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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Jan 29. 2023

지지직 찌직

어떤 질문에 답하면서 시작된 것 같다.

가까운 지인의 이야기로는 내가 사회를 향한 분노가 많다고 한다.

특히 어떤 현상을 보는 시각에서 너무 분개한다는 것이다.

목구멍으로 침을 한 번 삼켰다.


머나먼 꼭짓점 댄스가 되어 버린 어린 시절을 뒤로 하고

도시에서는 부침이 많았다.

나는 늘 차디찬 바람이라고 주창했는데

긴긴 시간이 틀어 놓은 각도를 잘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실 바로잡는다는 사고도 이상한데

현재의 모습이 분명 탈이 난 것이다.


의식은 개인과 사회를 내달리며, 

심연이라는 광장에서 곧바로 기준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흉내는 낸다.

시대를 증언할 이유로, 혹은 한계로.


남아 있는 머리카락이 마치 더듬이가 되어

온갖 것들에 신경 레이저를 쏘아대다 보니

언제인가부터 수집과 판단, 기억의 피로가 쌓여

기대와는 달리 자꾸만 걸려 넘어지는 경험만이 더해졌다. 

(겉으로는 상당히 평온하다.)


비록 삶의 조건이 충분한 건 아니나

주어지고 발길 차이는 장소에서

찬바람에 구르는 돌멩이 신세일지언정

이 모습 그대로 존재해도 된다는

생각의 온도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느 시대의 인간으로 놓여져

어느 장소의 주민이 되고

어떤 생각의 주체로 살지

분노하지 않는다면

과연 존재라 할 수 있는지.


평소 억세기로 소문난 미래(드림로)를 달리다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트럭 뒤에 바짝 섰다.

꼭지 레버와 양쪽으로 뻗친 더듬이 같은 빨간 등, 가로의 전신주가

차갑게 화를 낸다.


‘화나면 화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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