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상자

제1부 - 일종의 머리말 (5)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문학동네

by 유병천
엄청난 책을 선물로 받았다. 첫 페이지를 읽다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갔다. 집중력을 높여 다시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14. 어릴 적 친구들


클라리세가 말했다. "해로운 것을 스스로 금지하는 것은 생명력이 있다는 증거예요! 해로운 건 기진맥진한 사람을 홀려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니체는 예술가가 예술의 도덕적인 면에 너무 집착하는 건 약점의 표현이라고 했는데"

"내가 만일 발터라면 니체에게 결투를 신청했을 거야." 울리히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72~73


해로운 것은 기진맥진한 사람을 홀린다는 말이 마음에 닿는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오래 참아왔던, 몸에도 좋지 않은 담배를 찾는 것도 같은 이유일까. 어린 시절의 재능이라 불리던 것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더는 재능이 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많은 곳에서 새로움이 낡음을 갈아치우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변화에 순응하느냐 피하느냐 맞서느냐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



15. 정신 혁명


무덤 속으로 들어간 그 세기는 특별히 후반기에 두각을 나타냈다고 할 수 없었다. 그 세기는 기술과 상업, 연구 면에서는 똑똑했지만, 자기에너지의 중심 밖에서는 늪처럼 조용하고 기만적이었다. 그림은 고대인들처럼 그렸고, 시는 괴테와 실러처럼 지었으며, 집은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었다. 또한 이상에 대한 요구가 경찰의 지휘 체계처럼 삶의 모든 표현을 지배했다.
-81


과학적인 측면과 예술적인 측면을 표현한 것 같다. 그 사이에 인간은 갈등하며 하염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이상에 대한 요구가 경찰의 지휘 체계처럼 삶의 모든 표현을 지배했다는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어쨌거나 사람들은 갖가지 이유에서 이미 지나간 시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마치 아들의 스무 살과 아버지의 스무 살 사이에 놓인 삼십에서 오십 년 사이의 공백기처럼 말이다.
-81


미래보다야 조금 더 알 수 있겠지만, 지나간 시대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다만 안다고 느낄 뿐일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보다 미래에 관심이 많은 법이니까.



19세기의 마지막 이십 년을 달군, 기름처럼 미끈한 정신에서 불현듯 전 유럽에 모종의 열병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누구도 그 열병이 앞으로 무엇이 될지 정확히 몰랐고, 누구도 그것이 새로운 예술과 새로운 인간, 새로운 도덕, 혹은 사회적 변혁으로 이어질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때문에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했다.
-82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뿐인가. 불확실한 미래에 계획 따위가 무의미 하다면 나도 역시 나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할까?



세기 전환기의 마술적인 시기에 구현된 이런 환상은 어찌나 강했던지, 어떤 사람은 아직 살아보지못한 새로운 세기를 향해 환호성을 올리며 달려갔고, 어떤 사람은 어차피 다시 나오게 될 집으로 들어가듯 옛 세기 속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이 둘이 서로 무척 다른 행동 방식임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말이다.

따라서 내키지 않으면 지나간 그 ‘운동’을 굳이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 운동은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수시로 변하는 소수 지식인 계층에서만 일어났다. 온갖 차이에도 불구하고 굳건한 세계관으로 무장한 채 다행히 오늘날 다시 위로 올라간 인간들에 의해 한목소리로 경멸당하는 지식인들에게서 말이다.
-82~83



강렬한 변화가 예고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대응할까? 카카니엔의 상황과는 다르지만, 1900년대 말에 폭발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인터넷의 등장이 생각난다. 새로운 흐름에 따를 것이냐 그것을 무시하며 기존의 방식을 택하느냐의 고민에 빠졌던 기억이다. 당시의 난 20대였고 강렬하게 시대의 흐름 속으로 뛰어 들었다.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있는 아들을 걱정하던 부모님은 인터넷과 어울리지 못했고 과거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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