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스페인 여행 1 (2019)

호놀룰루에서 보스턴으로

by Blue Bird
런던 트라팔가 광장

딱 한 달 전 오늘, 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었다. 정확히 2주간의 유럽여행 중간을 지나고 있었고, 여행지로서는 마지막 도시, 바르셀로나였다. 도착한 지 채 하루밖에 안되니 아직 이 도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상태였다. 하지만 공항에서부터 호텔까지 오는 택시 안에서 바라본 풍경은 왠지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주변을 걸어 나오면서도 꼭 언젠가 와본 듯 아주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어떤 도시를 가면 자연스레 생기는 약간의 경계심과 긴장감 그런 것들이 생략된 기분이다. 날씨가 따뜻하기 때문일까, 보행자 길이 넓기 때문일까,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기 때문일까?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의 두 번째 유럽여행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 한 번 온 김에 가능한 많은 곳을 구경하려는 욕심에 짧은 기간에 여러 도시를 다니는 좀 무리한 스케줄을 잡아서 약간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다음으로 미루기에는 아쉬운 도시들이 있기에 바르셀로나까지 오게 됐다.


일정은 9월 28일 호놀룰루를 출발해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들어가고, 체코 프라하, 잘츠부르크 일대의 오스트리아, 독일의 뮌헨,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다시 영국의 런던에서 라스베이거스를 들러 호놀룰루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물론 중간중간에 유명한 지역들,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 오스트리아의 할슈타드, 인스브루크, 키츠부헬 등도 들리는 일정이니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미국 내에서는 갈 때는 보스턴을 통해서 가고 올 때는 라스베이거스를 통해서 오는 것이다. 가만, 도대체 비행기를 몇 번 탄 건가? 1 호놀룰루-보스턴 (하와이안) 2 보스턴-런던 (버진 아틀랜틱) 3 런던-프라하 (라이언) 4 프라하-바르셀로나 (라이언) 5 바르셀로나-런던 (라이언) 6 런던-라스베이거스 (버진 아틀랜틱) 7 라스베이거스-호놀룰루 (하와이안). 일곱 번이다. 게다가 호텔에서 공항, 공항에서 호텔까지 왔다 갔다 한 것까지 생각하면 엄청난 이동이다. 랜트카로 3일간 프라하에서 오스트리아, 뮌헨, 다시 차를 반납하러 프라하로 간 거리까지 있으니 여행시간을 대부분 길에서 보낸 셈이다. 하긴 그게 여행인 것이다.


출발하기 이전부터 내심 불안했던 것은 항공기 일정 때문이었다. 하와이안항공 마일리지를 소진하기 위해 항공권을 호놀룰루-보스턴 구간과 보스턴-런던 구간을 따로 끊었던 것인데, 보스턴에서의 환승시간이 촉박한 것이다. 2시간 15분이라면 굳이 따지자면 그리 촉박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항공권을 연계해서 끊은 것이 아니라 여차하면 다음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착착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과연 세상일이 원하는 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은 하와이안항공이 연착만은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했다. 탑승구에 도착해보니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앉아서 탑승 안내를 기다리는데 출발시간 1시간 전쯤에 나왔어야 할 보딩 안내방송이 50분 전, 40분 전이 지나도 안 나오고 있는 것이다. 차츰 불안해졌다. 예정된 출발 시간 30분 전, 전형적인 하와이안처럼 생긴 뚱뚱한 항공사 직원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더니 귀찮은 듯 마이크를 잡고 안내방송을 했다. 출발할 항공기가 이미 준비가 되어있는데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아직 보딩을 하지 못하고 있고, 언제쯤 가능할지는 다시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우려했던 일이 지금 막 발생한 것이다. 연착한다는 것인데 아직 얼마나 연착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나는 시간 계산에 들어갔다, 보통 한 시간 전에 보딩 한다고 치면 지금이 30분 전이니 이미 30분이나 늦은 것이다. 시간 지체를 감안해 30분 전에 보딩 한다고 치면 지금 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 보딩 할지 모른다고 지금 막 방송을 한 것이다. 출발하는 항공기가 하와이에서 처음 출발하는 줄 알았는데 오클랜드에서 도착한 후 정비를 받고 호놀룰루공항을 출발, 보스턴 로건 공항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비행기가 쉬지도 못하고 의외로 꽤 고생하는구나'하는 우스운 생각이 이 초조한 상황에서도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비행기 안위보다 내 상황이 더 급했다. 다음 비행기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아주 커졌다.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 뚱뚱한 항공사 직원의 행동이 나도 모르게 내 시야의 초점이 되고 있었다. 천천히 걷는 것도 얄미웠고, 그에게 말을 시키는 승객도 거슬렸다. 그의 잘못으로 항공기가 출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보딩 안내방송을 해야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피를 말리는 시간이 30분 정도 더 지난 후 보딩이 시작됐다.

