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리기] 편집위원 서로, 아리
[원제목] 한국어학당 투쟁 들여다보기 -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시간 강사들의 투쟁에서 질문해야 하는 것 -
연세대학교는 올해도 어김없이 쓸쓸한 봄을 맞이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찾아오지 않는 학교에 남아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2021년의 봄볕이 들기 시작할 무렵,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의 시간 강사들이 학교를 상대로 투쟁을 시작했다. 1959년 설립된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은 6·25 이후 한국어 교육의 필요성이 급부상하던 시기부터 명맥을 이어왔으며, 지금까지 14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거쳐 갔을 정도로 굵직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해 온 강사들은 한국어학당을 둘러싼 휘황찬란한 수사 뒤에 감추어져 있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성큼 찾아온 봄에도 어딘가 황량해 보이는 교정에서, 강사들은 피켓을 들고 학교를 행진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를 오가는 발걸음이 줄어든 만큼 강사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전해지기 어려웠지만, 그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강사들의 투쟁이 한창이던 2021년 8월 12일, 공일오비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문우, 연세지, 연세춘추와 함께 비대면 기자회견을 가졌다. 다양한 질문과 답변들 속에서 한국어학당 강사들이 겪어 온 일들이 조금씩 선명하게 다가왔다. 강사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임금과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수업 시수, 고용 및 노조 활동의 불안정성을 폭로하며 학교 측에 책임을 묻고 있었다.[1] 작년부터 학교와 단체협약안을 마련하기 위한 협상을 이어왔지만, 여전히 안일하고 불성실한 학교 측의 태도를 보다 못한 강사들은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사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학교 측과 다툴 예정”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출처: 연세대 한국어학당 강사노조 인스타그램 @yskliuinion)
강사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SNS와 언론 보도를 통해 조각조각 전해 들은 것보다 훨씬 복잡다단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투쟁의 경과뿐만 아니라 강사들이 어떤 일을 해왔으며 학교가 어학당과 강사들을 어떻게 취급해왔는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공일오비는 투쟁의 쟁점과 협상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급 인상’이나 ‘수업 시수 보장’이라는 명쾌한 외침에 얽힌 더 작고 세밀한 이야기를 건져 올려 보기로 했다.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을 찾는 학생들이 여전히 많고, 높은 평판을 유지하는데도 시간 강사들은 왜 생계를 위협받게 되었을까? 부당한 처우가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는데도, 2년 전에야 노조가 만들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연세대학교는 한국어학당 강사들의 목소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우리는 왜 한국어학당 강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연대해야 할까? 앞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자로 살아가게 될 우리가 이들과 함께 질문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을 헤아려보고자 한다.
강사들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에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이라는 오명이 덧씌워지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들은 한국어 교육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교의 태도와 사회의 인식이 지금의 문제들을 키워왔다고 말하면서, “익숙한 것을 매우 낯선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익숙한 언어라고 하지만, 한국어 교육은 단순히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내뱉으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생활과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많은 것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노동이다.
한국어 교육은 교안을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 새롭게 정착하려고 찾아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만큼 실용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의 표현을 둘러싼 미묘한 맥락까지 전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사용의 현황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반영해야 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사 A 씨는 몇 년 전 베트남 학생들이 대거 유입되었던 때를 회상했다. 한국 대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베트남 현지의 학생들이 어학당을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해당 학생들은 오로지 베트남어를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었고,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강사들이 먼저 베트남어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와 같은 특수한 맥락이 개입하지 않는 때에도 어학당은 늘 다양한 문화권의 학생들이 함께하는 곳이기에, 학생들의 출신 국가와 언어를 파악하여 이해하기 쉽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또 수업의 내용이 특정 국적이나 성별, 또는 학생들의 특수한 상황 안에서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지 세심하게 살핀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안정된 노동을 보장받지 못하니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일도 많았다. 학교는 수업 배정 기준을 공개하지 않았고,[2] 배정 결과는 개강 2-3일 전에야 통보되었다. 매번 수업 준비에 1시간에서 2시간 정도를 할애해왔다는 강사 A 씨는, 담당했던 수업이 개강 직전에 사라지거나 학기 중간에 다른 반으로 옮겨야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심지어는 기존에 해오던 수업과 전혀 다른 내용을 가르치게 되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강사들은 특별히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수업을 준비했다. 학교 측의 충분한 투자와 내실 있는 운영으로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반복되었고, 그 공백은 언제나 강사들의 사명감과 열정으로 간신히 메워져야 했다.
