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것없는 시설물에 조금의 관심을 묻히는 행위가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 게시판 상단에 고정하고 산다.
어른거리는 장면은 그때가 아니면 기회를 잡기 어렵고
얼마 후 자취를 감춘다.
0.00321의 미세한 자극일지라도 신경 쓰이면
시간을 미루지 말고 잡아두는 게 상책이다.
지금은 왕길동인데 예전에 ‘약수’라는 이웃이 살았던 모양이다.
마을회관도 있으니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닐 것이라 추측해본다.
게시판이 아니라 암호 벽이다.
정보를 제공하기는커녕 상상 곳간으로 우회시킨다.
이 지역은 소규모 공장지대로, 온전치 못한 1차로 구간인 데다가
칙칙한 슬레이트 지붕이 눈과 비, 바람을 막아주고 있으며
할메산에 안겨 있다.
마을회관 게시판의 배경에는
주택 건설로 뜨거운 감자밭인지 차가운 바닷속 풍경인지
파노라마 사진이 한 장 비칠 뿐이다.
아직도 겨울, 머리 위 해동되지 않은 차가운 공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속내는 인근 안동포에서 놀러 온 곰 한 마리의 휴식처인 셈이다.
미네랄이 풍부해 몸에 좋다는 약수藥水 한 사발 대접한 후
곰표 마을인 개항장을 소개해 줄까?
하얀 곰의 등장으로 생각을 더할 새도 없이
마을 상황을 딱 떨어지게 나눌 수 있었다.
오묘한 약수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