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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오레곤 여행 2

2020년에 돌아보는 2008년 여행

by Blue Bird
와인 카운티 야키마 가는 길

호놀룰루에서 오레곤의 포틀랜드 공항까지는 5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밤에 비행기를 타면 아침 일찍 도착해 하루를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밤에 비행기를 타는 것을 되도록 꺼리는 편이다.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사람들은 그냥 타서 한잠 자면 목적지에 도착하니 좋다고 하지만, 나는 흔들리는 항공기, 소음, 어두컴컴한 실내, 좁은 공간... 그런 것들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정신이 맑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밤 비행기를 꺼린다. 그래도 어쩌랴. 일정에 맞는 가격과 시간 이런 것을 비교해보니 노스웨스트 밤 비행기가 제일 나으니.


예상대로 밤 비행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잘 버티고 포틀랜드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 공항 첫인상은 깨끗, 현대적. 좀 지저분하고 낡은 호놀룰루 공항이 떠올랐다. 공항 카운터 렌터카 데스크에서 예약했던 차를 계약하고 알라모 셔틀을 타고 차 있는 곳으로 갔다. 내가 빌린 차는 렌터카 회사가 프리미엄으로 지정해 놓은 차였다. 차종은 크라이슬러 300. 조금 더 주더라도 운전을 오래 할 것이니 소형차보다는 큰 차가 좋을 듯싶어 이걸 빌린 것이다. 렌터카 회사가 분류해놓은 차종 등급이 흥미롭다. 가격이 가장 싼 것 순서로 이코노미-소형-중형-대형-SUV중형-SUV대형-프리미엄-미니밴-럭셔리 이런 식이다. 어쨌든 크라이슬러 300을 8일간 빌리고, GPS도 추가하고 그렇게 공항을 출발했다. (나중에 지불한 8일간의 가격은 560달러 정도, 차 빌리는 값은 400달러 정도이고 나머지는 세금 등 추가로 붙은 것이다. 보험도 내 걸로 대신했다)


공항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콜롬비아 협곡으로 향했다. 콜롬비아강은 워싱턴주와 오레곤주를 경계하는 강이다. 그 강변 특히 오레곤 쪽의 절벽이 멋있기로 소문나 있어서 오레곤이나 워싱턴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추천되는 관광코스의 하나이다. 운전을 하느라 그 협곡의 아름다움은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지만, 구비구비 이어지는 길이 운치 있었다. 푸르름으로 가득한 이 길, 만약 지금이 가을이라면 더욱 멋있으리라. 소 뒷걸음질하다가 발견한 폭포가 멀트노마 폭포(Multnomah Fall). 폭포가 두 번 연속되는 폭포도 멋있지만 그 중간에 있는 다리가 그림이다.


다음 목적지는 워싱턴의 와인 카운티 야키마. 또 하나의 와인 카운티 왈라왈라는 그냥 거친 후 야키마의 와이너리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GPS에 입력을 잘못했는지 좀 헤매다가 정신을 가다듬은 후 야키마에 있는 와이너리 한 곳 주소를 입력해 가까스로 찾았다. 우리가 선택한 실버 레익 와이너리는 갖출 건 다 갖춘 듯 하지만 역시 규모면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쪽 와이너리에 비해서는 못했다. 그래도 기왕에 왔으니 테스팅은 해봐야지. 세 종류를 테스팅해본 후 카버네 소비뇽으로 한 병 샀다. 첫날 숙박지는 예약은 안 했지만 웹사이트에서 프린트해서 가져왔는데 동쪽으로 한참 더 가야 하는 소프 레이크(Soap Lake)에 있다. 그런데 가다 보니 너무 멀다. 아무것도 없는 길이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있다. 주유소 간의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개스가 반이나 차 있는데도 바닥날 것이 두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3~4시간을 달려가다 발견한 주유소에서 개스를 가득 채우고 다시 하이웨이로 들어섰는데... 으악 반대쪽이다. 목적지로 가려면 온 길을 30마일 되돌아갔다가 와야 하는데 시간상 너무 늦겠다. 중간에 유턴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중간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이할거나.


일정을 변경했다. 가장 가까운 곳이 아까 거쳐온 야키마 와인 카운티다. 그래 그곳으로 가서 자면 되겠다. 소프 레이크에 예약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생각하고 야키마로 갔다. 야키마에 도착해서 GPS로 인근 호텔을 알아본 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라마다에 들기로 했다. 풀장을 아이들이 다 차지해서 수영은 포기하고 둘째 날을 그렇게 지냈다.




여행 계획을 짤 때 일정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중요하다. 항공과 호텔, 방문할 곳 등 큰 윤곽만 그려놓는 계획이 있는 반면 시간 단위 또는 분 단위까지 자세하게 일정을 만들어 놓는 계획도 있다. 성격에 따라 여행 계획도 달라지는 것이다. 나는 초기에는 후자에 가까웠고, 점차 여행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전자 쪽으로 더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시간 단위로 스케줄을 짜 놓고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곤 했는데 계획대로 안되면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갈 곳이 결정되면, 2~ 3개월 정도 전부터 항공과 호텔을 알아보고, 공항-호텔까지의 교통편, 시내 교통편 또는 랜트카, 그리고 꼭 가봐야 할 곳을 몇 군데 고른다. 여행안내책자나 인터넷 등을 참고하면서 가보고 싶은 곳을 추가하거나 추려낸다. 가봐야 할 곳은 너무 무리가 되지 않게 하루에 한 곳 또는 두 곳 정도로 한정한다. 나로서는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여행하는 시간이다. 2~3개월 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면서 되돌아보는 시간까지 모두가 여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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