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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05. 2019

여느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오전에 면접을 보고 왔다. 오후에 또 면접을 보러 가야 한다. 긴장을 많이 했다. 긴장을 풀기 위해 글이라도 써야겠다 싶어 컴퓨터를 켰다. 브런치를 시작하길 잘했다. 나에겐 글쓰기 만한 스트레스 완화제가 없다.




'웃음'이라는 건 좋은 것이다. 내가 구구절절 설명 안 해도 웃음이 주는 긍정적 효과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으리라. 나는 특히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웃을 때 더 행복하다. 그 사람이 웃어서 나도 웃게 되면 행복 받고 두 배로 행복하다.


대학교 신입생 때의 일이었다. 우리는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 한 학번 선배인 09학번들과 10학번 새내기인 우리는 지하철에서 킬킬대며 무언가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의 레이더에 한 여성분이 우리의 대화 때문에 웃긴데 차마 대놓고 웃을 수는 없어서 웃음을 꾹 참고 계시는 모습이 포착됐다. 물론 내가 "그냥 편히 웃으세요"라고 말할 정도의 재간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 그분은 끝까지 웃음을 삼킨 채 서계셔야 했지만 괜히 뿌듯했다. 오늘 저분의 하루에 웃음을 드린 것 같아서.


그때 문득 떠올랐던 시가 바로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였다.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후략)




그 후에도 잦지는 않았으나 나의 의도치 않은 남에게 웃음 주기는 계속됐다. 한 번은 추운 겨울 서울에서 버스를 탔을 때였다. 김이 잔뜩 서린 창문이 답답했고 나는 손에 힘을 잔뜩 줘 창문의 김을 닦았다. 그러다가 창 밖의 외국인들과 눈이 마주쳤다. 행색으로 보아 외국인 노동자들로 보였다. 그들은 내게 신난 웃음을 보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창문을 닦는 행동이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행동으로 오인 된것이다. 나 역시 모른 척, 그들에게 환한 웃음과 제대로 된 손 흔들기로 답례했다.


아마 그날 그들은 숙소에 돌아가 말했겠지. 오늘 왠 여자가 버스에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줬다고. 죄송합니다, 사실 창문 닦은 거였어요.




이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사진가 오빠와 어느 감독님과의 미팅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오빠가 요즘 장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오빠에게 장에 좋은 약을 추천해주려고 했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장난기 많은 오빠가 대뜸 약의 이름을 뱉었다.


정로환?


그러자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고 계시던 할머님께서 갑자기 웃음이 빵! 터지셨다.


아이고 깔깔깔 정로환 깔깔깔


무려 1902년 개발된 약, 정로환. 다른 이름으론 '염소똥'이 있다. 그 약의 이름이 할머님의 향수나 재미난 옛 추억을 자극한 것일까, 할머니는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하셨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 둘은 살짝 당황했지만 나 웃으라고 던진 오빠의 농담에 할머님까지 웃게 되신 게 즐거워 함께 웃었다.


나중에 할머님은 우리 둘이 닮았다고 부부냐고 까지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남매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여느 작가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시라. 여느 작가는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며 그 나름대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의도했건 안 했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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