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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상인 Apr 24. 2016

말벌과 나

우리는 두 번째 만났다.



나갈 곳을 찾나 보다.


   천장에 가까이 붙어 날아다니며 가만있지 못하고 구석구석 부지런히 수색하고 있다. 봄이 왔다고 활개를 치며 날아다녔을 테지. 꽃을 찾아 여기저기 신났었겠지. 들어올 땐 좋아서 들어왔겠지만 나갈 땐 고생이구나. 그래, 너를 보니 봄이긴 한가 보다. 저놈을 처음 목격한 그 순간엔 몸집도 크고 통통한 것이 어울리지 않게 눈먼 벌이 되어 길을 헤매고 있으니까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명색이 저들 세계에선 힘 좀 꽤나 쓰는 놈에 속할 텐데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색은 변해갈 수밖에 없었다. 저놈이 안 나가고 계속 저러고 있으니 사실은 좀 무섭다. 정수리 위에서 들려오는 '붕~붕~'하는 소리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녀석이 빨리 나가야 내가 마음을 다 잡고 일을 좀 할 텐데 도저히 신경이 쓰여서 내 고개는 놈의 동선만 졸졸 따라다니고만 있다. 요즘 같은 학기 초엔 온갖 행정업무가 겹치고 쌓여 바빠서 숨 돌릴 틈도 없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빨리 문서작업을 해놔야 하는데 오늘만 벌써 두 번째란 말이다. 내 귀한 시간을 저 놈이 자꾸 앗아가고 있으니 수명이 단축되고 당이 쭉쭉 떨어지는 기분이다. 아까 들어왔던 녀석이랑 지금 저놈이랑 같은 놈인지 다른 놈인지는 이름표가 안 붙어있으니 알 수가 없지만 이런 식으로 남의 공간에 함부로 침입하는 거, 한 번은 애교로 넘어가도 두 번은 좀 무례한 것 아닌가 싶다. 짜증이 올라온다. 그래도 혹시 이놈이 바깥으로 안 나가고 우리 층 복도로 나갔다가 아이들 교실에라도 들어가면 애들이 얼마나 무서워할까 싶어 조용히 복도 쪽 문을 닫는다. 자, 그럼 창문 하나만 열려있으니 나갈 길은 정해졌다. 이제부터 난 가만있을 테니 어디 한번 잘 빠져나가 보렴. 그놈의 붕붕 소리, 에휴.


화단에 핀 봄 꽃 (2016)



   형광등이 꽃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자꾸 형광등에 자기 몸을 갖다 댄다. 뜨거우니까 깜짝 놀라서 떨어지고, 그래 놓고 다시 또 갖다 대고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야, 형광등에 엉뚱한 짓 하지 말고 밖으로 나갈 생각이나 하라고! 나도 모르게 말벌에게 호통을 치고 있다. 예민하다.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혼자서 왜 저렇게 화를 내나 싶을 거다. 호통을 쳐놓고 저 놈이 혹시나 내게 달려들까 봐 벽에 붙어 서서 민첩하게 움직일 채비를 했다. 거참, 나약하다. 네 놈이 모기나 파리만 되었어도 나에게 자비란 없었을 것이다. 당장에 저 살충제 스프레이를 손에 쥐고 사정없이 뿌렸을 터, 말벌쯤 되니까 내가 예우를 해주는 것인데 어찌 저렇게 무례하냔 말이다. 때마침 우리 학교 창문엔 방충망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이것은 시설의 문제로구나! 이런 식으로 방충망도 하나 설치할 수 없는 재정난이 문제인 건가. 그렇다면 이건 국가의 문제인 거군. 말벌이라는 벌레 하나가 들어왔을 뿐인데 나는 마치 불평불만벌레에 물린 사람처럼 하염없이 투덜대기 시작한다. 화가 난다. 그렇지만 내가 저를 죽일 이유도 없지 않은가. 신경 쓰이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TV 모 프로그램에서 설명해 주는 것을 들었는데 벌은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녀석들도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했던가. 죽은 듯이 가만있을 테니 제발 인간 따위는 신경 쓰지 말아 줄래. 저것들은 냄새에 예민할 텐데 내 몸에서 향수 냄새가 나진 않겠지. 노란색을 좋아한다던데 내 주변에 노란색을 두면 안 되겠다. 만약에 날 공격하려 든다면 내려쳐서 죽여야 하나, 살충제를 뿌려야 하나. 저놈의 움직임을 내려쳐서 제압할 만큼 내가 그렇게 민첩한 인간이었던가. 모기나 바퀴벌레용으로 나온 살충제가 말벌한테도 효과가 있으려나. 그렇다면 일단 손에 뭐라도 들고 있자.


