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세편집위원회 Jun 30. 2019

<120호> 해로운 새다

수습 편집위원 nope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수능 망한 고3”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봤다. 영상의 주인공은 바닥에 떨어진 라면에다가 마치 새의 머리처럼 생긴 우산 손잡이를 갖다 대고 “비둘기야 밥 먹자~ 구구구구구구~”라고 말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 손잡이에 컵라면 국물을 부으며 마구 웃기도 하는데, 이 영상이 나에게만 인상적이었던 건 아니었는지 조회 수도 아주 높고, 패러디도 많이 등장했다. 저 영상을 본 이후로 나는 비둘기만 보면 “구구구구구구~”를 떠올리게 됐다. 비둘기를 뜻하는 한자(鳩)의 음이 ‘구’라서 그런 걸까? 게다가 참새처럼 생긴 ‘구구’라는 이름의 포켓몬은 진화하면 ‘피죤’이 된단 말이다! 어쩌면 참새가 비둘기 새끼라는 헛소문은 이 때문은 아니었을까? ^^ 많은 연세 학우들이 구독하는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는 게임 ‘포켓몬 고’에서 이 ‘구구’를 활용한 효율적인 레벨 업 방법이 올라오기도 했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머리에는 ‘비둘기집 원리’부터 떠오를지도 모른다. 비둘기집 원리는 ‘미닫이창의 원리’, ‘서랍 원리’로 불리다가 1940년에 ‘비둘기집 원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용어를 택할 당시 서양에서는 편지를 원통형으로 말아서 사용했고, 여러 개의 원통형 구멍으로 칸이 나뉘어 있는 보관함을 이용했는데, 그 모습이 비둘기집처럼 보였다는 이유였다. 이 편지함에 구멍이 n개 있고, 편지는 (n+1) 통이 있다면 적어도 한 구멍에는 2통 이상의 편지가 있을 것이라는 원리다. 잡설은 이 정도로 해 두고, 이제 진짜로 우리가 매일 보는 비둘기를 알아보도록 하자.   

   


너의 이름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비둘기의 분류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려 한다. 비둘기 종의 범주는 논쟁적이고 생각보다 상당히 헷갈리기 때문이다. 이름만 보면 ‘집비둘기’는 원래 한반도에 살던 비둘기, ‘양비둘기’는 서양에서 이주해 온 비둘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정반대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사육된 바위비둘기를 집비둘기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특히 바닷가의 절벽이나 동굴에 주로 사는 토종 비둘기를 양비둘기라고 부른다.

   바위비둘기를 검색하면 Columba livia, 양비둘기를 검색하면 Columba rupestris, 집비둘기를 검색하면 Columba livia 혹은 Columba livia domestica가 나온다. 그리고 기사에는 주로 ‘우리의 토종 텃새 양비둘기를 몰아낸 외래종 집비둘기’라고만 나온다.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한 건 바로 양비둘기의 이름이었다. 여기에 쓰인 ‘양(洋)’은 보통 서양에서 왔다는 의미로 붙이는 접두사다. ‘rupestris’는 검색해 보니 ‘돌’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러면 ‘양비둘기’가 바위비둘기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토종’ 텃새가 도대체 왜 ‘양’비둘기란 말인가? 혼란하다, 혼란해! 자, 한번 제대로 정리해 보자.

   나는 Columba livia를 바위비둘기, Columba rupestris를 양비둘기, Columba livia domestica를 집비둘기에 대응시킬 것이다. 바위비둘기와 양비둘기는 학자에 따라 같은 종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찰스 보리(C. Vaurie)는 두 종이 습성이나 서식지 등의 특정한 상태보다는 아예 종적인 특징에서 다르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둘의 부리와 깃털을 비교한다. 그에 따르면 양비둘기의 부리가 더 작고, 깃털의 멜라닌 수치가 낮아서 꼬리 부분에 회색이 아닌 흰색 선이 있다. 그는 꼬리 부분의 중간선, 그리고 목소리를 구별 도구로 제안한다. 두 종의 서식지가 많이 겹치는데도 둘을 다른 종으로 분류하는 이유다. 이런 정보도 알게 된 김에 거리에 보이는 비둘기의 꼬리와 부리를 한번 관찰해보면 어떨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생각보다 귀엽다.