학교가 노동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않으니 강의 노동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벅차게 느껴지는 때가 많았지만, 강사들은 수업과 관련 없는 행정업무까지 떠안아야 했다. 학교가 어학당의 운영과 실무분담을 위한 투자나 합의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어학당 운영에 필요한 많은 일을 강사들에게 떠넘겨왔기 때문이다. 강사들의 지위가 불분명하고 노동의 경계도 흐릿하다 보니 학교가 주최한 행사에 일방적으로 동원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학교는 “한국어 강사라면 마땅히 ‘국위 선양’을 위해 힘써야 한다”며 허울 좋은 명목을 들이댔다. 강사 A 씨는 많은 강사들이 행사 때마다 많은 일을 도맡아왔지만, 그 노동이 모두 ‘봉사’로 취급되어 왔다고 말했다. 학교가 강사들의 불안정한 입지를 이용하여 노동의 범주를 임의로 변경하고, 예상치 못한 노동을 요구하니 강사들은 “강의 외의 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수업 외의 행사들 연극대회, 노래대회. 진행하는 선생님들이 정해져 있어요. 어떤 순서로 진행하고, 어떤 준비물을 살 것인지. 일정 조율이나 자료 제작 이런 것들 모두가 강사의 역할이고. 수업시수에는 포함되어있지 않고 봉사라는 이름으로 하게 됩니다. 더 어린 연차에는 학습자료 복사 500장 600장씩 하기도 하고, 강의 준비 이외의 다른 업무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강사 A)
충분한 합의나 설득의 과정도 없이 본래 강사의 몫이 아닌 일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히 부당한 추가 노동이며 강사에 대한 착취다. 강사들도 이를 모르지 않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자긍심과 뿌듯함,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있으니 단칼에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학생들의 진학과 학습에 대한 상담은 물론, 한국 생활에의 적응을 위한 일상적 상담과 같은 돌봄의 영역까지도 강사들의 일이 되었다. 최수근 지부장은 코로나 이후 정부 안내문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주고, 마스크 사재기한다는 오해를 받을 것이 두려워 약국 방문을 꺼리는 중국 학생에게 필요한 물품을 대신 사다 주었던 일을 회상했다. 학생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강사들은 타지생활의 어려움을 자주 목격하기에, 아무리 무임금 추가 노동이라 할지라도 마냥 외면해버리지 못했다. 이야기를 듣던 다른 강사 B 씨는 하루종일 학생들의 전화를 받아야 했던 날을 떠올리며, “(코로나 이후) 수업 시수는 줄었지만 다른 업무를 생각하면 강도는 그대로”라고 혀를 내둘렀다. 최수근 지부장은 “당연하다는 듯 떠넘겨진 행정업무들을 학교로 돌려보내는 것이 주요한 요구사항”이라며, “어학교육 기관이 성장하는 데에도 필요한 노동”들을 전부 강사들이 해내야 하는 구조는 분명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시간강사의 임금은 강의에 대한 시급만으로 책정되었다. 강사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강의 외의 노동에도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지만, 이는 모두 무급으로 처리되었다. 본래 시간강사가 해야 하는 노동으로 지정된 것 외에도 추가로 일을 했다면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제공되어야 하는데도, 학교는 ‘강의와 관련 없는 노동이니 임금 책정이 필요하지 않다’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최수근 지부장은 강의 시수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다른 강사들도 강의를 충분히 배정받지 못하면 “사실상 해고”라고 말하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자회견에서 강사들은 어렵게 임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도 “천박한 이야기”로 치부해버리는 따가운 눈총과 ‘시간 강사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돌아왔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낮은 임금은 어느새 ‘원래 그래왔던’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고, 일을 하고 싶어도 그만큼의 수업을 배정받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해서 강사들의 생계를 위협했다.
강사들은 행정업무나 의무 연구 활동 등을 포함하면 풀타임 노동 시간을 웃도는 만큼의 일을 하고 있지만, 이를 무급으로 강제하고 수업 시수를 턱없이 적게 배정하면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게 되었다. 이 모든 상황을 “사명감으로 버텨온” 강사 B 씨는 추가 노동이 발생하는 상황 자체보다 이것이 무임금으로 처리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게다가 ‘국위 선양’, ‘자긍심’이라는 수사를 들이대며 이들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시간강사를 ‘마구 동원하기 쉬운 인력’으로 취급하는 학교의 태도를 드러낼 뿐이다. 강사들의 요구는 강의 외 노동을 전면 학교 측으로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어학당의 교육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학교 측과의 합의를 통해 업무를 적절히 분담하고, 강사들이 해야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을 통해 노동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였다.
