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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여행 3

2020년에 되돌아보는 2005년 여행

by Blue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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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일 화요일

뉴욕에서 첫날 아침을 맞았다. 오늘부터 뉴욕 탐험이 시작되는 날이다. 아침을 어떻게 먹을까 궁리하다가 세라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룸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룸 서비스라야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 등을 가져다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세라는 룸서비스에 대해 대단한 환상에 잡혀있는 듯하다. 그렇게 원하니 확인시켜주자, 별것 아니라는 것을. 전화 버튼을 눌러 아침을 주문하니 혀가 감기는 듯한 발음이 나온다. 상대편의 발음이 귀에 잘 안 들리는데 상대는 내 발음을 잘 이해 못한다. 그런 과정에 몇 가지를 주문하면서 약간 시간이 걸리니까 바쁘다고 재촉한다. 이런,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내가 뭐 5분을 끈 것도 아니고 겨우 초단위로 지체됐을 뿐인데... 뉴욕의 조급함을 보는 듯하다. 어쨌든 주문은 끝나고 잠시 후 룸 서비스가 도착했다. 어제 남아서 싸온 음식과 룸서비스 음식으로 아침을 때웠다. 자~ 아침도 먹었고. 이제 뉴욕의 어디를 가나.


짜 놓은 일정표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도서관, 자연사 박물관, 센추럴 공원, 타임스 스퀘어로 돼 있다. 그럼 지하철을 타고 우선 무역센터 붕괴 이후 제일 높다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가자. 호텔에서 지하철 노선도를 하나 구해서 뒷주머니에 넣었다. 25분 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근처 (34번가였나?)에서 내렸다. 역에서 나오니 위층이 건물 내부였고, 맥도널드가 보이길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렀다. 잠시 후 거리로 나와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좌우로 한국어 간판이 쭉 보인다. 우리은행, 우래옥, 고려 서점, 고려당, 만두 바, 길가의 가게에서는 한국일보와 중앙일보를 팔고 있다. 아~ 여기가 코리아타운이구나. 마치 서울의 한 골목처럼 맨해튼 한 복판에 한국어 간판이 줄지어 달렸다. 반갑고도 신기하고도. 이민 와서도 나름대로의 타운을 건설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중국인과 일본인, 한국인들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히스패닉 등 다른 민족들도 모여 살겠지만 유독 중국, 일본, 한국 타운이 눈에 띄는 것은 왜일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이미 컴퓨터로 예매한 뉴욕 시티패스 (5곳의 유명 관광지의 입장권을 반값에 갈 수 있는 패스, 뉴욕은 어른 52불)를 바우처와 교환했다. 하지만 지금 안개가 많이 껴서 시야가 좁다는 안내원의 말에 따라 엠파이어에는 나중에 올라가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지도를 보니 도서관이 가깝다. 도서관 앞에 가보니 주변의 벤치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책을 보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다. 문 앞에 가보니 10시에 오픈이고 아직 10시가 조금 못됐다. 우리도 도서관 앞 벤치에서 방금 사온 한국일보, 중앙일보를 펼쳤다. 출근전쟁이 한바탕 지나간 아침시간, 이렇게 도서관 벤치에서 잠시 신문을 읽는 기분도 괞찮다. 남들이 일할 때 그 일하는 모습을 여행자가 되어 지켜보는 상황, 나쁘지 않다.


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 하나의 박물관이었다. 고색창연한 건물, 미적인 감각을 살린 램프가 줄지어 놓인 열람실, 옛 지성인들이 실제로 쓴 책들, 독지가들이 평생 모은 책들을 기증한 방들... 도서관에 책을 보러 오는 사람보다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자연사 박물관은 지하철 역과 연결돼 있었다. 굉장히 넓고, 공룡 뼈에서부터 온갖 육해공 짐승들의 뼈와 박제가 층층이 전시돼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아래층에서 점심을 해결했는데, 음식값이 너무 비쌌다. 물 하나에 거의 3불, 샐러드 1인분도 안 되는 양에 10불이 훌쩍 넘었다. 야채는 신선했지만, 너무 심하다.


박물관에서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센추럴 팍을 구경했다. 다람쥐가 바쁘게 움직이고, 사람을 별로 피하지 않았다. 수풀이 우거진 공원 둘레로 마천루가 치솟은 모습이 이색적이다. 만약 센트럴 팍이 없었다면 뉴요커들은 빌딩 숲에 갇혀서 숨을 못 쉬고, 심성은 지금보다 더욱 거칠어졌을 것이다. 저녁은 코리아 타운 만두 바에서 만둣국과 비빔밥을 먹고, 주변을 구경했다. 피곤한 발을 끌며 호텔로 직행. 첫날 여행부터 세라는 발 아프다고 난리다. 나도 사실 발이 아프다. 하지만 발품을 팔아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어쩌나.




15년이 지났어도 어떤 장면들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퀸스 쪽에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내려서 역사를 막 빠져나왔을 때 밖이 아니라 어느 건물의 1층이었던 것, 마침 맥도널드가 보여서 커피 한 잔 사러 들어간 상황이 바로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그렇게 중요한 장면도 아닌데 왜 아직도 그런 걸 기억하고 있는 걸까? 반면 최근의 일인데도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도무지 생각이 안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을 기억하고 어떤 것을 잊어버리는지 그 선택하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한동안 하와이에서 뉴욕으로 이주하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뉴욕'이라는 위상은 한국에서 '서울'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서울인 뉴욕으로 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 때 서울에서만 살았던 내가 굳이 뉴욕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뭔가. 서울의 복잡함 보다는 하와이의 여유로움을 훨씬 좋아하는데 말이다. 서울이 그렇듯 뉴욕도 편리함과 복잡함이 뒤섞여있는 곳이다. 빡빡하면서도 가능성이 열려있는 곳이다. 복잡함과 빡빡함이라는 단점을 감수하고서라도 누릴 수 있는 편리함과 가능성이 크다면 가는 거다. 지금은 뉴욕으로 이주하고픈 생각은 없다. 다른 곳에서 살아보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뉴욕이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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