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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고2 여름 2부

고등학교 배경 성장기 단편소설

by 크리스


H는 명지 독서실을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말만 독서실이고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공부를 했겠지만

누군가에겐

휴게실에서 컵라면 끓여먹기,

독서실 건물 주차장에서 친구들과 담배피기,

인생에 관한 수다 떨며 친구 만들기,

뭘 해도 독서실에서 하면 재미가 있다

공부만 아니라면..

딴짓은 공부할 시간에 쫓기는 맛에 하는 게 가장 재밌으니까..


휴게실을 들락거리다 보면

선배들을 마주치게 돼있다

고3들도 예외 없이 공부하는 놈만 하고

안 하는 놈은 죽어도 안 한다


수능이 코앞인데도 휴게실에 뻗대고 앉아서

어울리지 않은 옷을 벗어던질 시간을 기다린다


고 3쯤 되면 독서실이 가장 편한 공간이 되어버린다

운동복에 슬리퍼

고3 들은 뭉칠수록 같이 공부하지 말자의 노선으로 방향을 틀고

무리 안에서 맘 편하게 공부를 포기할 수 있었다

'얘도 안 하니까 나도 안 해도 괜찮아..'

오히려 독서실을 다니면서 성적이 곤두박질친다

담배를 시작한 녀석

당구 치면서 자장면 먹는 맛을 아는 녀석

혹은 스타 크래프트를 시작한 녀석

성적은 까먹고 추억이 쌓이는 곳이 되어버린 독서실


감수성은 예민할 때라

감수성이란 불꽃을 태우기에 친구란 연료도 없다


H도 첨엔 그런 걸 몰랐었다

첨엔 같은 학년끼리 어울리던 것이

종종 휴게실에서 선배님 선배님 하며 종종 어울렸고

어느 순간부터 점점 어려워졌다

선배들이 폼 잡는답시고,

심부름도 시키고 심심하면 겁도 주고

그런 분위기가 되어버린 거다


선배 중에서도 착한 녀석도 있었지만

눈빛에 독기가 찬 녀석도 있었다

그중 한놈이 S 란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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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뿔테 쓴 깐깐 표정의 S는

독서실 휴게실에 죽치고 앉아있는 터줏대감

으로 집이 없거나 집이 싫거나..

중간에 사이즈의 잘빠진 체격에

세상의 불만을 끌어다 놓은 눈에는

공부가 얼마나 하기 싫은지

그러나 해야만 하는 시대상을

포스 있는 고3 선배 S 가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H 가 휴게실에서 튀김 우동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기다리는 중에

선배들이 휴게실 안으로 우르르 들어온 것

말 많은 녀석이 장난을 걸었다

“ 이세끼 귀엽지 않냐?”

하면서 H의 배에다가 섀도 복싱을 했다

그 상황에서 H 가 받아준답시고 피하고 치고 피하고 치고

서로 섀도 복싱을 하는 상황이 된 것

심지어 H의 장난이 너무 창의적이어서

분위기가 좋았는데 하필 불만스러운 눈빛의 S는 아니꼬왔던 것


휴게실 바로 옆에 화장실로 H를 끌고 갔고

이유는 후배가 선배랑 노는 모습이 아니꼬워서..


좁은 화장실 노란 백열구 아래 선배 S는

튀김 우동에 아직 입도 못 댄 H를 불러다 놓고

노려만 보고 있었다

S의 불만 가득한 눈이 그 불만의 보고 있는 것은 H 가 아니었다

수능의 압박과 안 되는 공부, 암담한 미래, 엄마의 쪼아 댐.

언제나 문제는 바로 불안이다

다만 만만한 게 H 였던 것


불편한 침묵을 참지 못한 H 가 상황을 모면해보고자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순간!

매콤한 싸대기 두방에 의해 H의 뺨이 뜨거워졌다

얼굴을 감싸고 구석에 찌그러진 H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내심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랬고

S는 잔인하게 5분 동안 찌그러져있는 H를 노려본 후

주머니에 속을 푹 찔러 넣더니 조용히 한 마리의 맹수처럼 화장실을 나갔고

H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화장실에 한동안 서서 생각했다


그 뒤로는 독서실에도 잘 안 가게 되고 가더라도

S의 얼굴이 눈앞에 맴돌아서

휴게실로 들어가는 일이 없어졌다


H 로선 고교시절 당한 첫 구타에 기분이 참 더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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