   애써 침착하려 하지만 저 놈의 침입으로 순간 참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며 혼자서 저 놈을 얼마나 경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비장하다. 내 곁에는 오지도 않는데 말이다. 저 놈이 무슨 죄가 있겠나. 나는 창문을 열어놓았을 뿐이고, 저 놈은 지나가다 들렀을 뿐인 것을. 좀 전까지 쉬는 시간에 내 앞에서 기침을 해대던 아이들이 잔뜩 다녀가기도 했고, 발목을 삐어 아프다고 칭얼대던 축구 쟁이들에게 스프레이 파스도 뿌려준 터라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야만 했다. 아주 활짝 열었더랬지. 어서 들어오라고 안내판을 붙인 것처럼.


밤에도 봄 꽃 (2016)



   분명 아까 오전에 한 번 들렀더랬다. 이 동네에 저런 말벌은 여러 마리가 있겠지만 어쩐지 아까 그놈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단 말이지. 오전에도 들어왔다가 한참을 여기저기 처박고 겨우 밖으로 나갔었다. 덩치가 크다 보니 천장에 처박는 소리도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소리만으로도 저놈의 체중이 느껴진다. 자기도 아팠겠지. 그랬으면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는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두 번째 실수에선 대처가 좀 더 노련할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 저 놈이나 나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전에 들린 불청객을 겨우 떠나보내 놓고도 설마 하며 창문을 다시 활짝 열었던 나, 천지에 꽃이 활짝 피어 신나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깜빡 속아 네모난 공간에 갇혀버린 저 말벌. 결국 우리는 아차 하며 또 다짐하는 거지.


세 번째 만남은 없는 걸로 하자.



실수(失手)
(1) 부주의로 잘못을 저지름. 또는 그 잘못.
(2)  말이나 행동이 예의에 어긋남.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 흔히 남의 신세를 질 때나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상대방의 양해를 구할 때 쓰인다.
[출처] 다음 국어사전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런 화창한 꽃봄에 말벌의 침입을 예상치 못하고 창문을 너무나도 활짝 열어둔 부주의가 실수인 거고, 니 놈은 인간이 머무는 고요한 보금자리에 함부로 들어와서 붕붕 소리를 내며 성가시게 하는 행동이 예의에 어긋나는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놈아 알겠니. 힘없고 빽 없지만 너는 꽃을 찾아서, 나는 행복을 찾아서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건 너나 나나 거기서 거길 텐데, 같은 처지끼리 미워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작작하고 이제 그만 좀 나가주겠니?


멍청아, 창문 열어놨으니 왔던 길로 다시 나가라고!


