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 김영하
용-하! 안녕하세요 용수입니다.
이제 창문만 열어놔도 바람이 솔솔 들어옵니다.
(그래도 에어컨 틀고 있음) 어쨌든 드디어 가을이 온 건가!
가을 하면 또 독서의 계절 아닙니까!
역시 덥고 습한 여름보다는 선선하고 쾌적한 가을에 책이 더 잘 읽히는 것 같아요. 이런 날은 밖에 벤치에 앉아서 책도
읽고 카페 야외석에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책도 읽고 싶고
그러네요..!
독서의 계절이 왔으니 저도 책 더 열심히 읽고
리뷰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은 김영하 작가 특집 세 번째로 '검은 꽃'을 들고 왔어요.
검은 꽃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라 그런지
읽는 내내 마음이 시큰하게 아팠던 소설입니다.
김영하 작가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 빛의 제국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저는 검은 꽃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살인자의 기억법이나 빛의 제국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기보다는 인물 내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라 조금 잔잔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에 비해 검은 꽃은 사건이 중심이 되고 장면도 휙휙 바뀌 국가를 잃은 아픔과 다양한 인물들의 아픔이 드러나 있는
소설이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어요.
1905년 1033명의 조선인들은 외교관도 없는 낯선 나라 멕시코로 가게 됩니다. 조선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각자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배에 올라탄 거죠.
그러나 도착한 곳은 우리나라와는 너무 달랐던 척박하고
건조한 땅에 극심한 무더운 더위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조선인들은 그곳에서 짐승처럼 채찍질을 당하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그 먼 길을 항해해 온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은 도착하자마자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그 누구도 이런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야말로 속아서 온 겁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도 거짓말이었고 돈을 모으기조차 어려운 구조였죠. 그들은 꼼짝없이 계약서에 명시된 4년의 기간 동안 에네켄 농장에 붙잡혀 있어야 합니다.
황족인 이종도 또한 가족들과 함께 멕시코로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죠.
평생 노동이라곤 해본 적 없는 그는 힘없이 무너져 버립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는 의지도 없이 무너져 버리죠.
그를 대신한 14살의 어린 아들 진우가 에네켄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어린 아들보다도 현실 감각이 없는 그를 보며
너무 답답했습니다.
이런 그를 아무도 대우해 주지 않죠.
심지어 가족조차도 말이죠.
이 낯선 곳에서 더 이상 황족, 양반이라는 신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각자의 꿈을 가지고 조선을 떠나왔지만 지금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 된 상황
그래도 조선인들은 벗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일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마야인들은 물끄러미 바라보죠.
더 이상 돌아갈 것이 없는 그들에겐 희망도 없습니다.
텅 빈 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죠.
이곳에서 조선인들과 마야인들은 처지는 같지만
돌아갈 곳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커 보여요.
대한 제국에 그들의 실상이 알려지면 국가가 백성들을 구제해 줄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과는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황제는 힘을 잃었고, 대한 제국은 서서히 사라져
가는 중이었습니다.
황족 이종도의 딸인 연수는 조선에서 여성으로서 삶이
싫었습니다.
'남자처럼 공부하고 직업을 얻고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는 꿈'을 가지고 멕시코로 왔지만 그곳 또한 그녀가 생각하는
곳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여전히 그녀는 이곳에서 집안일을 하고 뒷바라지를 하며 살고 싶지 않았어요. 조선에서도, 멕시코에서도 현실에 주저앉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연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쉬워 보이진 않지만요..ㅠㅠ
'국가와 왕조의 존망이 이토의 손에 달려 있는 마당에 멕시코 이민자 문제가 황제의 관심사일 수는 없었다'
을사조약으로 결국 일본의 속국이 된 대한제국
더 이상 국가의 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된 멕시코 이민자들은 자기 스스로를 구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실조차 모르고 있죠.
국가가 그들에게 해준 것은 무엇일까요?
배를 탔을 때부터 그들은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거였어요.
그들은 속아서 멕시코로 갔고 그곳에서 박해를 받고 노예처럼 일을 하고 있지만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대한 제국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이종도는 황제가 백성들을 구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편지를 씁니다.
하지만 그 편지는 통역관 권용준에 의해 불태워지죠.
이 편지가 대한 제국에 전해졌어도 당시 상황으로써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편지가 붙여지지도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심지어 같은 조선인에 의해서 말입니다.
조선의 신분제나 양반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권용준은 이종도와 다른 이민자들의 희망이 담긴 그 편지를
불태워버립니다.
자신도 조선인이지만 스페인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이곳에서 권력을 누릴 수 있었죠. 조선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그런 권력과 부에 취해 다른 조선인들의 고통은
무시해 버립니다.
참고 참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던 연수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멕시코에 올 때 배에서 만난 동갑내기 이정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를 극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매일 밀애를 즐기죠.
그녀의 어머니는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거라며 그녀의 행동을 나무라지만 연수는 현실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알고 있죠.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것을요.
연수는 참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합니다.
연수를 마음에 두고 있던 통역관 권용준은 눈엣가시였던
연수의 연인 이정을 다른 농장으로 보내버립니다.
이렇게 연수는 또다시 이정과 헤어지게 되죠.
한편, 이정이 옮겨간 농장에서는 조선인들의 파업이 일어나게 됩니다. 농장 주인 메넴의 부하 알바로는 파업으로 인한 대치 중 말라리아로 인해 갑자기 죽게 됩니다.
그의 죽음에 조선의 방식대로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들.
그들을 그렇게 괴롭히던 사람의 죽음에도 조선인들은 눈물을 흘리고 여느 장례식과 마찬가지로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망자를 보내줍니다.
