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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Apr 01. 2022

고기잡이

아파트 재활용 수거장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산다.

먼 바다로 떠나기 전의 집합 장소인 셈인데,

색깔 있는 것부터 냄새나는 것, 넓은 것, 딱딱한 것, 투명한 것,

가벼운 것, 답 없는 것 등이 한데 모여 있다.

떠나는 때를 몰라 배웅은 못하지만

막힘없이 굴러가는 현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정리되지 않은 고기가 유난히 눈에 띈다.

편지글도 있기에 읽어보게 된다. 

기억을 머금고 잘 가라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빨간 노끈과 가위가 분위기를 제압하니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내용인즉슨 어항에 물고기를 제대로 분류해서 넣으라는 것이다.

잘못 넣은 물고기를 옷걸이에 코 꿰어 놓았다. 

본보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단속하는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친절은 잊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 중간지대는 없을까? 

꼭 없어야만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보기에도 애매한 것들이긴 하다. 

되도록 재활용하는 쪽으로 분류하기 마련이다.

버리면서도, 완전히 버려지지 않고 쓰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선한 마음에서다.

나 또한 그런 의도가 컸다.


하얀 벌집피자 같은 돌배 완충제는 내가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각종 포장재가 재활용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아저씨들 입장에서는 골치 아프게 걸러내야 하는 녀석들이다.

실랑이가 일어났을 법도 한 상황이 그려진다.

그런데 옷걸이에 코를 꿰어 전시한 모양이 원시적이라 

살벌하면서도 재밌다.

아무튼 살피고 조심해야 세상이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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