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와서 첫날이 지났다. 세라는 어제저녁에 도착했다. 그 시간에 밖에 나가기는 늦은 것 같았다. 호텔 근방에서 저녁을 먹은 후 푹 자고 일어난 것이다. 어제 술탄아흐멧 지역을 다녀오긴 했지만 세라가 구경을 안 했으니 다시 한번 가야 할 터였다.
우버를 불러 타고 먼저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hce Palace)으로 향했다. 돌마바흐체는 숙소에서 그리 멀리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1843-56년 에 압둘 메시드 1세의 명에 의해 건설된 곳이다. 톱카프 궁전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느낀 그가 금 35톤에 이르는 건축비를 들여 건설한 곳이다. 이 건물에 들어간 돈이 부담이 돼 오스만 제국의 경제가 빚더미에 올랐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들여 지은 궁전이다. 285개의 방, 46개의 홀을 갖춘 이곳은 화려함의 극치로 치닫는다.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관람객들은 대부분 바닷 쪽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사진 촬영을 하는데 이곳의 경치가 한 폭의 그림이다. 보스포로스를 향해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 그쪽으로 난 하얀색 문, 멋진 그림이다.
돌마바흐체 궁전 건너편 높은 곳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잠시 쉬다가 우버를 불러 타고 어제 갔던 구시가지로 다시 향했다. 그런데 갈라타 다리를 건너자마자 경찰이 차를 세웠다. 경찰이 옆자리에 걸터앉는다. 기사는 난감해하는 표정이다. 관광객이냐고 묻더니 신분증을 달라고 한다. 세라만 여권을 갖고 나온 상태라 세라의 여권을 경찰에 건넸다. 경찰은 뭔가를 확인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터키에서는 우버가 불법이고 기사에게 벌금이 부과된다고 했다. 우리의 여권은 왜 필요하냐고 하니 확인만 하고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는 않는다고 한다. 뭘 쓰는 것 같았는데 지웠다고 한다. 우버를 탔다고 관광객에게 불리한 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라는 불이익이 될까 봐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건, 경찰은 자신의 임무를 마친 후 내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그 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도 된다는 것이다. 불법이라면서 왜 또 타고 가도 된다는 것일까. 기사에게 벌금을 부과했으니 됐다는 것인가.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터키에서 우버는 아직 합법도 불법도 아니라 허용할지 말지 논의 과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길이 막히고 앞에 또 경찰차가 많이 보이자 기사는 우회하는 길로 바꿔 탔다. 그러더니 처음 탑승 건은 끝났고, 이곳에서 다시 탑승이 시작되는 것이니 20리라를 더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마도 자신이 낸 벌금을 우리에게서 받아내려는 속셈 같았다. 10리라만 더 주고 내렸다. 그래도 아무 말도 없었다. 안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사도 손해 봤으니 반반씩 부담하자는 생각이었다.
술탄아흐멧 지역에 내려서 세라는 어제 우리가 구경한 곳에 들어가고 나와 소피는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또 들어가고 싶어도 한번 표를 사용했으니 안된다고 했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좋은 구경이다. 화장실 갈 때 동전이 필요하고 화장실을 물을 뿌리며 청소하는지 바닥이 항상 물에 젖어있는 것이 좀 적응 안되긴 하지만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하다. 이런 낯선 경험을 하려고 여행을 하는 거 아니겠나.
갈라타 다리 쪽으로 내려가다가 유명하다는 그랜드 바자르(GrandBazar)에 갔다.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은데 인터넷이 잘 안 잡히니 어렵게 도착했다. 찾은 게 다행이다. 4000개 이상의 상점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무척 복잡한 곳이다. 이슬람의 신기한 물건은 상당히 많은데 지붕이 덮여있어서 답답한 점이 흠이다. 물건은 많아도 살건 거의 없다. 토속적인 상품도 있고 유명상표 짝퉁도 많이 보인다. 금세 나왔다. 시장을 찾는데 걸린 시간이 더 길었다.
이젠 우버를 타기가 꺼려졌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그럴 만도 하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왔다. 이스탄불 둘째 날이 이렇게 지나갔다. 호텔방에서 보이는 보스포루스 쪽 풍경이 멋지다. 내일은 뭐할까? 보스포루스를 배 타고 한번 갈 생각을 했었기에 세 시간 정도 걸리는 크루즈 중에 시간이 맞는 것을 하나 어제 온라인으로 예약해두고 잤다. 출발시간이 9시니까 느긋하게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해도 된다.
이스탄불 콘래드호텔의 아침 뷔페는 먹을게 많아 보였다. 그래도 콘래드호텔이 5성급이니까 뷔페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긴 한데 그렇지도 않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먹을 것은 다양하고 샐러드도 다양하고 무슬림이 먹는 음식까지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입맛에는 '아 정말 맛있네'하고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들보다는 입맛에 딱 맞는 해장국이나 설렁탕 이런 것 하나면 있어도 더욱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하긴 여기서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 잘못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커피도 한잔하고 로비에서 크루즈 회사가 보내는 셔틀을 기다렸다. 조금 늦나, 조금 더 늦나 그렇게 기다리는데 30분이 지나갔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호텔을 돌면서 배에 탈사람들을 픽업해가는 것이긴 하겠지만 배 떠나는 시간이 있을 텐데 너무 늦는 것 같았다. 호텔 프런트에 가서 알아봐 달라고 했다. 프런트에서는 크루즈 회사와 연락을 한 후 곧 올 것이라고 했다. 15분쯤 더 걸린다고 했다. 마침내 차가 도착했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하니 지금이 원래 예정된 픽업 시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터넷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고 하니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성질이 나다가 가라앉았다. 픽업 온 직원의 태도가 그나마 성실했고 웃는 얼굴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화를 내봐야 나만 손해다. 그래도 왔으니 다행이다 생각하는 게 낫다. 픽업을 오지 않았거나 너무 일찍 와서 우리를 안태우고 떠난 것보다 낫지 않은가.
크루즈 시설은 평범한 것이었다. 갑판에서 가이드가 보스포루스를 따라서 늘어서 있는 건물들을 설명해주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다. 설명해주는 사람이 재미있고 열정적이어야 듣는 사람도 재미를 느끼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단시간 크루즈는 몇 번 타본 적이 있는데 전에 처음에 뉴욕에 가서 허드슨 크루즈에서는 참 재미있게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다. 자신은 뉴욕에서 태어난 뉴요커이며 이런저런 건물들에 이런저런 사연이 있고 애착이 간다고 말했던 그때의 가이드. 그의 얼굴은 잊었지만 그의 말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도 뉴요커였으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 동양과 서양을 분리해놓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유람선으로 돌고 있다. 그 옛날 중세 이전부터 이 지역에서 로마와 페르시아가, 교황과 술탄이,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이 부딪히는 문명의 충돌 현장을 직접 보고 있는 것이다. 서유럽에서부터 서아시아까지, 남으로는 북아프리카까지 지중해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오스만 제국이 15세기 중반 동로마제국이 차지하고 있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후 지배했던 곳이고, 지금까지도 터키가 수도인 앙카라보다 더욱 중시하고 있는 곳이다. 보스포루스의 양쪽에는 수많은 모스크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늘로 높이 솟은 모스크 첨탑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아 여긴 정말 다른 곳이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성당과 교회의 십자가들이 하늘로 솟은 풍경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이곳의 풍경은 건물 하나만으로도 이국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나도 모르게 내가 기독교 문화에 노출되어 모스크 첨탑은 신기하게, 십자가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