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용-하! 안녕하세요 용수입니다.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보다, 읽다, 말하다를 읽고 나서
김영하 작가의 작품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김영하 작가 특집!
그 첫 번째 순서로 살인자의 기억법입니다.
역시 더운 여름에는 오싹한 게 딱 좋아!
장편소설이지만 두껍지 않고 글이 빽빽하지 않습니다.
넘나 좋아ㅎㅎ
그래서 부담 없이 읽기 좋았고 굉장히 속도감 있게 읽었어요.
몰입이 정말 잘 됐던 살인자의 기억법!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연쇄살인마 김병수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요.
그에게는 딸 은희가 있습니다.
친딸은 아니고 은희 역시 자신이 죽인 피해자의 딸이죠.
자신의 딸만은 살려달라는 피해자의 부탁에
김병수는 은희를 자신의 딸로 키우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병수는 어떤 남자와 접촉사고가
나게 되는데 그에게서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그 남자가 왠지 불안합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박주태.
박주태의 등장과 동시에 동네에선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김병수는 확신합니다. 그가 자신과 같은 종족이라는 것을요.
그런 박주태가 자신의 딸 은희의 곁을 맴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자신의 기억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딸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싸움을 결심합니다.
죽음은 두렵지 않고 망각도 상관없다고 하는 그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딸 은희를 지키는 것입니다.
연쇄살인마가 자신의 딸만은 살해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습니다. 사이코패스가 부성애가 있는 건가?라고 생각도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한 말은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은희를 지키고 싶어 합니다. 딸을 위해서가 아닌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죠.
'나는 악마인가, 아니면 초인인가, 혹은 그 둘 다인가.'
많은 사람들을 살인한 그는 자신의 범죄 앞에서
수치심이라고는 없습니다.
은희만은 살해당해선 안된다고 두렵다고 말하는 김병수
그 두려움의 감정은 그의 죄에 대한 벌이 아닌가 싶습니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입장과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그에게 그런 두려움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일 겁니다.
오직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사람을 죽인 살인마가
누군가 지키기 위해 살인을 결심하는 아이러니
필요에 의한 살인이라는 표현과 마치 그것이 자신의
사명인 것처럼 말하는 그의 모습이 가증스럽습니다.
절레절레..
김병수는 감옥이 자신의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타인과 섞일 수 없었던 그는 감옥에서나마 죄수들과 섞여
살며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인을 하는 그였지만 오랫동안 자기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삶에 지쳐버린 거죠.
병이 악화되고 있는 김병수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에 갇힌 그는 도망갈 수도 없고 치매라는 벽은 그를 더 조여옵니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 자신을 비유합니다.
망각과 싸우며 미래를 기억하고 귀환을 도모했던 오디세우스처럼 자신도 박주태를 죽이겠다는 미래 계획을 기억하고 귀환을 도모하고 싶어 하죠.
'현재에만 머무른다는 것은 짐승의 삶으로 추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를 잊고 현재에만 사는 것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연쇄살인마인 과거, 살인을 계획하는 미래를 기억한다고 해서 그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거와 미래를 기억한다고 해도 그는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들부들
충격 반전..!
알고 보니 딸 은희를 살인마 박주태에게서 지키겠다는
모든 것은 그의 망상일 뿐이었어요.
그가 은희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애초에 그의 딸이 아닌 요양 보호사였고 박주태는 형사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은희를
죽인 것은 박주태가 아닌 김병수 자신이었죠.
살인이 기억 안 난다는 김병수에게
형사는 그게 말이 되냐고 묻습니다.
김병수는 그런 형사에게 누구보다 그 장면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라고 얘기합니다.
'너무 소중한 것' 이기 때문에
처음에 저는 살인에 대한 기억을 소중하다고 말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자신이 딸이라고 생각했던 은희를 정말로 자신이 죽였는지, 소중한 것이란 건
은희를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건 망상이라고 하지만 김병수 자신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딸인 은희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걸
똑똑히 기억하니까요.
정말로 자신이 죽인 건지 혼란스럽겠죠
그러니까 기억하고 싶을 거예요.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망상임을 깨달은 김병수는 문득 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을 위해 그는 그토록 혼자 애썼던 걸까
허무함을 느낍니다.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자 애썼던 딸은 실체조차 없습니다.
그는 감옥에 가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
감옥을 구원으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그에게 처벌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망각이고 가장 두려운 것은 시간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그는 과거와 미래를 잊으면 짐승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잊는다고 해도 딸 은희를 살릴 수 있으면 상관없다고 앞서 말했죠.
하지만 딸 은희는 존재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는 잊혀 가고 있습니다. 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죽인 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망각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큰 벌인 거죠.
망각을 불교의 공 사상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실체가 없고 마음속의 허상일 뿐이라는 공 사상이 어쩌면 이 소설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딸 은희가 없지만 있다고 생각하는 김병수 마음속의 허상, 또 알츠하이머로 인해 모든 것을 망각해 버리면서
실체가 없어지는 김병수
평소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공 사상을 좋아하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이런 의미로 표현될 수 있구나 새로웠습니다.
시야가 좁아질 정도의 질주를 스키드 마크도 없이 일시에 끝내버린 급정거, 폭발하는 굉음들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완벽한 정적'
초반부터 중반까지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면서 은희를 정말 구해낼 수 있을지, 김병수가 기억을 또 잃으면 어쩌지?
생각하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달려가다가
후반에는 '망각이었다'로 끝나버립니다.
급정거, 완벽한 정적이죠
초중반의 너무 잘 읽히는 부분들은 마지막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면들이었습니다.
불교는 공 사상을 통해 우리를 고통에서 구제해 평온한 마음으로 이끌고자 합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김병수에게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혼란으로 표현됩니다.
'무너져내리는 세계 속에서 너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고, 그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바다 위에서 영원히 허우적거려야 하는 고통과 공포가 너의 몫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을 때는 반전 있는 스릴러 소설로 읽었지만 리뷰를 하면서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았을 때는 생각보다 내용이 더 깊었습니다.
단순히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선 불교의 공 사상과 연결 지은 철학적인 표현이
가볍진 않더라고요.
리뷰를 하며 다시 한번 곱씹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스토리는 어렵지 않았지만 김병수의 알츠하이머는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는 어떤 벌을 받은 건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살인마에 대한 오싹한 소설에 철학까지 한 스푼 들어가 있는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