   바위비둘기는 식용/애완용/경주용으로 길러지며 집에서 살게 되었지만, 일부는 야생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이때 집에서 사는 이들과 도망친 이들을 통칭하여 집비둘기라고 부른다. 양비둘기라는 이름은 1882년에 미국의 조류학자인 루이스 조이가 부산에서 포획하여 올리면서 붙여졌다. 한국에서 이들은 주로 낭떠러지나 해안절벽 구멍에 살았다. 그래서 ‘낭비둘기’나 ‘굴비둘기’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도시에서도 살았지만 1990년 전후로는 남해안의 도서 지방에서 해식동굴이나 해안절벽에 서식했다. 가까운 일본에는 한 마리도 살지 않아서 고려비둘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식지를 고려할 때, 바닷가에 산다는 이유로 그들의 이름은 바다 양이 붙은 ‘양비둘기’로 지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비둘기의 체계는 다음과 같다. 우선 비둘기목이 있고, 그 다음이 비둘기과, 그리고 비둘기속이 있다. 여기서 Columba livia와 Columba rupestris라는 두 종으로 나뉘고, 각각이 바위비둘기와 양비둘기다. 그리고 여기서 집에서 키워지는, 혹은 그러다가 도망간 비둘기는 집비둘기라 불리는 것이다. 

    

나는 빛이- 나는- 둙-이-♬


   비둘기 종의 분류를 알아봤으니 이제는 어원을 알아보자. ‘비둘기’의 어원에 대한 자료가 워낙 없어서, 신빙성이 좀 떨어지는 자료라도 모아 보기로 했다. 그러니 어원 이야기는 그저 ‘재밌는 썰’ 정도로만 생각해 두는 게 좋겠다. 비둘기는 한국의 오래된 텃새라서 중종 이전부터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15세기의 <월인석보>에는 '비두리', 중종 이전으로 추정되는 <시용향악보>에는 '비두로기', 17세기의 <박통사언해>에는 '비다ᆞ갈기', 17세기의 <역어유해>에는 '비돌기', 18세기의 <동해유해>, <한청문감> 등에는 '비들기'로 나온다. 여기서 '비두로기'가 가장 처음의 형태로 추정되는데, 이는 '비'+'두록'+'-이'로 이루어진다. 이 중 '두록'은 중세국어 '둙', 즉 '닭'을 의미한다. 당시 사람들은 비둘기를 닭의 일종으로 본 것이다. 받침의 ㄺ 중 ㄱ이 뒤의 '-이'와 결합하여 '기'가 된 형태가 꾸준히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비둘기가 닭의 일종이라는 생각은 이후로도 딱히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비'는 비둘기의 날개가 빛이 나서 붙인 것이기 때문에 '비둘기'는 '빛이 나는 닭' 정도의 의미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비둘기에서 ‘비’와 ‘기’가 모두 ‘새’를 의미하고, ‘둙’이 ‘닭’을 의미한다는 설도 있으나, ‘새닭새’보다는 ‘빛이 나는 닭’이 좀 더 말이 될 것 같다. 