이 장면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알바로를 싫어했지만 망자에 대한 도리는 다하는
조선인들의 인간애가 느껴졌어요.
자신들은 짐승처럼 취급을 받았음에도 결코 똑같은 자가 되지 않는 조선인들의 모습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 이정은 이런 혼란스러운 틈을 타 농장을 탈출합니다.
연수는 이정이 떠난 후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약하지 않았죠.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통역원 권용준의 집으로 향합니다. 연수는 이 소설에서 가장 강한
인물인 것 같아요.
비록 가족들과 다른 조선인들의 비난을 받을지라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4년의 계약기간이 끝났지만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여전히 멕시코에 남게 되죠. 돈이 없어서, 돌아가면 할 일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일본은 대한 제국을 합병하고 대한 제국은 그렇게 사라져 버립니다.
조선인들도 마야인들처럼 돌아갈 나라가 없어지게 된 거죠.
'이것은 국가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아니면 국가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이정은 멕시코 내의 끊임없는 혁명과 내전을 보며
생각합니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강대국이 있기 때문에 내전이 일어난 것일 수도, 국가가 없기 때문에 법과 질서가 없어져 내전이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정에게 국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에게 국가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그의 고향인 대한 제국은 조선인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고 현재 자신이 있는 멕시코 또한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으니까요.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를 선택했지?
미안하지만 국가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야'
이정은 멕시코로 향하는 배 안에서 만났던 일본인 주방장
요시다를 다시 만납니다. 멕시코에 사는 한인들은 이제 모두
일본인이라는 말에 이정은
'일본인이 되겠다고 한 적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요시다는 그의 말에 국가가 개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정은 여기서 깨달았을 거예요. 자신이 국가를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국가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요.
연수는 이정과 헤어진 후 많은 고초를 겪습니다. 통역원 권용준에게서 도망쳤지만 어떤 한 중국인에게 붙잡혀 팔려 다니고 있던 신세였죠. 그녀를 발견한 또 다른 멕시코 이민자, 퇴역군인인 박정훈은 그녀를 구해주고 둘은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 연수의 두 남자, 박정훈과 이정은 서로 다른 편의 혁명군으로 전장에서 만나게 되죠.
이정은 그녀가 박정훈과 있다는 소식을 알고 찾아가지만 연수는 이정을 따라가지 않고 박정훈 곁에 남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녀를 구해주고 그녀의 아들까지 농장에서 빼내준 박정훈을 배신할 순 없었어요.
이정은 연수를 사랑했지만 정작 연수를 구제해 주지는
못했죠.
또한 살아남으려면 정훈의 곁이 훨씬 더 안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정은 혁명군이 되었고 정훈은 잠시 내전에 참전은 했으나 조용한 시골의 이발사가 되었거든요.
연수는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의 안위도 생각했어야
할 겁니다.
다시 만난 연수와 이정은 이렇게 또 헤어집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죽는 거야'
이 대목에서 요시다가 이정에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개인이 아닌 국가가 개인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
그 말이 이정이 신대한을 세우게 되는 것에 일조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들이 무국적이라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니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죽지 않으려면 다른 국적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신대한'을 세우게 되죠.
신대한이 국가로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남는 것은 싫었던 겁니다.
희미한 정체성이라도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죠.
이정은 내전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후 정훈도 심장맞이로 죽게 되죠. 연수는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독하게 돈을 모아 큰손이 되죠.
연수는 멕시코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삶을 이어가는 여자였습니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같은 조선 여자들에게도 욕을 먹고, 중국인에게 팔려 다니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옛 연인과
남편이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녀는 꿋꿋하게
삶을 살아갑니다.
그녀의 운명은 가혹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저항하는 인물로 보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의 방식으로
지켜나가는 인물이에요.
저는 그래서 연수가 이 소설의 그 누구보다도 강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인물들은 정체성을 잃어가는데 반해 연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나가려고 합니다.
이정은 신대한을 건국함으로써 자신들의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머나먼 타국 땅에서 갖은 고초를 겪고 타국의 내전으로 목숨까지 잃은 그들을 기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그들의 정체성은 끝끝내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인 검은 꽃은 세상의 모든 꽃을 섞어야 나오는 색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정체성 상실을 의미한다고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결말을 보면서 이 책의 제목이 왜 검은 꽃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해피엔딩을 바랐습니다. 국가가 그들을
구해주건, 그들이 스스로를 구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건 이 소설의 끝은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정체성을 잃은 채 죽음을 맞이하거나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 남아서 삶을 계속 이어갔어요.
'국가가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 소설 속에서는 부정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1905년 제물포를 떠나 지구 반대편의 마야 유적지, 밀림에서 증발해 버린 일군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시리게 만들었어요. 차라리 소재도 픽션이었다면 이렇게 마음이
아프진 않았을 텐데ㅠㅠ
당시 멕시코에 간 이민자들이 고통을 받았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모르고 있었어요.
검은 꽃을 통해 끔찍했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안 읽었으면 1905년 멕시코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기회조차 없었을 거예요. 소설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양한 소설을 읽으면서 저의 세계도 확장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검은 꽃에는 등장하는 인물도 매우 다양합니다. 양반, 퇴역군인, 도둑, 파계 신부, 박수무당 등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할 때 이야기도 흥미 돋습니다. 소재는 무겁지만 읽기는
어렵지 않은 소설입니다.
용수의 김영하 작가 소설 특집(살인자의 기억법, 빛의 제국, 검은 꽃)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인 만큼 여러분께도 적극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