   나의 단말마와도 같던 호소 섞인 호통이 울려 퍼지자 마치 모든 설움은 혼자 다 받아낸냥 벽에 붙어서 몸을 엄청 부딪혀 댄다. 저건 분명 서러움이야. 저도 저 뜻대로 안 되니까 짜증이 났나. 어떻게 도와줘야 저놈이 나가나. 녀석이 있는 동안엔 신경이 쓰여서 아무것도 못하겠는 나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란 말이다. 그래, 말벌이 되어 보기로 한다. 내가 말벌이면 어떤 느낌이 들어야 길을 찾을까. 꽃향기를 찾아다닐까. 이 공간에서 꽃향기로 유인해 밖으로 내보낼 방법은 없지. 그렇다면 햇살인가. 이토록 눈부신 날 채광은 어찌나 좋은지 바깥이나 여기나 다를 게 없다. 그럼 바람을 타고 나가는 건 어떨까. 저런 곤충들은 공기의 흐름에 민감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들어갈까 봐 아까 차마 열지 못하고 내 이 한 몸 저 녀석과 싸워 승리하리라 숭고하게 다짐하며 닫아놨던 출입문을 한번 열어봤다. 맞바람이 친다. 바람을 타고 썩 물러가 주렴. 제발 이 방법이 먹혀들길 바라며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거미줄 (2015)



   결론부터 말하자면 녀석은 나갔다. 내 맞바람 작전이 먹혀든 건지, 인내의 기다림이 때를 맞이한 건지, 저 혼자 노력하여 돌파구를 찾은 것인지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곤란하지만 하여간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녀석은 나갔지만 냉큼 창문을 닫기가 싫었다. 어차피 난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텐데 저놈이 나갔다고 꼭 창문을 닫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혹여 세 번째 만남이 온다 하더라도 내 뜻을 굽히고 싶지는 않았다. 창문은 좀 더 열어두기로 한다. 들어올 테면 들어오라지. 좀 더 의연하게 너를 맞이해 볼 테다. 내게는 너의 침입보다 아이들이 콜록대며 뱉어놓고 간 감기 바이러스가 빠져나가게 환기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파스, 소독약 냄새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피하는 게 더 중요하다. 프린트기에서 빠져나오는 미세먼지와 아이들이 북적대며 놀러 와서 흩어놓고 간 바닥의 먼지를 바깥으로 날려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단 말이다. 사소한 너 따위에게 매달리느라 중요한 걸 놓치고 싶지 않단 말이다.


   말벌이 떠나고 난 자리에 나는 여전히 이렇게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긴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능력선에서 예방을 해보고 그래도 안된다면 그냥 겪어봐야 한다. 자꾸 겪다 보면 요령도 생기고 마음은 더욱 단단해지겠지. 사실은 별 것 아니었구나, 결국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하는 깨달음도 생기겠지. '두 번 다시'라는 말이 있지. 예를 들면,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는 하지 않을게. 라던지.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야.라는 말 같은 거 말이다. 그러면 '두 번 다시' 앞에 겪은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건가. 너무 가혹하다. 두 번은 겪어봐야 한다.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고 두렵기만 했다. 두 번째 땐 첫 번째 때 겪어봤으니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눈에 선하여 예고된 고통에 분노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세 번째 땐,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얼추 알고 있으니 좀 더 대처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호통을 치고 있을게 아니라 방법을 찾거나 받아들이고 기다리면 된다. 저 놈이 날 깨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지. 흠.


아 물론, 이런 일은 애초에 단 한 번이라도 겪지 않는 게 좋겠다. 모든 종류의 슬픈 일은 예방이 최선이고, 겪지 않는 게 행복하게 사는데 더 도움이 될 테니까. 그리고 다시는 슬픈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도 맞는 일이다. 그렇다고 '두 번 다시' 찾아온 일에 너무 절망하지는 말아야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였다.

고작 저 말벌 하나가 날 이렇게나 골똘하게 만들다니, 그 어떤 경험도 헛된 것은 없구나. 훌륭하네.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말벌도 꽃을 찾으러 다니기는 하는 걸까, 그 덩치로 꽃잎 위에 앉으면 그 꽃은 멀쩡하려나? 외모로 상대를 평가할 생각은 없다만 녀석의 덩치는 너무 위협적이다. 에헴.


말벌, 이젠 오지 마라.

우리 세 번째 만남은 부디 없는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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