   비둘기는 특히 성경에 아주 많이 등장한다. 비둘기는 기본적으로 성질이 온순하여 길들이기가 쉽고 날개의 힘이 강하여 멀리 날 수 있고(시편 55장 6절), 노아의 대홍수 때 물이 걷힌 마른 땅을 찾아낸 이후에(창세기 8장 8~12절) 올리브 가지를 물어 온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구약에서는 비둘기를 번제물 중 하나로 사용했고(창세기 15장 9절; 레위기 1장 14절; 12장 6, 8절; 민수기 6장 10절), 특히 가난한 자들의 제물로 사용하기도 했다(레위기 5장 7절; 12장 2, 6~8절). 비둘기는 순결(마태복음 10장 16절) 혹은 성령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중 성령을 상징하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마가복음 1장 10절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마태복음 3장 16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요한복음 1장 32절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누가복음 3장 22절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비둘기는 성령의 하강을 묘사할 때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누가복음 3장 22절에서는 명백히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나타났다고 서술하기까지 한다. 이는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스 문화에서는 비둘기가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비둘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매우 유사한 디오네라는 이름을 가진 신을 모시는 신전에서는 신탁을 내리는 여사제들이 비둘기로 지칭되었다. 새와 예언의 능력이 연결되는 이유는 당시에 비둘기들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령 새로 사육되었기 때문이다. 비둘기들은 종교적 상상력 속에서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물로도 이해되었다. 이런 맥락이 영향을 주어 누가복음에서는 비둘기가 곧 성령의 화신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비둘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절제’를 상징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둘기는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매파’와 대비되는 의미인 ‘비둘기파’는 평화를 지지하고 유화적인 국가적 태도를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매파는 전쟁 지향적이지만, 비둘기파는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묻고 이익을 조정하여 협상하자고 주장한다. 이처럼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기 때문에 올림픽 때 비둘기를 날리기도 하고, 앞서 보았듯이 비둘기가 순결함이나 깨끗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영국의 유니레버는 1957년에 ‘도브’라는 미용·위생용품 브랜드를 설립했다. 여기서 비둘기가 브랜드의 이름과 로고로 채택된 이유는 “순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단번에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마술사의 모자 속에 얌전히 들어가 있는 비둘기, 편지를 보내는 용도로 훈련된 전서구를 생각해도 새 중에서 비둘기는 특히 사람과 친했다. 과거에는 주로 전서구로 훈련되었지만, 통신기술이 발달한 후에는 경주용으로 훈련되었다. 비둘기 경주는 원래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되었지만, 중국, 일본, 최근에는 특히 이라크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비둘기 경주는 비공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비둘기 경주 대회는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10월에서 3월 사이에 열리고, 여기서 우승하는 비둘기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곤 한다. 이라크에서는 약 1억 원 정도에, 최근 중국에서는 무려 16억 원 정도에 팔린 경주용 비둘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비둘기를 납치해서 몸값을 요구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금의 비둘기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이처럼 훌륭한 성질들을 상징하는, 그리고 사람과 친했던 비둘기가 어쩌다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원래 비둘기는 인간의 요청으로 인간 옆에 살기 시작했다. 1만 년 전 유럽에서 바위비둘기를 사육했는데, 이 비둘기들은 가금화되어 순종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6세기 고대 페르시아에서 전서구로 사용되었다는 기록부터 시작해서, 보불전쟁과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도 비둘기는 교신에 활용되었다. 최근에는 IS가 외부와의 교신을 위해 전서구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전서구들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지만, 동시에 전쟁에서 죽고, 전쟁의 후유증으로 죽어 갔다.