결국 항공기는 예정된 출발시간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출발했다. 도착 예정시간도 한 시간 늦춰졌다. 그럼 난 환승시간이 1시간 15분으로 줄어든 것이다. 가능할까? 비행기 내에서는 내내 불안했다.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 10시간을 가야 한다. 시간을 줄이는 방법이 없을까? 체크인한 가방을 찾아서 다시 시큐리티를 통과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가방을 버리고 큰 쇼핑백이나 비닐봉지 두 개를 구해서 가방에 있는 것을 담아서 시큐리티 통과 없이 그냥 탈까? 별의별 아이디어를 차선책으로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혹시나 해서 항공사 직원에게 비닐봉지 큰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어느덧 항공기는 로건 공항에 도착했다. 몸도 바쁘지만 마음이 더 바빴다. 도착했으면 빨리 내리기나 해야지 왜 문은 이렇게 늦게 여는 것일까? 급하지 않은 사람들은 좀 늦게 나오지 왜 이렇게 빨리 일어서서 통로를 꽉 메우고 있는 걸까? 마음이 급하니 다들 적군으로 보였다. 배기지 클레임에서도 왜 우리 짐은 이렇게 늦게 나오는지, 통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컨베이어 벨트를 거슬러가 짐 나오는 곳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소피한테 짐 나오는 것을 보고 있으라고 하고, 일단 버진 애틀랜틱 항공의 부스로 갔다. 같은 터미널 바로 위층이었다. 버진 애틀랜틱 체크인 카운터는 이미 텅 비었고 직원 한 명이 있었다. 사정 얘기를 하니 지금 막 가려던 참인데 5분만 더 기다려줄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내려왔더니 아직도 짐이 나오지 않았다. 10분이 지나서 드디어 짐이 나와서 2층으로 날아서 갔더니 버진 애틀랜틱의 그 직원은 이미 떠난 뒤였다. 체크인 카운터는 출발 1시간 전에 철수하는데 이미 10분 정도 지난 것이다. 보스턴 공항에서 만나 같은 비행기를 타기로 한 세라에게 전화했다. 세라는 탑승구에서 우리 오기를 기다리며 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등하고 있었다. 출발할 때 우리가 1시간 정도 연착할 예정이니 만약 늦으면 먼저 타고 가서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보든지, 호텔에 먼저 체크인하라고 말해놓기는 했었다. 세라는 항공사 직원에게 같이 갈 부모님이 지금 체크인 카운터에 있다고, 비행기 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이미 시간이 지나서 안된다는 답이 세라의 셀폰을 통해 들려왔다. 그럼 먼저 가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는데 채 1분도 안돼 세라가 다시 전화가 왔다, 보딩패스는 미리 끊었냐? 그렇다. 짐은 몇 개냐? 하나다. 그랬더니 우리를 데리러 오겠다는 것이다. 살았다. 그렇게 짐을 부치고 시큐리티를 통과해 탑승구 앞에 갔더니 세라가 있었다. 우리는 차례로 항공기에 올라갔다. 그리고 몇 분 후 항공기 문이 닫혔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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