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서 초보지만 두꺼운 책은 읽고 싶어

빛의 제국 - 김영하

by 용수



용-하! 안녕하세요 용수입니다.

지난번 김영하 작가님의 살인자의 기억법에 이어

두 번째 장편소설 빛의 제국을 들고 왔습니다!

빛의 제국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사진 삭나 왜 이제야 김영하 작가님 소설을 읽어본 걸까..?

저는 원래 책과 담을 쌓고 지내다가(ㅎㅎ;)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저는 책을 매우 사랑한다기보다는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자..라서 저에게 독서는 휴식이 아니라 노력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책이나 두꺼운 책은

허벅지를 꼬집으며 울면서 읽습니다.

그런 저에게 김영하 작가님의 소설들은

술술 잘 읽히고 몰입이 잘 돼서 너무 좋네요 ㅎㅎ

저 같은 독서 초심자분들께 김영하 작가님의 책 추천드려요!

작가님의 책이라면 두렵지 않아..! 재미쒀.. ❤️


주인공 김기영은 남파된 북한 공작원입니다.

21년은 북한에서 21년은 남한에서 살고 있죠.

북한에서는 이미 그를 잊은 듯, 지령이 내려오지 않은 지도

10년이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그 또한 북한의 생활은 잊고 남한의 생활에

점점 익숙해집니다.

어느 날 그에게 지령이 내려옵니다.

'모든 것을 청산하고 즉시 귀환하라.

이 명령은 번복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명령에 그는 부정도 해보고

왜 갑자기 명령을 내린 걸까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그.

그저 명령대로 남한에서의 생활을

24시간 내에 정리해야 합니다.

21년간의 남한 생활을 하루 만에 정리해야 한다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착잡할 것 같아요.

일단 갈지 말지도 정해야 하지,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회사도 정리해야 하지, 안 가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도 해봐야 하지, 목숨은 무사할지도 생각해야 하지.. 등등

잠깐만 읊어도 해야 할 게 너무 많네요

하루 만에 어떻게 해..? 뚝-딱! 하면 되는 줄 아나.. ㅠ


'그는 자신이 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벽으로 둘러싸인 세상으로 가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기영은 이미 남한에 익숙해졌어요.

남한에서 누리던 사소한 것들을

이제 돌아가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워합니다.

모르면 몰랐지 자본주의의 맛을 한번 본 이상

돌아가기란 참 힘들 것 같습니다..

책도 맘대로 못 읽고 음악도 마음대로 못 들어요.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기영이니 더욱 아쉽겠죠.


기영의 남한 생활이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21년을 살았지만 감출 수 없는 공허감, 이방인이라는 느낌, 정신적 소외감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었죠.

그는 남한의 문화를 달달 외우며 학습했지만

깊이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개구리가 되라던 아버지의 말,

기영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 건지

기영은 남한에서도 잘 적응해 살고 있었어요.

북한, 80년대의 남한, 21세기의 남한 세 번이나

삶의 환경이 바뀌어도 기영은 살아남았습니다.

기영은 갑자기 내려온 명령에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자신이 그저 조금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만 생각하며 살아왔었다는 그는 그동안 평양에서의

그의 삶을 잠시 잊고 남한에서의 삶에 집중했었던 거죠.

이십 년간 그렇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복귀하라니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기영은 돌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지만

읽다 보면 처음부터 기영은 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고 싶지 않지만 가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있는 것도 같아요.

돌아간다면 자신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도 있지만 그것 외에 자신이 남한에 남아야 할 이유, 남고 싶은 이유는 뭘까 찾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좋은 기영은 자신과 같은 공작원들에게 배역을 부여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단순히 스토리를 지어주는 것뿐 아니라 또 다른 자신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을 거예요.

자신이 세상으로 내보낸 그들이 불행한 결과를 맞을 때마다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자신의 결말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그 불안감은 커져 갔을 거예요.


기영은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내던 소지현이라는 인물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소지현은 딸 은미의 학교 선생님이자 작가이기도 한데요.

자신의 인생은 너무 평탄하고 나중엔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인생이 펼쳐질 것 같다는 소지의 말에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기영은 자신이 평양에서 왔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소지라면 자신에게 가지 말란 말을 해줄 것 같아서 일까요?

아니면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는 소지의 말에 혹시라도 자신과 함께 북으로 가주겠다는 말을 할 것 같아서일까요?


소지는 기영에게 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히레사케와 초밥, 하이네켄 맥주와 샘 페킨파나 빔 밴더스 영화를 좋아하는 인간, 일요일 오전엔 해물 스파게티를 먹고 금요일 밤엔 홍대 앞 바에서 스카치위스키를 마시는 사람이지 않냐고 말합니다.

소지는 기영이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는 걸 눈치챈 듯합니다.

기영이 듣고 싶었던 말 일 수도 있죠.

하지만 가지 말라는 말에는

어떤 이념적 이유가 들어있진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 북한에서는 불가능한,

욕망 가득한 소비재들 만이 들어있습니다.

기영 역시 소설 내내 남한의 소비재들을 마음껏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앞서 나왔던 ‘여긴 책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북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영의 말에는 아쉬움이 묻어 나옵니다.

돌아갈지 말지에 대한 선택은

기영이 처음 남으로 왔을 때와는

다르게 더 이상 이념적인 이유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죠.