   한국에서 비둘기는 시장에게 사육될 만큼 사랑받기도 했다. 서울시 사진아카이브에는 1962년과 1964년에 당시 서울시장이 시청 앞에서 비둘기를 사육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나무와 같은 높은 곳에는 비둘기들이 들렀다 갈 수 있는 집도 지어져 있었다. 당시에도 비둘기가 유해한 동물로 인식되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명시적으로 비둘기가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된 건 2009년이다. 지금은 ‘비둘기’를 검색하면 가장 위에 있는 추천 검색어가 ‘비둘기퇴치’일 만큼 비둘기는 추방의 대상이다. 한국에서 비둘기 혐오의 유래는 1986년 아시안게임, 그리고 그 이후 88올림픽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주로 보는 비둘기들은 모두 집비둘기로, 대부분이 외래종이다. 국내에 집비둘기가 급증한 것은 20세기 후반으로, 집비둘기들은 1960년대 이후 크고 작은 행사에 동원하기 위해 수입됐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각각 3000마리가 방사됐으며 1985년부터 2000년 사이에 대통령배 고교야구 개막식, 한민족 체전 등을 포함하여 모두 90차례에 걸쳐 비둘기를 날리는 행사가 열렸다. 그러니 이때만 해도 비둘기가 제거 대상으로 여겨지진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원래 한국에 살던 토종 비둘기인 ‘양비둘기’의 개체 수는 급감했고, 최근에는 전국을 통틀어 겨우 수십 마리 정도만 확인된다. 어떤 비둘기들은 직접 사람에 의해 멸종되기도 했다. 철새 비둘기의 멸종 원인은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과 서식지 파괴는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이 88비둘기에게는 슬픈 역사가 있다. 88올림픽 당시 성화에 불을 올리면서 거기에 앉은 비둘기들이 불타 죽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88비둘기 화형식이라고 불리며, 그 이후로 IOC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비둘기 날리는 것을 금지했다고도 한다.

   이 집비둘기들이 도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가가 비둘기의 생태 습성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많은 수를 들여와 방생한 결과였다. 집비둘기는 다른 비둘기 종보다 번식 성공률이 높다.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포식자로부터 위협을 느끼지 못한 비둘기는 짝을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유전적 다양성도 높아졌다. 그래서 비둘기의 생김도 다양하다. 평균 2개의 알을 낳는 비둘기의 포란 기간은 20일 정도다. 한 달이면 둥지를 떠나는 새끼는 생후 7주면 다른 성체와 어울릴 만큼 다 자란다. 선천적으로 비둘기는 뛰어난 번식력과 적응력을 타고났다. 이렇게 해서 집비둘기들은 순식간에 도시를 점령했다. 여러분은 비둘기들이 온 거리에서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건물의 난간 등에 떼로 앉아서 쉬는 모습을 흔히 보았을 것이다. 바로 이 도시 비둘기들의 조상이 일명 ‘88비둘기’인 집비둘기들이다.      


비둘기가 뭘 잘못했다고


   도시 비둘기 혐오의 가장 큰 축은 바로 청결이다. 사람들은 비둘기가 더럽다고 근처에 안 간다. 비둘기가 날갯짓을 한 번 할 때마다 세균이 얼마나 날리는지, 비둘기를 데려와서 씻겼더니 벌레가 욕조 가득 나왔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이 인터넷을 떠돈다. 그러나 비둘기는 원래 깨끗하다. 산에서 살 때는 하루에도 샤워를 두세 번씩 한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씻을 곳이 없고, 환경은 오염되어 더럽다. 환경오염이 비둘기의 건강이나 위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비둘기가 환경오염을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비둘기의 신장, 간, 간장, 부리, 발톱, 뼈 등 생체조직에 카드뮴이나 납, 아연과 같은 중금속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조사한다든지, 비둘기의 깃털이나 알껍데기에 중금속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검사하여 환경오염 실태를 조사한다든지 말이다. 그리고 도심, 공단, 농촌 지역의 집비둘기 번식생태를 비교 조사한 논문에 따르면 도심이나 공단 지역보다 농촌 지역에서 태어나고, 건강하게 자라서 둥지를 떠나는 비율이 매우 높다. 

   그러니 도시 비둘기의 삶은 시작부터 기구하다. 『데미안』에 따르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알을 깨고 나와 신에게로 날아간다는데, 도시 비둘기는 알에서도 힘들게 나오고, 나와서 신에게 날아가긴커녕 둥지를 떠날 기회도 적은 셈이다. 원래 농촌이나 산에 살아야 할 비둘기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도시로 대거 이주하였고, 씻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생존과 번식마저 힘든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되니, 전에는 사육도 하고 집도 지어 주던 비둘기들이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됐다. 도시 경관을 해치고 곡물을 훔쳐먹는다는 이유였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관리지침이 지자체에 내려졌고 전국 공원에 있던 비둘기집이 하나둘씩 철거됐다. 퇴치제 이용, 그물 설치, 둥지와 알 제거, 포획과 살상 등이 가능해졌고, ‘농업에 피해를 주는 비둘기’를 효과적으로 퇴치할 방법이 연구·발표되기도 했다. 서울특별시의 정보소통광장에서 ‘비둘기’를 검색하면 비둘기를 퇴치하고자 이곳저곳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사업의 예산안을 볼 수 있다. 이렇게까지 해 놓고서 지자체와 환경부는 비둘기의 개체 수를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았다. 제대로 조사된 자료는 사실상 2009년의 자료가 유일하며, 이마저도 유해 야생동물 지정 이전이기 때문에 유효하지 않다. 

