상황을
받아드리지 못해야한다.
그런데,
세중이는 한번더 꽉 안더니 아빠를 놓아주었다.
저 어린 아가야가 아빠의 상황과 우리 가족의 상황을 이해를 했단 말인가?
그리고 아빠 아빠 아빠..
안넝 ~
이라고 말했다.
바로 그 순간 아빠의 머리속은 하얘진것이다.
세중이는 다 큰 어른이다.
세중이가 대견하다.
아빠보다 낫다.
이번 여행에서 친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왔을때
다른 친구들이 세중이 장난감 가지고 놀도록 양보해주고,
험하게 가지고 놀면서 장난감이 부서져도 세중이는 그려려니했다.
그런 이해심이 아빠로서 감격스럽고 대견했다.
아빠가 떠나는 순간에도 세중이는 아빠의 상황을 이해해주었다.
대견함에 고마워서 더욱 슬퍼졌나보다.
유모차위에 세중이가 아빠 안넝~ 하며 게이트의 투명유리를 지난 불투명 유리뒤로
사라지고, 나는 여권을 공항직원에게 건내며 불투명 유리뒤를 바라보았다.
나를 강하게 안고 놓지않던 세중이의 그 느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별을 인정하고 보내줄때의 그 표정.
그 느낌을 잊을 수없어서 필리핀와서도 내내 마음이 무겁고 쓰리다.
아빠안넝
드라마나 소설의 소재가 되곤하는 상사병.
나는 살면서 느껴본적이 없다.
헤어짐은 헤어짐이고 만남은 만남일뿐,
만남과 헤어짐이 잦은 인생을 살았다.
호의나 호감을 느껴본적은 있어도
사랑이란 순수한 감정이 어떤건지 느껴본적은 없었다.
전쟁 영화나 뉴스에서 죽음과 이별을 대면할때
이들이 느끼는 슬픔의 크기를 가늠해본 적도 없었다.
이제는 알겠다. 얼마나 아플까...
다시 만날 것이 확실한 세중이와의 이별에도 이렇게 아픈데..
세중이가 나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사랑인가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김세중이 이렇게 버젓이 존재한다.
나는 필리핀에서 무언가를 이루기위해 왔지만
세중이를 통해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배우고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