'형은 이 배역을 너무 잘 소화한 나머지,

이제 배역과 구별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어'

소지의 말처럼 기영은 남파 공작원 중 누구보다 적응을 잘했고 지금도 자본주의의 자유를 즐기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북에서 존재하던 그의 모습은 이제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영은 결정하지 못합니다.

통제는 수도 없이 많지만 자신의 진짜 이름과 신분으로 살 수 있는 북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지만 영원히 온전하게 섞이지 못하는 남한 중 어디로 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헷갈릴 겁니다.


기영은 부인인 마리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합니다.

기영은 왜 부인 마리에게 먼저 말하지 않고

소지에게 말했을까요?

마리는 소지보다 기영의 삶에 아주 가까운 인물이죠.

마리에게 이야기함으로써 혹시나 마리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도 됐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에게 고백했다는 건 기영이 남한에서 마리의 남편으로서 딸 현미의 아빠로서 살겠다고 결심했다는 뜻입니다.


기영의 충격적인 고백에 마리는 배신감을 쏟아냅니다.

단순히 배신감뿐만 혐오감, 허무함까지 느껴집니다.

저 또한 빛의 제국을 읽으며 기영이 가장 힘든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돌아오라는 북한의 지령에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함께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리 또한 안타까웠습니다.

마리는 기영의 고백에 함께 했던 15년의 세월이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낍니다. 기영과 부부로 사는 동안 기영이 마음을 열지 않는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움츠러들어 살았다는 마리. 두 사람 다 누가 더 고통스러운지 비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저 둘 다 정치적 이념 갈등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리는 기영에게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자신의 딸 현미도 위험해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15년을 함께 한 남편에게 한 치의 고민 없이 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매정하게도 보이지만 마리의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기영은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가족에게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기영 또한 털어놓을 수 없는 사실이 큰 고통이었지만 자신의 고통만 생각하고 마리의 아픔은 헤아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돌아가라는 그녀의 말에 남을 거라고 대답하는 기영

그가 만약 간첩으로서 북으로 복귀하기로 했다면

마리에게 굳이 고백할 필요가 없었겠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간첩의 임무니까요.

그대로 돌아갔을 겁니다.

하지만 마리에게 말을 한순간 간첩의 임무를 버리고

마리에게 남편으로서 고백을 한 거죠.

하지만 마리와 현미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만 희생하면 안 되겠냐고 말하는

기영은 여전히 이기적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편에 서줄 거라 생각했던 소지도

선을 딱 그어버립니다.

아무도 곁에 남지 않은 기영이 참 외로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외로움을 남한에 산 21년간 쭉 느꼈을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었으니까요.

자신의 마음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을 기영은 21년 전부터 쭉 외로움을 느꼈을 거예요.


기영의 회사 직원 성호는 국정원 직원이었습니다.

그의 정체를 의심하고 예전부터 감시해오고 있었던 거죠.

기영이 복귀 명령을 받은 후 그를 따라다니면서 감시하가 간첩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국정원과 기영

사이의 모종의 비공식적 거래가 성립되죠.

그를 체포하지 않는 대신 기영은 국정원의 편에 서는 거죠.


'하늘은 검은데 세상은 밝았다.

그것은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연작을 연상시켰다'

책의 표지에 있는 그림이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인데요

출처 : 경향신문

소설과 다르게 그림은 하늘은 낮처럼 밝은데

아래쪽은 깊은 밤처럼 어두워요.

왜 이 작품을 제목으로 정했을까? 생각해 봤을 때

낮과 밤을 한 장면에 담기기엔 너무 이질적이잖아요.

그림만 봤을 땐 낮인지 밤인지 모르겠어요.

기영의 이중적인 삶을 잘 표현하는 그림 입니다.


기영이 명령에 따르기 위해 접선 장소로 나왔기 때문에 북에서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정원의 말에 뒤이어

서치라이트 하나가 기영을 비추다가 바다로 향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북한이 이미 기영의 배신행위를 알아차렸다고 생각했어요.

서치라이트를 비추는 건 일종의 경고를 하는 거죠.

계속 너를 감시할 거라고

기영은 남한에 남기로 선택했지만 남한에서의 생활이

자유롭지 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의 정체를 아는 국정원은 그를 계속 통제하고 이용하려 할 것이고 그 와중에 북한의 감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거죠.

기영에게 이게 해피엔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신분 때문에 남한에 살면서도 이방인인 것 같았고 오랜 시간 북으로부터의 연락도 끊겼기 때문에 더 이상 북한에 소속되어 있는 것 같지도 않았죠. 기영은 이번 기회를 통해 남한에 소속되고자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남한에서는 그를 이용하고 북한에서는 그를 감시하게 될 겁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같은 그의 삶이 계속되는 거죠.


소설을 읽을 때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술술 읽지만

이렇게 리뷰를 하면 소설 속 인물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돼요.

기영이 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라던가

마리보다 소지에게 먼저 정체를 고백한 이유라던가 등등

그 인물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작가가 쓴 의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소설에 대한 이해도도 더 깊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튼 이렇게 또 두꺼운 책을 읽고 나면

뿌듯함 + 또 다른 책들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저는 이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게 조금씩 쌓여서 책에 대한 애정이 커지는 것 같거든요

그럼 또 어려운 책을 도전해 볼 용기도 생깁니다.

오늘 리뷰해 드린 김영하 작가님의 빛의 제국은 두껍지만 잘 읽히고, 완독하고 나면 뿌듯함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ㅎㅎ

저 같은 독서 초심자분들께 추천드립니다!


keyword
이전 06화여름에는 오싹한 게 딱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