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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Cafe 하나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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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니 Oct 29. 2022

우기의 시작

"항상 의욕이 없고 우울해서 침대에 누워 있고만 싶었는데, 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삶에 의욕이 생겼습니다. 아내와 함께 다른 많은 일들을 합니다.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겨 기쁩니다."


영어공부를 위해 틀어 놓은 TV에서 나오는 뉴스이다. 동쪽 어딘 가에 사는 그는 우울증 환자이다. 최근에 호르몬이 나오는 기구를 뇌에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한다. 뇌 수술을 한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참 별 수술도 있다 싶다.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우울증 이란 병이 과거보다 심각한 질병이 된 것 같다. 정말 어쩔 수 없을까 싶기도 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해 그럴까? 정말 호르몬으로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일까?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것이 뉴스가 되기도 하나 싶기도 했다. 아침 메인 뉴스에 이런 내용이 나올 수도 있구나 싶었다. 전 세계적으로 자살 율이 늘었다는 통계와 유명 연예인을 따라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늘었다는 통계로 사회문제가 된 것이 사실이니 문제가 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맑기만 했던 날씨가 오늘은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우기의 시작인가 보다. 일기예보가 틀릴 것 같았는데 기어이 그들의 손을 들어준 것 같다. 우기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습하고 불편하다'이다. 비가 오는 것이, 가끔 바라보는 것은 운치도 있고 좋지만 생활을 하는 것에는 불편함을 동반하는 일이라 활동에 제약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우기에 가끔 마주하는 맑은 날은 마치 선물 받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안개비나 가랑비라 아랑곳하지 않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아이들 운동도 하고 비 오는 가운데서도 상관없이 자기 일 들을 하는 이들이 많은 터라 그들은 익숙해 있는가 싶었다. 난 조금씩 익숙해지고 싶은데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너도 오늘 늦었네."

"핸드폰을 가지러 다시 들어가질 말았어야 했어. 항상 그래. 시간이 되는 줄 알고 가지러 들어갔는데 버스가 좀 일찍 왔나 봐. 버스를 놓쳤네."


늦은 오후 출근을 위해 나선 길이다. 30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나보다 먼저 와 기다리던 여인은 정거장으로 다가오는 다른 여인의 물음에 답을 한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라 생각하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려 한다.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낯선 이들의 대화에 안테나를 올린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핑계라는 생각에 미소 지으며 외모는 달라도 우리네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부터 시작이네. 또 열 달을 기다려야겠어."

"그러게. 올해는 블루베리가 크고 맛있었어. 햇살이 좋았던 거 같아."

"올해는 눈이 좀 오려나?"

"글쎄. 작년에는 눈이 덜 왔으니 올해는 좀 더 오지 않을까?"

"비도 좀 더 오겠지?"

"그렇겠지?"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는 동안 버스가 왔고 차례로 올랐다. 정거장이 노선의 초입이라 자리는 제법 있었으나 대부분 한 명씩 앉아 있었다. 그중 가운데 위치한 자리에 앉았다.


옆 창가 쪽에는 반백의 머리를 하신 고상하게 생긴 할머니가 가지런하고 다소곳이 앉아 미소를 지어주신다. 버스가 출발하고 몇 번의 정거장을 지났을 때쯤 하얀 기둥을 앞세우고 승객이 제법 줄을 지어있는 정거장으로 다가선다. 멈춰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이리로 향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움직인다. 그들 중 셋은 친구인가 보다. 성별이 구분이 안 될 거 같은 이들 셋을 보며 정말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에 수술 자국만 있다면 흡사 프랑켄슈타인이라 생각될 키 크고 우락부락한 여인과, 그 여인의 가슴팍에도 못 미칠 작고 뚱뚱한 여인은 머리는 짧게 잘랐고 앞 이는 튀어나왔으며 큰 소리로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저리 떠드는가 싶어 한참을 쳐다보다 옆에서 나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고상한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와 나눈 눈짓에는 마치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웃으며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공짜로 회화 공부 상대를 만났다 생각하며 대화를 열심히 했다. 할머니는 나의 목적지와 같은 곳에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자신은 차가 있으나, 오늘은 마침 차가 고장이 나서 버스를 탔단다. 우리의 대화도 무르익어 가고 그들의 대화도 왁자지껄함으로 주변 이들에게 그들의 대화를 큰 소리로 공유시키며 이어져 갔다.


우중충한 습한 내음인지 어디선가 살짝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났다. 기억에 있는 것인데 무엇 인지는 몰랐다. 할머니와의 대화에 신경을 쓰고 열심히 말을 하느라 미간의 주름 정도로 남았다.


날씨 이야기, 사는 이야기, 처음 보았으나 대화는 주절이 주절이 이어져 갔으며 무슨 이야기든 하려던 나는 이상한 냄새의 정체는 잠시 잊게 되었고 비가 오기에 길이 좀 막혀서 대화의 시간은 좀 길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어울려 대화를 하던 세 명의 일행 중 작고 통통한 여인이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다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내용을 다 들은 것은 아니나 “I love you.”라 큰 소리로 외치며 울었다. 마치 이별을 통보받은 여인처럼 여러 사람이 지켜 봄에도 상관없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우는 이를 바라보는 것은 난처함과 당황스러움이 되었다. 불편함도 함께.


그런데 이번엔 옆의 할머니의 눈에서도 흐르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고장 난 것이 서러운 것인지, 그녀의 인생사가 서러운 것인지 모르나 그녀는 운다. 좀 전의 우아함으로 사는 이야기를 차근차근하던 그녀는 이제 갑자기 그녀의 신세를 한탄하는 듯 운다.


 난 어찌할 줄 몰랐다. 어떻게 무엇을 위로해야 하는 것일까? 갑자기 변한 사람들. 울음은 그렇게 번지는 듯했다. 나에게도 이 상관없는 이 상황이 덮칠 것 같았다. 그러다 냄새의 정체에 대한 기억이 났다. 그것은 알코올 냄새였다. 그녀는 술을 마신 것이다.


'정상이 아니다.'


조금 전까지 횡재의 대상이었던 그녀는 이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프랑 케인 쉬타인을 연상시킨 여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고 나도 또한 변하게 될 거 같은 공포. 이제 와 생각하면 공포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 상황을 공포로 느꼈던 나도 비정상이었나 보다. 불편의 정도가 지나쳐 공포로 느껴졌다.


정신병동에 정상인이 갇혔다 풀려난 것 같은 안도감.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떠오른 감정이었다.


공공교통수단은 일정한 장소까지는 폐쇄된 관계로, 우기가 시작되는 날 타게 된 버스는 괴상한 이야기들을 모아 방영했던 TV시리즈 "환상특급"되어 외계의 생명체를 만난 것과 같은 공포를 나에게 선사했고 종점에서 내리며 환상특급버스에서 하차하는 순간 마주한 해방감은 비록 삶이 고달파도 정상범위 안에 있다는 안도감을 내게 선사했다.


그들의 눈을 적시게 한 것은 날씨로 말미암아 마주한 우울이었는지 모르겠다. 두 달의 여름으로 열 달의 우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있어, 날씨가 사람의 마음을 좌우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Sunshine vitamin”이라 불리는 비타민 D의 합성을 햇빛이 도와준다는 연구도 있다. 이 비타민은 우울증을 줄여준다 한다.


동부 끝 어디엔가 살며 우울증으로 뇌 수술을 받아야 했을까 했던 그 아침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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