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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Dec 13. 2021

호텔 조식 뷔페가 일상입니다.

항공사 승무원의 평범한 아침.

Huomenta!


후오멘따 ! (핀란드의 아침인사)

헬싱키에서 비행기로 약 한 시간 거리, 핀란드 중부 도시인 오울루(Oulu)의 한 호텔 조식 뷔페에 유니폼을 입은 동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테이블 의자에 순서대로 앉는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한 테이블이 이미 꽉 차서 식사 중인 동료들에게 아침인사를 건넨 후 바로 옆 테이블 자리에 혼자 앉았다. 그리고 몇 분 후 또 다른 동료가 나타나 내 앞자리에 앉았다.


유니폼을 입고 다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경우는 꽤 드문 일이다. 우리 회사의 베이스인 헬싱키로 돌아가는 이른 아침비행이 있을 때에만 그렇다. 이 날은 원래 호텔의 조식 뷔페가 문 열기 한두 시간 전인데, 회사와 호텔 간의 계약상 우리 승무원들을 위해 호텔 측에서 간단하게 조식을 준비해주었다. 각자 커피와 오렌지 주스, 오믈렛 대신 준비된 삶은 계란과 소시지, 토스트와 버터 등을 챙겨 와 식사를 한다.


비행 팀원들은 고정 멤버가 아니라 그날그날 비행에 따라 랜덤으로 배정이 되기 때문에 특별한 친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 보통의 핀란드인들이라면 상당히 불편했을지 모를 자리지만, 이런 일이 익숙한 승무원들이라 어떻게든 어색한 자리를 헤쳐나간다. 간혹 분위기를 띄워보려 농담을 하는 동료가 있으면, 그 의도를 알아챈 나머지 동료들이 애써서 웃어준다. 역시 배려 넘치는 핀란드인들. 아직 일 시작하기 전인데, 조식 테이블 위로는 주로 일 이야기가 오고 간다. 기장, 부기장, 사무장, 팀원들이 다 모였으니 일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일하는 기분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다 함께 하는 아침 식사 자리가 생길 때면 평소보다 덜 먹게 된다는 동료, 아예 아침을 거르고 잠을 더 잔다는 동료도 있다.

공짜지만 조식 뷔페 사양합니다!


오울루는 헬싱키보다 조금 더 춥다.



요즘 나는 푸켓 비행을 자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일주일 당 운행하는 비행 수가 적어 목적지에서의 체류기간이 길어졌다. 4박 5일을 체류한 적도 있다, 오예!

우리 회사 승무원들이 묵는 곳은 푸켓의 한 고급 리조트다. 트로피컬 분위기가 물씬 나는 레스토랑, 저녁 뷔페라고 해도 될 만큼 푸짐한 조식 뷔페. 호텔이 아닌 현지 식당에서는 보기 드문 다양한 치즈와 샐러드, 페이스트리가 정갈하게 놓여있다. 한쪽에서는 요리사가 주문하는 대로 국수를 만들어주고, 또 다른 편의 요리사는 오믈렛과 스크램블드 에그 담당. 또 한쪽에서는 뭔가를 열심히 튀긴다.


테이블을 골라 의자에 앉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다가와 커피와 차는 뭘로 할 건지 물으면,  "English breakfast tea with milk, please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차와 우유로 주세요)" 하고 최대한 우아하게 말하고 앉는다. 이런 곳에서 아침식사라니, 푸켓은 호텔 조식 뷔페가 일상인 승무원들에게도 설렘과 흥분을 안겨주는 곳이다. 이런 아침식사를 작정하고 거르는 동료는 최소한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동료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기장님, 부기장님 1, 부기장님 2도 한 자리에 앉는다.

물론 이런 호화로운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 가족, 친한 친구라면 좋겠지만, 비행기 안에서 열 시간을 넘게 함께 일하며 온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늘 뭐 할 거야? 이따가 수영장에서 볼까?"

호텔 조식 뷔페 후에 대부분의 나머지 시간도 동료들과 기꺼이 함께 보낼 수 있다.

푸켓은 파라다이스니까.


푸켓 리조트 호텔 조식 뷔페
푸켓에서 크루아상을 먹는 바보.



일본 나고야의 호텔.

내가 방 번호를 대자, 항공사 직원임을 알아차린 조식 뷔페 직원은 내게 자리를 안내하겠다며 레스토랑 깊숙이 가장 구석진 자리로 데려갔다. 처음엔 자리도 내 마음대로 못 앉나 하고 생각했는데, 안내한 자리에 가니 동료 한 명이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동료는 잠시 당황하는 기색이 보였지만 반갑게 나를 맞았고 우린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알고 보니, 그 동료가 혼자 식사를 하고 싶어 일부러 구석에 가서 앉았는데 그런 사정을 알리 없는 호텔 직원은 나름대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 나를 내 동료가 있는 자리로 안내해 준 것이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조식 뷔페에서 굳이 '구석진 자리'를 택하는 일은 그 동료뿐 아니라, 우리 승무원들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다.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고, 여유롭게 핸드폰이나 책을 보며 식사를 즐기고 싶을 수도 있고, 노메이크업이나 부스스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결론은 혼자 먹고 싶기 때문이다.

남들은 비싼 돈 내고 호캉스를 와서 멋지게 차려입고 조식 뷔페를 즐기는데, 그 사이에서 나도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즐기는 것이 매무새가 좋아 보이겠지만 이를 마다하고 굳이 혼밥을 즐기는 데에는 그럴만 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제일 먼저 나와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다음에 나타난 사람이 비행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던 동료가 아니라 잠깐 인사만 했던 기장님이라면. 서로를 못 알아봤다면 다른 테이블에 앉아 각자 먹으면 되지만, 뷔페 특성상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뒤늦게라도 마주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식사를 따로 하기도 함께 하기도 참 애매한 상황이 돼버린다.

노메이크업일 때도 그렇다. 아침 먹고 호텔 헬스장을 이용할 예정이거나, 오후에 떠날 비행에 대비해 낮잠을 좀 잘 생각이라면 굳이 아침부터 메이크업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노메이크업으로 아침 식사를 하러 갔는데, 못 알아볼 줄 알았던 동료가 신기하게도 알아보고 내 앞에 앉는다면. 식사를 하는 내내 괜히 신경 쓰인다. 반대로 못 알아보면 더 신경 쓰인다. '못 본 척하는 건가' 아님, '못 알아볼 정돈가'. 그냥 아예 구석 자리에 숨어서 식사를 하는 것이 제일 신경 안 쓰인다.

아, 투명인간이고 싶어라.


나고야에서도 나는 아침에 크루아상을 먹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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