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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ve bin Jan 06. 2021

호의와 경계의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

약수역으로 한 면접을 보러 갔다. 손을 꺼냈다가는 온몸이 바로 덜덜 떨리는 추위가 느껴지는 날이었다. 운이 좋게도 6호선 보문역에서 지하철을 타자마자 제일 좋은 끝자리에 앉게 됐다. 폰으로 열심히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미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슬쩍 보니 옆에서 한 할아버지께서 꾸벅꾸벅 조시고 계셨다. 근데 옆으로(?) 조시는지 내 어깨에 무게가 꽤 실리는 게 느껴졌다. 바로 드는 생각은 그냥 슬쩍 밀어서 내 어깨에 닿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분은 얼마나 피곤하시면 지하철 역에서 조실까, 혹시 내릴 곳을 찾지 못하신 분은 아닐까?반무의식적으로 슬쩍 어깨를 빼려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살짝이라도 나한테 기대면 편하시겠지, 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이때 했던 행동들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됐다. 어깨를 빼지 않고 있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의 호의가 남에겐 불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유럽여행을 갔을 23살 때, 버스나 지하철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면 보통 외국인들이 미소를 지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세 달 넘게 유럽에 있다 보니 그런 행동이 적응이 되기도 했고, 은근히 그 형식적인(?) 미소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한국에 가면 나도 그 기분 좋음을 전파하리라, 다짐했다.

한국에 와서 대중교통을 타면 서로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워 눈을 마주치게 되는 일이 흔하다. 앗! 마주쳤다, 싶으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다 이상했다. 한 번은 갑자기 다가와서 번호를 물어보길래, 나중에 물어보니 미소를 보인 것이 자기가 좋다는 뜻 아니었냐고 묻더라. 또 오히려 자리를 피하며 나를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바라보기도 하는 사람도 왕왕 있었다.


이때 느낀 것은, 아무리 호의여도 그게 이상하게 느끼기 왕왕 쉽다는 것이었다. 문화적 맥락이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건 내가 밀고나간다고 바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문화가 바뀌기 전에 나는 경찰서에 끌려갈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확실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한국에선 어깨를 내어주는 것보단 살짝 피해주는 것이  보편적이며, 우리 문화 규범에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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