   정리하자면, 사람들은 비둘기를 전쟁이나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용도에 맞게 사육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비둘기가 다치거나 죽었다. 국가는 비둘기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사람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 외래종을 잔뜩 들여왔으며, 그 결과로 원주민인 양비둘기를 멸종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고서야 비로소 소중해진 양비둘기는 10마리만 발견돼도 난리를 치며 보호한다. 그 와중에 유해 야생동물이 된 집비둘기는 지자체장의 허가만 있으면 죽일 수 있게 해 둔 뒤 실태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얼마나 무책임한가! 나는 여기서 또 닳고 닳은 시를 한 편 인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성북동 비둘기는 이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는 상상해 본다. 아마 그 비둘기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거라고. “하지만 돌아갈 곳은 없다. 동네는 연일 공사 중이다. (중략)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쫓겨남으로 내몰리고 있다.” 성북동 비둘기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다. 도시에서 살던 양비둘기도 비슷하다. 집비둘기는 의도치 않게 철거 용역으로 동원된 셈이고, 그 이후에는 자신들을 불러온 이들에 의해 살해되거나 추방당했다. 당장 쫓겨난 비둘기와 그 이후 어차피 버려질 비둘기, 이 구도는 존더코만도마저 떠오르게 한다. 존더코만도는 홀로코스트 때 유대인 학살을 도운 유대인들의 작업부대다. 정확히는 가스실에서 죽어 나간 유대인들의 시체를 치우는 시체처리반이었다. 이들 또한 유대인이었으므로, 후에 같은 운명이 될 처지에 있었다.     


비둘기는 거리의 쥐?


   비둘기에 대한 혐오는 제도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혐오는 원래 대상을 배제하기 위해서라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특히 혐오는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도시 비둘기와 관련된 괴담들의 등장도 이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거리에서 파는 닭꼬치나 치킨의 원재료가 비둘기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괴담들은 너무 살이 쪄서 날지 못하게 된 비둘기를 ‘닭둘기’라고 부르는 것과도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 괴담은 MBC에서 2000년대 초반에 방영된, 당시 상당히 유행한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등장할 정도로 이곳저곳에 퍼져 있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뱀파이어 프란체스카는 거리의 비둘기를 잡아다가 치킨으로 속여서 팔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느 남성은 먹던 치킨을 입에서 떼고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거리의 비둘기들에게 달려가서 그들을 내쫓으며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무한도전에서는 초기에 치킨 장사를 하는 박명수를 멤버들이 놀릴 때 박명수가 남산에서 비둘기 잡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싸고 맛있게 먹고 봤더니 사실은 비둘기였다”라는 종류의 이야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일명 ‘피카츄 돈까스’라고 불리는 길거리 음식이나 참새구이가 비둘기 고기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그러나 닭고기는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비둘기보다 값이 싸다. 비둘기 고기를 먹는 중국에서도 식용 비둘기의 값은 닭 가격의 2~5배라고 한다. 물론 길거리에서 잡아서 팔 수야 있겠지만, 몰래 새를 대량으로 잡고 유통하고 ‘고기’로 만드는 과정은 결코 효율적일 수가 없다. 싼값에 사 먹는 닭꼬치를 만드는 데에 사용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니 저건 정말 괴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정말 어떤 뱀파이어가 비둘기로 치킨을 만들어 파는 게 아닌 이상 말이다).

