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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바보의 딸 2부

단편소설

by 크리스


1986년 가을


아빠는 아파트 입구에 상가건물 1층 장난감 가게가 왠수다


슬이는 유치원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빠보다 몇 걸음 앞서 당당하게 걸어가는 폼이 대장이다


종종 1층 장난감 가게로 바로 들어가더니,


평소에 못 보던 인형의 집이 들어왔다


냉큼 집어온다


카운터 아줌마, 슬이를 자주 보지만 볼수록


아이가 당차다


아줌마 쪽은 제대로 쳐다도 보지 않고


슬이: “아빠가 계산할 거예요”


카운터 아줌마 별로 놀랄 것도 없다


종이쪽지에 다가 아파트 호수와 가져간 인형의 집 가격을 적어놓는다


나중에 아빠가 계산할 테니까


상가에서 나오는 슬이를 보면 하도 기가 차서


할 말이 없는 아빠다



1987년 겨울


내년에 국민학교를 들어가는 것을 대비해서 동네 태권도장을 끊었다


태권도 갈 시간이다


슬이는 자고 있다


아빠가 깨워도 계속 자고 있다


할 수없이 아빠는


자는 상태에서 도복을 입힌다


다 입혔다


이젠 업고 태권도장까지 뛴다


태권도장에 도착


태권도장에 도착한 줄도 모르는 슬이는


딸바보 아빠의 등에서 아직도 자고 있다


사부님 슬이에게 다가가 큰소리로


“태-! 권-! 도-! “


사부님의 기합 소리에 화들짝 놀란 슬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아빠 등에서 내려와서


허공에 주먹직을 해댄다


“태-권-도”


태권도 수업에 잘 임하는 지 확인한 아빠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1989년 봄


국민학생이 된 꼬마 슬이는 학교에 가야 하는데 오늘따라 기분이 별로다


거울 앞 의자 위에 앉아있는 슬이,


엄마가 손수 머리를 묶어주시는데


머리가 맘에 안 들어서 버릇없게 방울 끈을


땅바닥에 집어던져버린다


기가 찬 엄마는 바닥에서 다시 주워서


묶어줘도 또 그 짓이다


“다시”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엄마,


평소처럼... 이쁘게 다시 묶어줘도 또 그 짓


“다시”


선녀가 따로 없다는 엄마지만 정도가 지나쳤다


신경질 나버려서 빗겨주던 빗으로


쥐어박았다


“요놈-!”


숙이, 태어나서 처음 맞아본 메


바닥 뒹굴고 난리다


아마 자기만 모르고 있는 거다 맞아도 싸다는 사실을...


슬이가 우니까 아빠가 달려 나왔다


불난 집 마냥 완전히 비상이다


때렸다고 해야 하나? 참으로 애매하다


억울하고 분해서 바닥을 나뒹구는 슬이 달랠 길이 없으니


엄마가 또 죄인이다


엄마를 구박하는 아빠, 어차피 연기지만


엄마는 속으로 아빠가 더 밉다


그래도 늦둥이 딸바보 아빠 속을 이해해준다


그렇게 우리 딸 슬이 달래주고,


엄마 혼내는 연기 하느라 회사도 결근하게 된 아빠


가정의 평화를 또 한 번 아빠가 지켜낸다



2000년이 오고 또 1년이 지난... 봄


화목한 딸 바보 중심의 가정 분위기에서


공주님 대접받고 자란 슬이는 대학 생활의 시작과 함께


지방의 공업 단지를 떠나 홀로 서울로 향한다


그곳엔 가족도 없고 정든 동네도 없다


그러나 다른 세상과 만나게 되고


새로운 사람, 사랑과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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