“강사라면 시급에 당연히 강의 외 노동도 포함된 거지, 하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제가 수업 2시간 하고 시간당 28,200원을 받아요. 제가 5만 원이나 10만 원을 받으면 몰랐겠지만, 이렇게 받고 강의 외 노동을 하면서 그렇게 (강의 외 노동에 대한 수당도 포함된 것이라고) 생각하긴 어렵죠. 포인트 쌓아서 호봉 올리는 데 사용하는 그런 일은 멈추고 정당한 임금을 받는 것이 저희 목적이고요. 행정이 가져갈 일들을 저희가 하지 않는 것도 목적이에요. 필요한 업무가 있다면 정당한 임금을 받고 하고 싶어요. 사명감을 갖고 일하면서 버텨온 선생님들이 많거든요? 이걸 이어갈 수 있도록 생계유지는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죠.”
(강사 B)
강사들은 업계 내 부당한 처우가 지속되어 온 것과 불안정한 입지가 당연시되어온 현실을 씁쓸해하며 “한국어 교육은 하지 말라”고 농담 한 방울이 섞인 듯한 조언을 건넸지만,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애정이 조금씩 비어져 나왔다. 강사들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보람이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일”이며, 학생들이 한국어를 익히면서 점차 능숙하게 일상을 꾸려나갈 때 뿌듯함이 돋아난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한 강사는 “열정을 가지고 발을 담갔다가 생계가 막막해지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 대답은 현재 강사들이 처한 상황과 노조의 요구를 명료하게 압축한다. 강사들은 누군가의 열정과 사명감이 서려 있는 노동을 ‘쉬운’ 것으로 취급하려는 태도에 맞서 그간 자신들이 해온 노동의 실체를 드러내고, 어학당 운영에 필요한 노동을 모두 떠맡기면서도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지 않은 어학당의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총 대학노조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지부(이하 노조)는 2019년 6월에 설립되었다. 이미 학내에 직원 노조가 존재하지만, 직원들 중 일부는 어학당 강사들의 사용자로 위치하는 경우도 있기에 별도의 노조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노동 현장에서 경험하는 부당함이 관습처럼 굳어진 시점에서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는 강사들에게, 누군가는 ‘왜 진작 노조를 설립하지 않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그 물음에 명쾌한 하나의 대답을 건네기는 어렵다. 다만 노조 설립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다양한 문제들이 뒤엉켜 있고, 그중 대부분은 노조 설립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강사들의 이야기에서 그간의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강사들은 어학당 내 구성원들의 불안정한 지위와 그들 간 관계의 중첩이 노조 설립에 어렵게 만든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우선 어학당의 조직 구성을 살펴보자.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은 수뇌인 원장과 부원장을 필두로, 교학부장과 부처별 과장, 전임 강사와 시간강사로 구성되어 있다. 원장직은 본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이들이 맡게 되며, 임기는 2년이다. 이렇게 짧은 주기로 교체되는 원장은 자연스레 업무 이해도가 떨어지며 강사들의 노동문제를 책임져야 할 책임도 느슨해진다. 시간강사를 관리하는 전임 강사의 지위와 위치 또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연세대학교의 교수이거나, 논문 심사와 대학원 강의를 진행하는 등 교수처럼 활동하는 이들이 전임강사로 부임한다. 최수근 지부장은 전임 강사의 호칭과 역할, 학내 지위 또한 모호하며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정립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홈페이지에 게재된 조직도
이렇듯 어학당은 성긴 조직 구성과 낮은 연속성으로 인해 역할 구분과 책임 소재가 모두 불명확하다. 시간 강사들의 입지가 불분명할뿐더러 원장과 전임 강사도 본인의 지위를 분명히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사들은 오래도록 누구에게 어떤 요구를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조직 구성에서 기인하는 또 하나의 고질적인 문제는 사제관계가 노사관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어학당의 강사진은 석사 또는 박사 학위를 취득한 자들로 이루어지며, 다수가 연세대 일반대학원 출신이다.[3] 특히 전임 강사는 본교 교수이거나 논문심사를 맡는 등 교수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임을 상기해볼 때, 대부분의 시간 강사들은 직장 상사(전임 강사)가 대학원에서의 실적을 심사하는 권한까지 갖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상황은 강사들로 하여금 노조 설립을 여러 번 망설이게 했고, 설립 이후에도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일례로 현재 강사들의 90%(131명)가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데,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이들은 대학원 지도교수이자 한국어학당 전임 강사로부터 무언의 압박을 느껴 가입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지금은 안 계시는 대학원 전임 강사 중 한 분이 제 논문의 부심 교수님이셨습니다. 이분들이 강의 배정을 맡는데요. 다시 말하면 제 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분들인데, 이분들이 제 논문 지도교수이시기도 한 거예요. 참고로 지금 박사과정에 계신 분들도 같은 상황에 있고, 어학당 중앙관리자분들의 수업을 직접 듣기도 합니다. 우리가 교섭장에서 만나는 교섭위원이 대학원 강의 때 나에게 학점을 줄 수 있는 상황인 거예요.” (최수근 지부장)