   비둘기를 잡아먹는 노인과 ‘비둘기 여인’에 대한 괴담도 있다. 노인이 아침마다 빵 조각으로 비둘기들을 유인한 뒤에 이들을 잡아서 먹는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비둘기를 1000마리도 넘게 잡아 놓고 고양이, 개, 비둘기로 약을 달여 판다는 둥, 비둘기를 잡아다 안주로 판다는 둥, 별 이야기가 다 있었다. 실제로 집에 야생 비둘기를 수십 마리 잡아 놓고 기르며 함께 사는 여인의 사례도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저소득층이었고, 집이 더러웠으며, 이웃과 교류가 없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모두 ‘저렴함’과 비둘기가 연결된 사례였다. 이런 괴담들은 비둘기가 사랑받던 시절에는 전혀 없었다. 그러니 1996년에 발매된 언니네 이발관의 <비둘기는 하늘의 쥐>라는 앨범은 어쩌면 지금과 같은 비둘기 혐오를 예견한 제목일지 모른다.

   이런 요소들은 다 연결된다. ‘가난’, ‘노화’, ‘더러움’, ‘냄새’, ‘고립’. 노인, 노숙인, 장애인, 난민 또한 이런 편견을 공유한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그저 개인적인 ‘불행’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불행’이라는 말은 “불쌍하다” 정도에서 생각을 멈추도록 함으로써 문제를 탈정치화한다. 만약에 누군가가 왜 가난해졌고 못 씻게 되었는지, 지금 사회에서 노인은 어떻게 인식되는지, 왜 노인과 장애인, 노숙인의 고립사가 유독 많은지 생각해 본다면 이 문제들이 모두 정치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모두 세대, 복지, 주거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불행이 아닌 ‘불평등’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지만, 사회 속의 ‘노인’은 수많은 복지 정책과 환경, 그리고 개인의 삶 사이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노숙인’,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난민’은 전쟁을 일으키는 국제적 정치권력들과 이방인을 막고 추방하는 민족주의적 방어 기제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비둘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우리가 비둘기를 다루는 방식그리고 사회 속에서의 비둘기의 존재 양식이 정치적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사회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비둘기를 동원하고 추방하고 포획하고 보존하며 살해한다. 비둘기는 잡혀 오고 팔려 오고 쫓겨난다. 비둘기는 도시-사회적으로 동원되고 정책적으로 폐기된, “도시의 폐기된 비인간 행위자”다. 그저 당연히 길거리에서 더럽게 사는 줄만 알았던, ‘불쾌감’과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비둘기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양비둘기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고, 집비둘기는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동원된 이주민인 동시에 ‘유해 야생동물’로서 포획과 추방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불법체류자다. 

   더럽고, 냄새나는 사람들, 무기력한 사람들, 지친 사람들은 그들의 게으름이나 무능을 주로 비난받는다. 그러나 이처럼 아주 사적인 결함으로 보이는 냄새나 더러움, 재능과 체력도 개인의 책임보다는 사회 제도에 기인했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회가 원하는 용도에 맞게 잘 살다가 우연히 거리에 나앉게 된 경우가 많다. 그저 더럽고 무능해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 ‘버려진’ 사람들일지 모른다. 위생과 주거는 정치적이다. 비둘기는 이를 아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비둘기는 거리에 살며 사람들이 떨어뜨려 놓은 부스러기를 줍고 그것으로 생을 유지한다. 비둘기에게는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한다. 이런 비둘기의 모습은 거리로 내몰린 이들의 모습과 다른가? 비둘기에 대한 태도와 소수자에 대한 태도는 뭐가 그리 다르단 말인가? 빵부스러기는 동전, 폐지와 얼마나 다른가? 누가 그들에게 그만큼만을 허락했고, 누가 이를 방관했는가? 누가 비둘기를 죽이고 있는가? 

