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낯선 타인이 되었다
축복이 끝난 자리, 현실이라는 전쟁터
임신 테스트기에 선명한 두 줄이 뜨던 날,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배가 불러올 때마다 우리는 뱃속의 아이에게 속삭였다. "아가야, 빨리 만나고 싶어. 엄마 아빠가 행복하게 해 줄게."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산후조리원을 나서는 순간, 그 핑크빛 낭만은 셔터가 내려가듯 차갑게 종료되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집은 더 이상 안락한 '스위트 홈'이 아니었다. 그곳은 24시간 비상 사이렌이 울리는 야전 병원이자, 휴전 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최전방 참호였다.
모든 것이 처음인 초보 엄마와 아빠. 아이의 울음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르는 무지(無知), 2시간 이상 이어 자지 못하는 수면 박탈, 그리고 호르몬의 장난으로 무너져 내리는 감정.
그 혼돈 속에서 가장 먼저 부서진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사이'였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은데, 왜 우리는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적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오늘은 육아보다 먼저 찾아온 우리 관계의 균열에 대해, 그리고 그 아픈 시간을 건너온 고백을 하려 한다.
첫 아이 육아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기저귀를 가는 손은 떨렸고, 목욕을 시킬 때면 행여나 아이가 다칠까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건 '여유'가 단 1g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마셔야 했고, 화장실조차 문을 열어놓고 가야 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낯설었다. 늘어진 티셔츠, 헝클어진 머리, 퀭한 눈동자. '나'라는 여자는 사라지고 오직 '누구 엄마'라는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었다.
그때 찾아온 불청객이 바로 '산후우울증'이었다. 베란다 창밖을 보며 "여기서 뛰어내리면 이 고통이 끝날까?"라는 무서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편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어, 나 좀 살려줘"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 역시 한계치에 다다라 있었다. 늦은 밤, 야근에 찌들어 파김치가 되어 들어온 남편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다.
"자기도 힘들지? 나도 밖에서 전쟁 치르고 왔어."
그 말이 왜 그렇게 섭섭하고 미웠을까. 머리로는 안다. 가장의 무게,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밖에서 굽신거려야 하는 그 비애를. 하지만 당시 내 마음의 그릇은 종지보다 작아져 있었다.
'너는 그래도 밖에서 사람들 만나고 밥이라도 편하게 먹잖아. 나는 감옥에 갇혀 있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내가 더 힘들다"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인정 투쟁.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힘듦을 위로해 주는 동반자가 아니라, 나의 고통을 전시하고 상대의 고통을 깎아내리는 경쟁자가 되어 있었다.
거창한 이유로 싸우는 게 아니다. 육아로 인한 부부 싸움의 9할은 정말 치졸하고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된다.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 한 짝, 다 쓴 휴지 심을 갈아 끼우지 않은 게으름, 아이가 우는데 화장실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5분 늦게 나오는 행동. 평소라면 "아유, 칠칠맞기는" 하고 웃어넘길 일들이 그때는 마치 나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내가 지금 애 보느라 정신없는 거 안 보여?"
"아니, 그거 하나 치우는 게 그렇게 힘들어? 밖에서 일하고 온 사람한테 꼭 그렇게 바가지를 긁어야 해?"
나의 짜증은 남편의 무심함에 불을 질렀고, 남편의 방어기제는 나의 서러움에 기름을 부었다. 사실 그 싸움의 본질은 양말이나 휴지 심이 아니었다.
'나 지금 한계야. 제발 내 노고를 알아줘. 나를 좀 도와줘.'
라는 비명이었다. 하지만 여유가 없는 우리에게 그 비명은 날카로운 비난의 언어로만 출력되었다.
특히 산후우울증은 나를 철저히 고립시켰다. 아이가 잠든 잠깐의 시간에도 쉬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텅 빈 거실에 아이와 단둘이 남겨진 그 적막이 공포스러웠다.
늦게 귀가한 남편이 아이를 보며 "우리 아기, 오늘 잘 놀았어?"라고 웃을 때, 그 해맑음조차 증오스러웠다. 나는 하루 종일 이 아이와 씨름하느라 영혼이 탈곡되었는데, 당신은 잠깐 와서 예쁜 모습만 보고 가는구나. 당신은 관객이고, 나는 무대 뒤에서 피 흘리는 스태프구나.
