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돌아본 2014년 여행
일정을 좀 무리하게 세웠다고 깨달았다. 어제 그렇게 밤 비행기로 앵커리지에 도착해 12시간 운전, 페어뱅크 호텔에 도착했기 때문에 좀 쉬어가야 하는데 오늘 새벽 또 3시간을 가야 하니 말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디날리 국립공원 투어로 일정이 잡혀있다. 디날리 투어는 이미 하와이에서부터 예약해두었다. 오전 7:30부터 오후 4:30까지 투어를 해야 한다. 한번 투어를 시작하면 끝나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또 아침 일찍 떠나야 더 많은 동물을 볼 수 있다기에 최대한 일찍 시간을 잡은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소피와 세라를 깨워 떠났다. 둘은 차에서 자면 되지만 나는 운전을 해야 한다. 길은 깜깜하고 도로도 잘 안 보인다. 게다가 비까지 내린다. 상향등 켜고, 눈 부릅뜨고 디날리로 달린다. 한 시간쯤 달리니 어깨가 결린다. 잘 안 보이는 좁은 길, 그것도 처음 가는 길을 신경 바짝 쓰고 운전하다 보니 긴장이 심했던 모양이다. 세상모르고 자는 소피와 세라가 부럽다. 내가 더 고생인가? 소피, 세라가 더 고생인가? 나는 이 고생을 내가 짜 놓은 스케줄 때문에 스스로 사서 하는 것이지만 소피와 세라는 내가 일정을 무리하게 짜 놓은 것 때문에 고생이다. 결국 내 잘못이다. 만약 어제 디날리 공원을 지나는 길로 왔더라면 공원 근방 호텔에 투숙했을지도 모른다. 알래스카로 오기 전 페어뱅크 쪽 호텔을 예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루치 호텔비를 날리더라도 디날리 근방에서 1박을 했더라면 더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이미 새벽에 일어나 디날리로 가는 길이니.
디날리 공원을 투어 하는 방법은 공원 측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는 것으로 세 가지 코스가 있다. 버스는 스쿨버스처럼 생긴 것이다. 우리는 8시간짜리 코스를 선택했다. 에일슨 비지터센터까지 다녀오는 것인데 먹을 것, 물, 망원경이 필수다. 그리즐리 베어, 칼리브, 산양, 여우, 무스 등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결코 쉬운 여행이 아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길을 수차례 지나갈 때마다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부디 버스가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세요'
출발해서 30분 만에 무스를 가까이서 본 이후 한참을 가서 그리즐리 베어를 목격했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신이 났다. 그러다가 곰, 여우, 양 이런 것들을 목격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응? 또 곰이야" 하는 측과, 더욱 신이 나서 자신이 목격한 동물의 수를 세는 측으로 나뉘었다. 동물의 나라에 조그만 버스를 꾸역꾸역 몰려 타고 구경 나온 인간의 무리들을 동물들은 어떤 생각으로 바라볼까? 동물의 왕국 디날리 공원의 크기가 매사추세츠주의 크기와 비슷하다니 알래스카의 규모가 상상이 간다.
호텔로 돌아가려면 또다시 페어뱅크로 세 시간 운전해야 한다. 내일은 North Pole과 체나 온천에 가는 일정이니 1~2시간만 운전하면 되겠지. 그런데 오늘 밤 과연 우리가 이 고생을 하고 페어뱅크에 온 목적, 즉 오로라를 볼 수가 있을까?
디날리 투어는 사파리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동물들이 서식하는 국립공원을 사파리 차량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디날리 국립공원이 워낙 넓으니 시간도 하루 종일 걸린다. 처음엔 동물을 발견한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버스 안에서 오른쪽으로 또는 왼쪽으로 모이지만, 동물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니 점점 흥미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디날리 국립공원의 그 큰 규모는 여전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사파리 버스를 타고 8시간을 투어 했지만, 가다 보니 일부 사람들은 야영도 하는 것 같다. 야영을 위한 지역이 정해져 있는데 만약 자는 중에 곰이라도 나타나면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
동물을 동물원에서 보는 것하고 이렇게 야생 상태로 보는 것 하고는 차이가 많은 것 같다. 동물원은 동물들에게는 참 좋지 않은 곳이다. 동물원 존재 자체가 동물학대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에서는 사파리를 만들 수 없기때문이긴 하겠지만, 그렇게 좁은 곳에 평생 가두어 두어야 하는 점 때문이다. 먹는 것만 좋았지 감옥에 갇힌 것과 다를 바 없다. 그에 비해 아주 넓은 땅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들을 구경하는 사파리 형식은 동물을 자연 상태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원보다 훨씬 나은 형식이 아닐까 싶다. 하긴 알래스카에는 굳이 디날리 국립공원이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야생의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 그래서 탁 트인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