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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22. 2019

노래 한 곡을 둘러싼 중국, 대만, 일본의 병X력 대결

리샹란/야마구치 요시코의 삶 - 친일 행적과 참회


1940년 만주국에서 가수 리샹란은 ‘님은 언제 다시 오시려나(何日君再來)’라는 곡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 곡은 공전의 히트를 쳐서, 만주국 뿐만 아니라 일본, 상하이, 홍콩, 타이페이 및 중화문화권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런데 이 노래를 두고 중국, 대만, 일본에서 각기 다른 해석이 나오며 노래는 논란의 중심이 된다. 


먼저 중국과 대만은 리샹란의 일본 점령하 만주국에서 발표된 노래가 유행하는 것은 중국과 대만의 항일의식을 말살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여기에는 리샹란의 출생배경도 한몫을 했다. 그녀는 중국 대륙 태생이지만 양친이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대만 국민당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님은 언제 다시 오시려나(何日君再來)’의 '君’이 중국 공산당의 '모택동'을 의미한다며 노래를 금지시켰다. 


일본도 노래를 달가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도 ‘君'을 문제삼았는데 ‘日君’이라는 표현이 '일본군을 오지 못하게 해야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표현이라며 트집을 잡았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그저 정치병 환자들의 병X력 대결로 밖에 안보인다. 



리샹란/야마구치 요시코의 삶 - 친일 행적과 참회 


리샹란

일본 패망 후 중국인 리샹란은 친일 청산 대상에 올라 사형선고를 받는다. 실제로 그녀는 1940년대 중국의 7대 가성이라 불렸으며 중국을 점령중이던 일본에 의해 십분 활용되어 각종 정치 선전 영화에 출연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호적상 일본인(야마구치 요시코)임을 증명해 기적적으로 사형 선고를 뒤집고 중국에서 추방당한다. 


야마구치 요시코 

중국에서 추방당해 호적지인 일본으로 간 야마구치 요시코는 후에도 연예인으로 꾸준한 활동을 하다가 은퇴한다. 후에는 자민당 소속의 국회의원 뱃지를 달기도 했다. 1992년 정계를 은퇴한 그녀는 72세의 나이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부위원장을 맡아 한국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은 1995년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위안부는 일제의 강제적 행위였으며 국민적 반성과 책임이 따른다고 호소했다. 젊고 어린 시절에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 하는 '입'으로 활동했던 그녀가 이제는 참회자가 된 것이다.


리샹란/야마구치 요시코의 생전 모습 [출처=연합뉴스]


그녀는 2014년 작고했다. 


그녀의 과거 친일 행적과 이 후의 반성에 대해 좀 더 알고싶었으나(특히 그녀 자신이 직접 회고한 것이 있다면) 더 찾지 못한 점은 개탄스럽다. 일본어를 공부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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