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상자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3)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문학동네

by 유병천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24. 자본과 문화. 디오티마와 라인스도르프 백작의 우정, 그리고 유명한 손님들을 영혼과의 합일로 이끄는 직책




라인스도르프 백작은 디오티마의 집에 혼재된 이 두 가지 상이한 요소를 “자본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요약했다.
그의 신조는 간단명료했다. 관료뿐 아니라 공장 노동자든 성악가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로 하나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인간은 누구나 국가 내에 하나의 직책을 갖고 있다. 노동자, 제후 수공업자 할 것 없이 모두 공무원이다! 이것이 어떤 예외도 두지 않고 항상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유의 발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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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스도르프 백작은 '골수 애국자'라고 한다. 그리고 자본의 유용성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인 것 같다. 그리고 정치를 위해서 앞에서 나서서 일하기보단 분위기를 만들어서 일을 진행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주요 인물이 만날 수 있는 장소로 디오티마의 집을 선택한 것 같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을 때 구체적인 것은 제시하지 않더라도 일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인물로 보인다.


원칙적으로 보면, 디오티마의 집에서와 같은 막강한 사교 모임은 너무 소박하거나 거칠지만 않다면 실제로 인간적 단일성을 꾸며내려는 기만적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인간 활동을 모두 포괄하는 단일성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 어쨌든 그런 기만을 디오티마는 문화라 불렀고, 거기다 특정 수식어를 붙여 ‘우리의 오스트리아 옛 문화’라고 지칭했다. 그녀는 내면의 야심이 확장을 거쳐 정신으로 자리 잡은 뒤로 이 말을 점점 빈번하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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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표현하는 언어로 '문화'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정말 다양한 인간활동을 하나로 표현하는 언어는 없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카카니엔 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오스트리아의 옛 문화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평행운동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구체적인 사항은 없어 보인다. 디오티마는 추상적인 방향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한 것 같다.


디오티마는 저명한 손님들도 자신의 저녁 모임에서 항상 짝을 지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껏해야 자기 외에 한 사람하고만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대에 이미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누구와도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그로써 디오티마는 자기 속에서 동시대 인간들의 유명한 고통, 즉 문명이라는 이름의 고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비누와 무선주파수, 수학 및 화학 공식의 오만한 기호 언어, 국민경제학, 경험적 연구, 단순하지만 고상하게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함으로 가득 찬 거추장스러운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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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의 관심사가 아니라 대화의 주제도 개인화 되었다는 표현인 것 같다. 제국에 불어닥친 바람은 다양화와 개인화를 부추겼고 그 바람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특정 층의 전유물이었던 언어도 대중화의 과정을 거쳐 전문화와 세분화가 이루어졌다. 언어를 통해서 벽을 만들었고 어떤 언어를 배웠는지에 따라서 진지한 대화의 상대가 정해지기도 했다. 혹은 다른 분야에 호기심을 느낄 경우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서로 다른 분야의 이야기는 깊이 있게 나눌 수 없고 단순화해서 듣게 된다. 문명이란 이름의 고통이라는 표현이 와닿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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