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적 분석 - 2
앞선 글에서는 새로 나타난 혼밥 현상, 즉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아닌,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혼밥을 하는 커뮤니케이션적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 이유에는 세 가지, 한국의 식사 문화에 대한 피로감, 자아 개념의 강화로 인한 식사 개념의 변화, CMC 환경의 확장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이런 혼밥을 활용한 여러 사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중에서도 방송계, 외식업계, 그리고 혼밥 커뮤니티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혼밥을 주제로 활용한 사례는 최근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대표적으로 최근 종영한 tvN의 드라마 [혼술남녀]가 있겠네요.
[혼술남녀]는 케이블 방송사의 드라마임에도 최고 시청률 5.0%를 기록하기도 하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었습니다. [혼술남녀] 하면 매 화 초반에 등장인물들이 혼자 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요. 특히 초반 5~6화까지 하석진 씨가 나와서 혼술 혼밥을 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목은 '혼술' 남녀지만 사실상 이 작품은 혼술과 혼밥을 함께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하석진 씨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왜 혼자 마시냐고? 내가 혼술을 하는 이유는 말이지. 보고 싶지 않은 환경은 보지 않아도 되고, 불필요한 체력소모 안 해도 되고, 불필요한 돈 낭비 안 해도 되니까.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나만의 힐링타임. 이것이 내가 혼술을 하는 이유지.
앞서 본 이유들이 숨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데서 오는 불편함과 형식성이 싫어서 혼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그렇게 혼술 혼밥을 하는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되는 것이죠.
또 다른 사례는 올리브 TV의 [(혼밥 할 때는) 8시에 만나]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작품 소개는 이렇습니다. '다양한 음식 취향을 가진 셀러브리티들을 온라인으로 초대해 '혼밥'을 주제로 다양한 음식 이야기를 원격 토크 형식으로 펼치는 프로그램'. 온전히 혼밥의, 혼밥에 의한, 혼밥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닐까 하는데요. 패널들이 단순히 혼밥을 하면서 CMC 미디어 기기를 활용해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죠. 사실 제가 챙겨본 적은 없고 또 8회 만에 종영을 해버려서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혼밥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데에는 큰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2014년에는 [MBC 다큐스페셜: 지금 혼밥하십니까]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평론가 허지웅 씨를 주인공으로 세워 혼밥에 대해 알아본 작품이었습니다. 저희 팀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여러 부분 참고를 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방송 프로그램에서 혼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합니다. TV로 대표되는 방송 미디어는 공신력이 있다고 간주되는 현대 사회의 미디어인데요. 이런 미디어들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여론을 반영하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를 혼밥에 대입시켜보면, 다큐멘터리를 넘어서서 드라마나 예능 같은 프로그램에서 혼밥을 콘텐츠로 설정한다는 것은 이미 혼밥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며, 이렇게 방송 전파를 타면서는 더 구석구석까지 혼밥이 퍼져 나갈 것이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혼밥족들이 늘어나면 당연히 이런 혼밥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들도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대학가 및 20대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혼밥을 위한 1인 식당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 기존의 식당들도 혼밥족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외식업계의 이런 변화가 앞에서 살펴본 각각의 원인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혼밥은 기존 식사의 형식성과 피로감에 대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1인 식당들은 대인접촉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요. 신촌에 [미분당]이라는 쌀국수 가게가 있습니다. 이곳은 주문과 결제가 무인발권기를 통해 자동으로 이뤄집니다. 그리고 가게 안은 다찌, 즉 1인 좌석으로 되어있고요. 각 자리에 있는 안내문을 보면 '이곳은 요리를 즐기기 위한 장소이니 다른 손님들을 위해 지나치게 큰 소리로 대화하는 것은 자제해주시길 바란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실제로 대화 중 목소리가 커지면 종업원이 친절하게 조용히 대화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더군요. (여기, 정말 맛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쌀국수 한 그릇 생각나신다면 꼭 가보세요.) 또 신촌에는 2008년부터 1인 식당으로 유명한 일본 라멘집 [이찌멘]이 있습니다. 여기는 1인 좌석에 칸막이까지 쳐져 있습니다. 이명재 이찌멘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인테리어를 한 이유를 '손님들이 다른 사람에 최대한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서울대입구에서 시작해서 가로수길에 분점을 낸 덮밥 전문점 [지구당]은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해서 3명 이상의 손님은 받지 않기도 합니다. 한 번 지구당 앞을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궁금했었는데, 이런 규칙 때문에라도 꼭 한 번 가보고 싶네요.
20대들은 자아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식사까지도 자신을 나타내는 자아 개념의 일부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최근 혼밥은 이전에는 함께 먹어야 한다고 여겨졌던 메뉴도 1인 메뉴로 판매하곤 합니다. [이야기 하나]는 고급 한우를 개인 화로에 구워 먹을 수 있는 식당입니다. [제인스 피키 피자]에는 1인용 피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싸움의 고수]는 1인 보쌈 가게인데요, 신림동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전국적인 체인으로 발전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식당들은 혼밥족들이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대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비단 1인 식당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식당들에서 CMC 환경이 들어서도 이를 위한 인프라를 갖추어 나가고 있죠. 많은 식당에는 빵빵한 와이파이는 기본이고, 각 자리마다 콘센트, 충전기, 스마트폰 거치대를 설치해서 혼밥족들이 밥을 먹으면서 모바일 기기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혼밥족들은 혼자 밥을 먹으면서 SNS를 하거나 동영상을 보기도 하지만, 혼밥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형성된 혼밥 커뮤니티가 몇 개 있는데요, 우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중에서는 [혼밥인의 만찬]이 있습니다. 이 앱에는 혼밥에 좋은 식당을 표시해놓은 ‘혼밥 ZONE’과 혼밥 인증 및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 ‘혼밥 TALK' 기능이 있어서 '어디에 어떤 식당이 혼밥 하기 좋더라~'하는 정보 공유가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온라인에는 비슷한 역할을 하는 [혼밥넷]이 있기도 하고요.
이런 커뮤니티들은 일반 포럼에 혼밥 섹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혼밥을 목적으로 하는 커뮤니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20대에서 나타나는 혼밥 현상을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바라본 원인과 그 사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물론 혼밥의 대두에는 인구 통계학적 원인이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 글의 의의는 그 기저에 깔려있는 커뮤니케이션 특징을 중심으로 혼밥 현상을 분석해보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20대에게 혼밥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납니다. 대학생이나 회사원 모두에게 혼밥은 고맥락 문화에 따른 식사 문화에 대한 피로감에 대해 대안이자 해결책 역할을 하기도 하고, 부모 세대와 달리 자기 자신을 강조하는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합니다. 또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CMC의 증대된 영향력은 혼밥을 식사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매김하게 하죠. 세 가지 원인이 결합되어서는 20대는 혼밥 시에 '심리적 대인 관계는 모바일에 맡기고 오프라인에서는 내 욕구에 충실'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혼밥은 방송과 외식업계에서 주요한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사례들은 앞으로 모바일 앱 등 더욱 다양한 형태로 차용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혼밥을 필두로 한 ‘혼자’ 문화는 20대를 기점으로 점차 다른 세대에게서도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며, 그 흐름을 이끌고 있는 20대에게 있어서 혼밥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들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혼밥은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