그 박탈감은 남편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었다. 대화가 끊겼다. 필요한 말은 오직 아이에 관한 것뿐. "기저귀 사 와", "열 나니까 해열제 찾아봐". 우리는 부부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공동 육아 파트너, 아니 서로 눈치만 보는 하우스메이트로 전락해 버렸다.
그 지옥 같던 시간을 어떻게 건너왔을까. 역설적이게도 해결의 실마리는 '포기'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되기를 포기했고, 남편에게 완벽한 아빠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을 멈췄다.
어느 날 펑펑 울며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나 사실 미칠 것 같아. 아이가 예쁘지 않아 보일 때가 있어. 내가 엄마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
그때 남편이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자격이 왜 없어. 우리가 처음이라 그래. 못해도 돼. 집 좀 더러우면 어때. 시켜 먹으면 어때. 자기가 사는 게 먼저지."
그 말 한마디가 내 가슴에 박힌 얼음을 녹였다. 우리는 인정하기로 했다. 지금 우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고. 서로 짜증 내는 게 미워서가 아니라,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뇌가 고장 난 상태라고.
우리는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퇴근 후 2시간은 남편도 쉰다: 오자마자 육아에 투입하는 게 아니라, 씻고 멍때릴 시간을 준다. 그래야 남편도 에너지가 생긴다.
주말 반나절은 무조건 자유시간: 남편이 아이를 보고, 나는 나가서 커피를 마시든 서점을 가든 '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반대도 마찬가지)
감정 쓰레기통 비우기: 자기 전 10분,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오늘 이게 힘들었어"라고 털어놓기만 한다. 해결책 제시는 금지. 그냥 "그랬구나, 고생했네"라고 들어주기.
시간이 약이라는 말, 당시에는 듣기 싫었지만 지나고 보니 맞았다. 아이는 자랐고,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어린이집에 갔다. 우리에게도 숨 쉴 구멍이 생겼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준 것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서로의 손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그 '노력'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산후우울증이라는 깊은 늪에서 나를 건져 올린 건, 결국 늦은 밤 서툰 솜씨로 아이를 안고 "엄마 좀 자게 우리가 나가 있자"며 현관을 나서던 남편의 뒷모습이었다.
육아는 장기전이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엄마 아빠가 행복한 것이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비싼 장난감이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의 눈빛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지금도 우리는 가끔 싸운다. 여전히 육아는 힘들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는 서로를 공격하는 적군이 아니라, 이 거친 육아의 바다를 함께 항해하는 유일한 '전우'라는 사실을.
지금 울고 있는 당신에게
혹시 지금 아이를 재워놓고 숨죽여 울고 있는가?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현관문 소리가 반가움보다 짜증으로 다가오는가?
당신 잘못이 아니다.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지금은 누구나 다 미치도록 힘든 시기다.
부디 기억해 주길 바란다. 이 폭풍우는 언젠가 반드시 지나간다. 그리고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에는, 전보다 훨씬 깊어진 뿌리를 내린 두 나무가 서 있게 될 것이다. '부부'라는 이름의, 그 단단한 나무가.
첫 아이를 키우던 그 시절, 저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여자인 줄 알았습니다. 밤새 우는 아이를 안고 창밖의 어둠을 보며 "내 인생은 끝났어"라고 되뇌었죠.
하지만 돌아보니 그때가 끝이 아니라, 진짜 제 인생의 2막이 시작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견디며 저는 더 강해졌고, 남편과의 갈등을 봉합하며 우리는 더 성숙해졌습니다.
특히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남편에게, 혹은 병원에, 주변에 꼭 도움을 요청하세요. "나 좀 도와줘, 나 지금 아파"라고 말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 밤, 퇴근한 남편에게, 혹은 육아 퇴근을 한 아내에게 따뜻한 눈빛 한 번 보내주세요.
"우리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 고생했어."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우리는 전우니까요.
전우애로 똘똘 뭉친, 유다람 드림
https://litt.ly/yoodaram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