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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15. 2019

최근의 가슴 뻐근했던 만남들에 대해



나는 외향적이면서 내향적인 사람이다. 실제로 100퍼센트 외향적이거나 100퍼센트 내향적인 사람은 없다. 누구나 외향, 내향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말은 잘하고 붙임성은 좋은 편이다. 물론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을 때만. 혹은 그 자리가 내가 편히 말을 해도 되는 자리라고 생각할 때만. 그래서 종종 "넌 도통 캐릭터를 모르겠다"는 말을 듣곤 한다. 나는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인데 몇 가지 상황만 보고 판단을 내리려고 하니까 모르겠는 것뿐이지 내 원칙은 단순하다. 그리고 단순한 내 원칙하나 더. 보편적으로 나는 사람 만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누굴 만나러 가야 하면 씻어야 하고 화장도 해야 하고 옷도 입어야 하고 버스나 지하철도 타러 가야 하고 어휴 할 일이 너무 많다. 진짜 큰 맘먹고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람 만나는 것을 아예 놓지 않는 이유는, 사람과의 만남이 주는 그 행복과 영감, 가슴 뻐근함이 좋아 미치겠기 때문이다.



뮤지컬 감독 A 감독님


나는 그를 매우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당연하지. 그는 유명했으니까. 나는 그의 뮤지컬이 참 좋았다. 물론 그가 나를 알리는 만무 했다.


매우 특이한 이력을 가진 A 감독님과 직접적으로 처음 본 것은 내가 PD 생활을 할 때였다. 우리 방송에 출연했던 그를 외부 촬영 다녀왔다가 스쳐가듯 잠시 봤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나와 친한 다른 PD 오빠가 A 감독님이 번역가를 찾고 있다며 연락이 왔다. A 감독님의 이름 세 글자를 본 순간 나는 무보수로 라도 일하겠다고 당장 답장했다. 그렇게 나는 A 감독님의 연락처를 받았고 메시지를 한두건 주고받았을까, 그는 자신의 작품들 만큼이나 빠른 템포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내 우상이었던 감독님과의 통화라니. 상투적 표현이지만 나는 볼이라도 꼬집어보고 싶었다. 그 주에 바로 우리는 미팅을 잡았고 감독님은 밥부터 사주셨다.


밥자리에선 일 얘기 안 하기로 해놓고 결국 일 얘기도 반찬거리처럼 하게 됐다. 그래도 나는 내내 행복했다.


내가 이만큼 컸구나 싶었다. 내가 그의 뮤지컬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고작 사춘기 소녀 때였다. 그런 내가 이제는 제법 자라서 그와 업무 미팅을 진행 중이라니. 그것도 정식으로 페이도 받으면서. 그리고 그런 생각도 했다. 어쩌면 내가 그가 눈물 흘리며 뿌렸던 씨앗 중 하나 일지도 모른다는. 나중에는 내가 그의 평전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감독님이 그리고 있는 꿈과 자세한 업무 내용은 비밀 유지 계약서상 밝힐 수 없어 이 정도만 적어둔다.



작가, 에디터, 그리고 사진작가


최근 우리는 우연히 다 같이 모이게 되었다. 세 사람을 전부 다 알고 있는 나도 예상치 못한 오후의 만남이었다. 장소는 사진작가 D의 전시회장.


오후의 만남은 밤까지 이어졌다. 인사동의 불빛마저 아름다운 밤이었다.


작가 B와 에디터 C 사진작가 D는 모두 대책 없는 사람들이다. B와 C는 글을 위해, D는 예술 사진을 위해 안정적 수입을 마다하고 마이너스 수입을 내고 있으면서도 멈출 생각을 않고 있다.


이들이 형편없는 작가, 에디터, 사진작가여서 수익이 마이너스인 것은 절대 아니다. 분야가 원수다. 아무도 안 하려는 분야, 사람들이 별로 관심 없는 분야를 오직 사명감 하나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B와 C는 미국에서 반듯한 직업도 있었고 B는 중국 국제학교의 교장이기까지 했다. 그런 그들이 50에 가까운 나이에 글 때문에 다 내려놓았다니. 나는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저렇게 생기 넘칠 수 있을까.


D도 마찬가지다. 나는 D의 프로젝트를 응원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D의 프로젝트에 쓸데없는 참견으로 찬물을 끼얹는다. "돈 안 되는 짓을 왜 하느냐", "너도 그만하면 됐지 않았느냐" 그러나 D는 멈출 생각도 없거니와 빚을 먹튀 할 생각도 없다.


그들은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내게 많은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 사진작가 D가 말했다.


My professor says, "We did not come to the Earth to make money."


집에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One book, one photo, one person can bring changes to the world.



정말 가슴 뻐근했던 만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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