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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노 Jul 27. 2016

사람은 색에 반응한다

KBS 다큐멘터리 [색色_네 개의 욕망]

[색色_네 개의 욕망]은 2014년 1월 KBS에서 4부작으로 방영된 UHD 다큐멘터리다. 차세대 표준 화질인 UHD의 영상미를 보여주기 위해 전량 4K 카메라로 촬영되었고, 제작 비용 10억, 촬영 기간 2년, 전 세계 30개국에서 촬영된 대규모 프로젝트다. 

UHD 화질을 어필하기에 ‘색’만큼 제격인 주제가 있을까. ‘색’은 소재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만큼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집중한 부분은 얼마나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주고, 주제를 어떻게 끌어나가느냐 였다.

 

영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사실 UHD 화질로 보지 않고 이 작품의 영상미를 논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지만, 일반 HD 화질로만 보아도 색감을 잘 살렸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배경음악 또한 에피소드의 분위기에 따라 클래식부터 댄스 음악까지, 적절한 음악으로 영상을 충실히 보조한다. 전개가 정적이어서 지루한 면이 있긴 하지만 주제에서 나오는 매력은 지루함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색’이라는 소재는 상당히 포괄적이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러닝타임을 채울 수 있다. 

우선 색 전반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고, 몇 개의 색을 선정해서 각각의 색에 대해 풀어갈 수도 있다. 시간에 따라서는 역사적 관점에서 색의 의미와 변천사를 조명할 수도 있고 현대적 관점에서 색의 활용을 짚어볼 수도 있다. 학문 범주에 따라서는 미학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신학이나 문화인류학을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에피소드를 이끌어나가는 주체로 직접 색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다룰 수도 있고 색이 사용되는 장소들을 다룰 수도 있다. 깊이에 따라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색상에 대한 이미지를 더 깊게 파고들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면을 보여줄 수도 있다.


4개의 에피소드를 네 가지 색으로만 채우는 아이디어는 그래서 과감하면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빛의 3원색인 파랑, 빨강, 초록. 그리고 무채색 흰색. 서로 교집합이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색들이기 때문에 한 편의 에피소드에서 한 색의 개성에만 오로지 집중하는 연출이 가능했다.


각 에피소드의 부제목들에서도 고정관념을 뒤집는 문구가 눈에 띈다. 보통 파란색이라고 하면 우울함, 빨간색은 정열, 초록색은 자연을 떠올리기 쉽지만, 블루-구원의 기도 / 레드- 불멸의 마법 / 그린-소유의 괴물 / 화이트-탐미의 가면이라는, 각 색의 이면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BLUE - 구원의 기도 #0000FF (0,0,255)

직접 ‘파랑’을 만드는 일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과 장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도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인디고 염료를 만드는이 남자는 청록색 색소를 가진 인디고 풀을 물에 하루 정도 풀어놓은 곳에서 동료들과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7,000번 물을 차서, 공기를 물 안에 직접 불어넣어서 색소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로 나오는 색은 너무나도 진하고 매혹적인 푸른색이지만, 그 대가로 남자가 받는 보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도 파란색이 있기에 그는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남자에게는 파란색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구원의 통로인 셈이다. 또 색의 개념이 없는 선천적 시각 장애인에게는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가 같은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한 번만 눈을 떠서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보고 싶다는 그에게 하늘과 바다, 그리고 초월적 존재를 상징하는 파란색은 구원 그 자체다.


RED - 불멸의 마법  #FF0000 (255,0,0)

붉은색은 피, 권력, 욕망, 혁명과 동시에 영원을 의미한다. 신체에서 겉으로는 볼 수 없는 피의 색이지만 동시에 붉은 피를 흘린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반증한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사냥하기 전에 치르는 의식에서 주술적인 붉은색을 볼 수 있고, 장례식에서 죽은 자가 산 자들 옆에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빨간 염료를 발라주는 모습에서 불멸의 붉은색을 볼 수 있다. 


GREEN - 소유의 괴물 #00FF00 (0,255,0)

얼핏 생각하면 초록색은 포근한 느낌을 주는 색이다. 자연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의 색을 인간이 소유하려고 하는 순간, 초록은 괴물로 변한다. 라듐이라는 형광색 초록 도료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을 때, 인간은 드디어 초록색을 자신들이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성취감에 거침없이 사용했지만, 라듐에 들어있던 치명적인 독 성분은 사용자들에게 죽음을 선물했다.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색이다. 숲과 나무를 보면 순수하지만, 소유하려고 하면 예상치 못한 모습이 나타난다. 헐크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 실험의 부작용으로 인한 돌연변이의 색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WHITE - 탐미의 가면 #000000 (0,0,0)

채도 없이 명도로만 구분되는 색이 하얀색이다. 가장 단순한 색이지만 가장 궁극적인 색이기도 하다. 미를 찾아 평생을 헤매는 예술가들이 수많은 색들을 거쳐 최종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꼽는 색이 하얀색이고, 인간의 시작과 마지막을 보여주는 색이 하얀색이기도 하다. 한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하얀 포대기에 담겨서 삶을 시작한다. 인생을 살면서 파랑, 빨강, 초록 등 수많은 색을 욕망하고 탐하면서 사람은 색으로 얼룩지고 하얀색 도화지 위에는 수많은 색들이 묻어난다. 그리고 화려한 날을 보내고 죽음을 준비하면서 사람은 자신이 가졌던 색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죽음과 동시에 하얀 천에 쌓이면서, 사람은 다시 하얀색, 즉 무無의 상태로 돌아간다. 


인간은 태어나는 동시에 색을 욕망한다. 파랑, 빨강, 초록의 색을 거치고 죽음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색을 내놓고 다시 하양으로 돌아간다.


지루할 수도 있다. 각 에피소드의 절반 이상이 컬러를 어떻게 만드는지, 색의 역사적 기원은 어떠하고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설명하는 데에 할애되어 있다. 과거에는 색을 만들고 사용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고 특정 색을 사용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화가 일어나고 컬러 스크린이 일상 모든 영역에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색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고, 색이 대중화된 지금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제는 컴퓨터에서 HTML컬러코드나 RGB 값만 입력하면 원하는 모든 색을 표현할 수 있다. 


각 에피소드에 내용이 중첩되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 2, 3번째 에피소드인 파랑/빨강/초록 편에서는 각각의 색이 모두 신을 상징하고 신성시된다고 나온다. 파랑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힌두교 시바신, 빨강에서는 태양과 중국 황제, 초록에서는 티벳의 타라 보살과 이슬람의 마호메트로. 

문화와 지역의 차이로 인해 그 지역에서 구하기 힘들고 만들기 힘든 색이 신성시되는 것이 당연한데, 계속 색의 영적 의미를 강조하다 보니 오히려 나중에는 메시지가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색은 다분히 사회적인 개념이다. 

사람들은 집단을 구성하면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내걸고 싶어 한다. 이때 색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도구다. 특정 색을 지정해놓고 그 집단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을 그 색과 관련해서 해석한다. 집단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외부적으로도 그렇다. 색은 한 사람의 인생이 되기도 하고, 다른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차별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색을 섞으면 조화와 시너지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색은 사회적이다. 


색은 다분히 인위적인 개념이다.

사실 우리가 보는 모든 색은 빛의 투과와 반사를 통해 들어오는 자극을 지각하는 과정에서 인식되는 것이다. 인간이 바라보는 세상과 동물이 바라보는 세상의 색이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실상 어느 것 하나 진정한 의미로 특정 색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맥락에서 색은 인위적이고, 색은 인간을 기만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색이 우리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색은 무엇일지, 좋아하는 색에는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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