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도시다. 인구 1천500만의 이 도시는 현재 터키의 수도가 아님에도 고대로부터 터키의 경제, 문화, 역사의 중심지이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지역에 위치했기에 역사적으로 부침이 심했던 지역이다. 터키 국토의 95%는 아시아에 있고, 5%만이 유럽에 속해 있는데, 그 중심에 이스탄불이 있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지는 곳이다.
갈라타 다리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제 어디로 갈까 생각해봤다. 배를 타고 건너편 아시아 대륙 쪽으로 가면 돌아오는 배편을 감안하니 시간이 빠듯하다. 여행지에서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다. 대부분의 볼거리는 구시가지에 있는 듯한데 그곳은 이미 두 번이나 갔다. 그럼 뭐할까. 특별히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음식점을 나오는데 정면에 갈라타 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갈라타 다리를 걸어서 건넌 후 타워로 올라가는 길을 겨우 찾았다. 다리 근방에서 갈라타 타워까지만 운행하는 모노레일(Tunel)이 있었다.
갈라타 타워 쪽의 동네는 지금까지 이틀간 보았던 이스탄불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지금까지 봐온 이스탄불은 교통이 엄청 막히는 후진국이었는데 이곳은 미국의 어느 쇼핑몰과 똑같은 선진국의 모습이었다.(Istiklal Ave) 보행자를 위해 중앙에 넓은 길이 있었고, 양쪽에는 유명 브랜드의 상점들이 즐비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생김새도 달라 보였다. 모노레일로 5분도 안 되는 한 정거장을 왔을 뿐인데 제3세계에서 제1 세계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몸도 피곤했었는데 갑자기 힘이 났다. 갈라타 타워(Galata Tower)에서 내려다본 이스탄불과 보스포루스 풍경, 이곳이 이스탄불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임이 틀림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저 멀리 아래에서 이슬람의 술탄과 십자군 기사들의 해전이 있었겠구나. 승자도 패자도 이제 모두 사라지고 아름다운 풍경만 남았구나.
타워에서 내려오니 거리가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직 완전히 어둡지는 않고 이제 해가 막 지려는 시간이다. 거리에서 색소폰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가보니 동양 남자 청년들 두 명이 거리공연을 하고 있었다. 공연 중간에 영어로 자기들은 일본에서 오늘 도착했다고 한다. 몇몇 구경꾼들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고 있다. 옆쪽에서는 갈라타 타워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린 그림들을 팔고 있다. 하나 살까 하다가 참았다. 소피와 세라는 몇몇 상점을 들락날락하더니 뭔가를 사 왔다. 뭘 산지는 잘 모르겠다. 비누였던 것 같기도 하고. 내 관심사는 아니니 뭘 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세라의 발이 오래 걷는 걸 거부해 탁심광장 코앞에서 결국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이태리, 베니스로 가는 날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내가 여기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지금 이스탄불에서 3일 머물며 본 것은 이스탄불의 한 단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 한 단면만을 보고 나는 '이스탄불은 이런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하지만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늘 변한다. 또한 여행자도 어떤 상황에서 여행했느냐에 따라 그 도시를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그러면 이번 여행을 통해 처음 본 이스탄불은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남을까. '뭔가 복잡하고 뒤섞여 있는 도시' 쯤 될까. 엉킨 실타래다. 시간을 두고 한 올 한 올씩 풀어보면 결국 풀리긴 하겠지만 그 전에는 마구 엉켜있어서 실체를 알 수 없는 도시쯤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