교수와 학생 또는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 외에도 강사들의 노조 활동을 어렵게 만든 것은 여러 가지였다. 우선 ‘한국어 강사’의 노동문제를 다루는 노조의 선례가 없기 때문에 강사들이 첫발을 떼는 데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지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국어 강사로만 구성된 노조이다. 이전에는 ‘전국대학노동조합(이하 대학노조)’ 소속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한국어 시간강사’로만 구성된 노조는 처음이었다. 강사들에게 모든 활동이 낯설고 어렵게 다가왔고, 이와 동시에 다른 학교의 한국어 강사들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으면서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노조 활동이 처음인 만큼 노동자와 교육자라는 역할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했다. 강사 B 씨는 노조 설립 이후 학교 측과 필요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에 반가운 마음을 보이면서도, “교육자로서 고민되는 부분이 많은 것”이 노조 활동의 어려움이라고 털어놓았다. 예컨대 강경하게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파업을 논할 때면,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믿음 사이에서 오랜 시간 노조의 행보를 고민하곤 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강사들은 노조를 만든 이후에 학교 측에 효과적으로 압박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최수근 지부장은 무엇보다 강사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니 학교도 “알아듣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 설립 이전에도 강사협의체를 조직하여 학교 측에 책임을 물었지만, 강제성이 없는 요구는 자꾸만 “애원하고 하소연”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법적으로도, 관행적으로도 안정적인 지위가 보장되지 않는 강사들에게 “법적 근거”가 있는 단체를 만들어 학교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은 분명히 이전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혹자는 여전히 “한국어학당은 사실상 연세대학교와 독립된 기관이 아니냐”며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어학당은 어린이 생활지도연구원, 미래교육원과 더불어 연세대학교 부설 교육기관으로 등록되어 있고, 한국어학당의 원장은 연세대학교의 총장에 의해 임명된다. 게다가 연세대학교는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대가로 어학당에 ‘간접비’라는 이름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법적 근거도 갖추지 못했으며 지급 이유도 명확히 알 수 없는 ‘간접비’로 인해 어학당 수입의 30%가 차감되어왔다. 이는 연세대학교와 어학당이 경제 논리상으로도 얽혀있다는 근거일 뿐만 아니라 어학당의 적자 운영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연세대학교가 언제나 한국어학당의 명성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며 이를 학교 홍보에도 이용해왔다는 점에서도 두 기관의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연세대학교는 한국어학당을 ‘국내 최초’의 한국어 교육기관이며 ‘최고의 한국어 교육기관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4]
그런데 학교는 ‘한국어학당’의 존재를 최초이자 최고라고 자부하며 ‘연세대학교’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에만 관심을 보일 뿐, 어학당의 내실 있는 운영과 구성을 책임지는 것에는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학교는 지금의 어학당을 있게 한 강사들의 노고는 물론이고, 이들의 존재마저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강사들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정식 채용 과정을 거쳐 강사가 되었는데도 “유령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토로했다. 한국어학당의 강사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정년이 정해져 있고 4대 보험을 적용받으며, 학교의 취업규칙에 따라 동종업계 겸업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취업을 위해 학위까지 취득하여 찾아온 곳이니 강사들에게 어학당은 ‘잠시 머물러 이력을 채우는’ 곳이 아니라 교육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바탕으로 선택한 ‘직장’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적절한 임금으로 강사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거나, 더 나은 노동환경과 수업환경을 만드는 일에는 조금도 힘쓰지 않았다.
