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문학동네
엄청난 책을 선물로 받았다. 첫 페이지를 읽다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갔다. 집중력을 높여 다시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청춘 때는 자신을 빛내려는 충동이 자신을 밝은 빛 속에 비추어보려는 충동보다 훨씬 강한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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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욕구는 청춘 때 더 강한 모양이다. 세상의 지혜 속에 자신을 비추려는 시도보다 작은 장점을 더 크게 느끼는 모양새다. 우매함의 봉우리에 올라가는 이유도 자신을 빛내려는 욕구가 훨씬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혜가 쌓이면서 젊은 시절의 우매함을 깨달았을 때 겸손이 찾아온다.
선명했던 경계는 모든 방면에서 모호해졌고, 인척관계가 된 뭐라 표현할 길 없는 새로운 능력과 함께 새로운 인간과 관념이 부상했다. 물론 이런 인간과 관념은 나쁘지 않았다. 그건 확실했다. 다만 좋은 것에 나쁜 것이 약간 과하다 싶게 섞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진리에다 오류를, 의미에다 융통성을 섞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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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발전을 다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상상으로 만든 세계관을 믿고 살던 시대에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역설적으로 더욱 선명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상상으로 만든 일련의 이야기들이 허구였음을 알았을 때 혼란이 엄습한다. 논리의 시대에 과거의 이야기를 믿고 사는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의 시대에는 그들의 인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념이 과거의 관념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런 시기에 '섞임'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었을지 모른다.
마치 피나 공기가 한순간에 홱 바뀐 듯했다. 비밀스러운 시대병은 이전 시대에 있던 천재성의 싹을 집어삼켰고, 모든 것이 새로움으로 반짝거렸다. 결국 사람들은 세상이 실제로 더 나빠졌는지, 아니면 자신이 나이가 들은 것뿐인지 더는 알지 못했다. 이어 마침내 새 시대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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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시대의 변화의 속도는 더뎠다. 아버지의 삶과 아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생겨났다. 산업혁명 이전 새로운 대륙을 찾아 떠났던 시기에 이미 권력과 자본의 만남이 커다란 이익을 준다는 것을 학습한 후라 과학과 자본의 만남은 어느 때보다 빠르고 강하게 이루어졌다. 말을 잘 타는 것이 더는 천재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우주여행을 이야기하는 시대이라도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욕망이 올바르지 못한 방향을 향해갈 때 우린 결코 원하지 않는 새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확고한 상투어 속에는 새로운 발견보다 인간적인 것이 항상 더 많이 담겨 있고, 어리석음에 의해 활용되지 않는 중요한 생각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어리석음은 온 방면에서 유연하고, 어떤 진리의 옷이든 걸칠 수 있는 반면에 진리는 그때그때 하나의 옷만 입고 하나의 길만 걸으며, 항상 불리한 상황 속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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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 상황적 지식, 시대적 합리 등 어리석음은 유연함의 옷을 입고 자기 합리화를 시킨다. 확고한 상투어라는 것은 누가 들어도 납득할 수 있는 언어일 것이다. 우리가 진리라고 부르는 그런 언어는 유용성과 합리성 앞에서 힘이 약해질 수 있다. 진리를 찾아 자신의 온 생을 걸었던 철학자들도 하나의 옷을 입고 하나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고된 여정이었을 것이다.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이 걸어왔던 길을 상상해 보게 된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는 자기 시대에 화를 낼 수 없어.’ 울리히는 이렇게 느꼈다. 또한 그는 살아 있는 이 모든 형상을 사랑할 준비가 늘 되어 있었다. 다만 공동체의 안락을 위해 사회의 요구처럼 그것들을 남김없이 사랑하는 건 그로서도 감당할 수 없었다. 그가 추진해 왔고 체험한 모든 것들 위에 혐오의 숨결이 내려앉은 지 오래였다. 그것은 무기력과 고독의 그림자이자, 대체할 감정을 찾을 길 없는 보편적 혐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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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힘겹게 따라가야 할까? 아니면 유유자적하며 기존의 삶의 태도로 관조하며 때론 외면할까? 수많은 고민 속에서도 혹은 발버둥에서도 울리히가 느낀 것처럼 무기력과 고독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우린 다만 자기 시대를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