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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May 18. 2022

나나나나

한숨만 나온다. 

도시에서 생존하기엔 이주민이나 나무나 처지가 비슷하다.

급작스러운 고난을 견뎌야만 한다는 과업이 똑같다. 

나무를 지키려는 자와 자르려는 자, 둘 중에 

도려내는 자의 힘이 사회적으로 강한 건 맞다. 

잘라만 놓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미치는 효과는 의외로 미미할지도 모른다.   

나무는 숨 쉬는 화석처럼 그 생장 자체가 지구 환경을 보듬으며,

사색의 소재로도 자주 소환된다.


나무들의 잔가지 정리가 진행됐고 매우 과도했다. 

어린아이들이 나무의 형상을 그리기엔 좀 더 쉬워진지 몰라도

사회 통념상 너무 과한 처분이다. 

누가 무어라고 하진 않지만 누군가는 분명 

무음 저항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매연의 포화 속에 몇십 년을 버티며 산소공장 역할을 톡톡히 하는

그들의 꿋꿋함에 얼굴을 들 수 없이 부끄럽고 

다시 붙이면 살아날 수 있을까 뒷북도 쳐 본다. 

자르는 분이 닭발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트리하우스를 지으려 했는지는 몰라도

훤칠했던 그들의 역사에 먹칠을 한 건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어째서 관대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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