“교섭 현장에서도 한국어 강사들의 지위가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교원도 직원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시간강사라고 하는데, 강사법의 시간강사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라고 하면서 쳇바퀴처럼 돌죠. 투쟁을 시작할 때는 자신들의 존재 정립이 제일 먼저예요. 저희도 그 과정에 있습니다. 학교도 그걸 하고 싶지 않아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수근 지부장)
기자회견 자리에 모인 강사들은 연신 “학교가 이렇게 투자를 안 할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수업에 꼭 필요한 칠판이나 분필을 교체해달라고 요청해도 응답하지 않았고, 교안 회의에 대한 수당을 요구하면 회의를 없애버리기도 했다. 학교 측이 한 수업에 적정 수준 이상으로 많은 학생을 배치해둔 점도 수업의 질을 낮추는 요소로 작용했다. 강사 C 씨는 “한 학급당 학생 수가 너무 많”다고 말하며, 교실에 지나치게 많은 학생이 앉게 되어 그중 한두 명 정도는 “텔레비전 아래에 머리가 닿을” 자리에서 수업을 듣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수업 시수를 기존보다 더 많이 확보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더 나은 수업을 제공하고 강사들에게 충분한 수업 시수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학교는 묵묵부답이었다.[5]
교육기관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에 게으른 태도를 보여 온 학교는 강사들이 직접 문제 해결을 요구해올 때마저도 번번이 응답을 회피했다. 어학당의 원장은 이제까지 20번가량 진행된 교섭에서 단 세 차례만 얼굴을 비추었고,[6] 교섭 자리에서도 ‘행정 팀장과 이야기할 것’이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총장의 위임을 받아 교섭 장소에 나타난 학교 측 관계자들도 노동문제에 대한 쟁점이 등장할 때면 ‘우리에게는 권한이 없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권한이 없다’는 관계자들과 강사들과는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원장 사이에서, 강사들은 오랫동안 문제 해결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결국 연세대학교에는 ‘책임운영기관’이라는 이름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 무엇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연세대학교는 어학당의 명성과 성과를 전방위에 홍보하면서도 질 좋은 교육을 위한 투자나 고민은 줄곧 외면해왔다. 최수근 지부장은 ‘합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것들만 보장하는 지금의 행태는 결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학교와 어학당은 끈끈하게 얽힌 채로 서로의 역사를 함께해왔다. 그러니 학교 측이 어학당의 내실 있는 운영과 질 좋은 교육을 위해 힘써야 함은 명백하다. 게다가 ‘세계 최고’가 된 어학당의 명성 뒤편에 노동 착취가 있었으며 강사들의 생계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다면, 지금의 역설적인 상황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연세대학교에 물어야 했다. 그래서 강사들은 연세대학교와의 싸움을 택했다.
연세대학교는 ‘업계 1위’라는 평판과 ‘국위 선양’이라는 낡은 프레임으로 어학당 내부의 노동 착취를 감춰왔다. 여러 가지 이유로 상황을 그저 감내해야 했던 강사들은 어렵게 한 발을 뗐고, 학교와 대화를 시작하려 한다. 지난 8월 12일에 학내 언론들과 나눈 연대의 마음을 안은 채로, 강사들은 여전히 힘들고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어학당의 위치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우리는 강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꾸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인데,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노력과 노동이 다른 이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별히 ‘악마 같은’ 교수자나 상관이 아닌데도, 그가 나의 성과를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괜스레 위축되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이는 어느 노동 현장에서나 발생할 수 있고, 다양한 위계관계를 넘나들며 반복되어 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강사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듣고, 주목하고,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누군가의 노동이 폄하되고 필요한 존중과 대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절대 용납되지 않는’ 일이 될 때,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노동에 조금씩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한데 모인 목소리를 통해 우리의 노동이 더욱 촘촘히 연결되고, 더욱 튼튼히 서로를 튼튼히 지탱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공일오비는 한국어학당 시간 강사들의 투쟁에 연대하며, 모두의 노동이 존엄한 노동이 될 수 있는 세상을 그려본다.
편집위원 서로(lilywithwd2016@gmail.com), 아리(ououpp@naver.com)
[1] 민주노총 대학노조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지부는 시급 5,000원 인상, 수업시수 20시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2] 강사들은 지난 5월 18일 열었던 기자회견에서 학교가 ‘자체 평가 기준’에 따라 시수를 배정할 뿐 구체적인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문제를 언급했고, 이것이 강사들의 불안감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3] 한국어학당의 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석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강사들의 말에 따르면 연세대학교는 자대출신 강사들이 많이 뽑는 관행이 자리해왔고, 이로 인해 사제관계와 노사관계의 중첩은 강사들에게 불가피한 문제였다.
[4] 연세대학교 홍보팀, 2014. 11. 16 “<한국어학당> 국내 최초, 세계 최고의 한국어 교육기관”. (https://www.yonsei.ac.kr/_custom/yonsei/_app/ocx/news/app.jsp?mode=view&ar_seq=20715&sr_volume=569&list_mode=list&sr_site=S&pager.offset=0&sr_cates=15)
[5] 이화여대의 경우, 코로나 이후 수업 정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수업 시수를 확보했다.
[6] 2021년 8월 12일 기자회견 당일 기준 학교 측과의 교섭은 20차례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