   세상이 무너진 후에 올리브 가지를 물어올 비둘기는 남아 있을까신촌 거리에 앉아 있는 두 집비둘기. 서로 반대편을 바라보며 각각 화면의 양쪽 끝에 서 있다. 바닥은 지저분하고 멀리에 쓰레기봉투가 보인다. 



nope (writingnope@gmail.com)




<참고 자료>


논문

Charles Vaurie, Systematic Notes on Palearctic Birds No. 48, Columbidae: The Genus Columba, American Museum Novitates, July 7, 1961.

이정우, 「自然公園과 野生鳥-양비둘기」, 한국자연공원협회, 《국립공원연구지》, 1990

편집부, 「[우리말 어원] 비둘기」, 『기계저널』, 44(5), 2004, 83쪽

김구원, 「성령의 비둘기 상징에 대한 고찰」, 『피어선 신학 논단』, 3(1), 2014, 11~29쪽

조대호, 「비둘기의 절제와 황새의 정의 - 포르피리오스의 Deabstinentia의 동물지성론 -」, 『가톨릭철학』, 19, 2012, 103~134쪽

이재정, 「‘매파’와 ‘비둘기파’에 대한 일상언어 철학적 개념분석 –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의 관점에서-」, 『대한정치학회보』, 13(3), 2006, 1~25쪽

변영우·황태윤·이중정·김창윤·정종학, 「대기 및 토양 오염의 지표로서 비둘기 조직의 연농도」,  『예방의학회지』, 29(1), 1996

이장호·이종천·박종혁·이유진·심규영·장희연·김명진, 「환경오염 지표종인 집비둘기의 생체조직 내 중금속 분포 특성」, 『환경영향평가』, 25(6), 2016, 502~513쪽

남동하·이두표·구태회, 「비둘기 깃털을 이용한 납 오염 모니터링」, 『한국환경생태학회지』, 16(3), 2002, 233~238쪽

이장호·이종천·박종혁·이유진·심규영·김명진·신영규, 「환경모니터링을 위한 집비둘기 알 껍데기의 중금속 축적특성 연구」, 『환경영향평가』, 24(6), 2015, 561~577쪽

김상진, 이두표, 「농촌지역에서 서식하는 집비둘기(Columba livia)의 번식생태」, 『한국조류학회지』, 14(2), 2007, 127~134쪽

임시규·김정태·신성휴·하태정·신상욱·오기원·박금룡·김범수, 「콩 밭에서 비둘기의 피해양상과 경감방법 연구」, 『한국작물학회』, 가을 학술발표회, 2008, 32쪽

김준수, 「한국의 발전주의 도시화와 ‘국가-자연’ 관계의 재조정: 감응의 통치를 통해 바라본 도시 비둘기」, 『공간과사회』, 28(1), 2018, 55~100쪽


그 외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달여리, 『기록자의 방』, 작은것이아름답다, 2018, 87쪽.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52226~52227번째 외침 “구구의 사탕 방정식”, 2017.03.13.

녕, 「닭이 울어야 세상이 산다」, 연세편집위원회, 《연세》, 2019년 봄호(통권 119호), 27~33쪽.

“‘닭둘기’에 밀려난 토종비둘기...지리산 사찰에 둥지”, 뉴시스, 2018. 7. 8.

“아우디 A6보다 비싼 1억짜리 비둘기”, 머니투데이, 2019. 2. 27.; “비둘기 한 마리가 16억원, 어떻게 생겼길래…”, 뉴스1, 2019. 3. 19. 

“[전쟁속의 동물들 (1)] 최고(最古) 통신수단 비둘기”, 중앙일보, 2016. 11. 18.

“Why Did The Passenger Pigeon Go Extinct?”, Forbes, 2017. 11. 24.

“무분별 방사 수입 비둘기가 토종 씨 말렸다”, 경향신문, 2017. 7. 10.; “그 많던 ‘집비둘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겨레, 2013. 8. 30.


YIRB 듣는 교지 사운드클라우드 들으러 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120호> 언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