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학교는 역동적인 온실이 되어야한다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블로그에 대안교육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많이 받았던 질문 중에 하나는 아이들을 기숙형 대안학교에 보내면 온실 속 화초로 자라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걱정은 대안학교를 보내기 이전의 부모님들보다 대안학교를 보내고 있는 부모님들에게서 더 많이 궁금해하시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다닌 대안학교는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 학교로 주변에 유해시설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유해시설은 커녕 슈퍼마켓 하나도 없는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말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청청지역에서 일주일동안 땅을 파고 흙놀이하거나 언덕배기에 오르며 놀거나 점심시간에 산딸기를 따먹고 노는 등 도시의 아이들이 잘 경험하기 힘든 자연속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안학교를 보내놓고도 저렇게 순수하게만 커서 나중에 사회나가서 혹시 적응이라도 잘 할 수 있는건가 처음엔 걱정이 들게 마련입니다. 제가 대안학교에 두 딸을 보내기로 결심했을 때에도 가뜩이나 순한 아이들을 산골 학교에 보낸다고 하니 제일 먼저 가족들이 아이들을 온실속 화초로 키우려고 하느냐는 걱정어린 말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결정과 선택을 다른 누군가에게 꼭 지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 ‘내가 잘하는 게 맞는건가?’라는 생각이 한편 들기도 했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대안학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대안학교로 아이들을 보내는 일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수년 전 제가 ‘온실’ 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제 안에는 긍정적인 이미지 보다는 유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들이 모인 곳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제 머릿속에 ‘온실’에 대한 정의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라는 책에서 ‘우치다 타츠루’는 학교가 역동적 온실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우치다 타츠루가 학교를 온실에 비유한 것은 아무런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환경으로서의 학교를 말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세계와의 소통 회로가 열려 있는 장소안에서 아이들의 점차적으로 외부와의 통로를 열어가게 하는 장소로서의 학교를 의미합니다. 지금 여기 있는 것과 외부의 다른 무언가와 연결되는 것, 그런 촉수를 확장시키도록 하는 것이 학교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학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이들이 더불어 사는 기술을 익히기도 전에 어서 빨리 원자화, 모래화, 개별화 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파도를 막는 방파제가 되는 것입니다” -187
실제로 온실속 화초를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식물들의 성장의 목적은 온실을 넘어선 바깥 세상으로의 이륙입니다. 결국 자신을 넘어서는 배움이 이루어지는 곳이 학교입니다. 물론 아이들마다 성향과 기질이 다르고 성장의 시기도 차이가 나듯이 가장 이상적인 교육환경에 대한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력이 되는 부모와 교사들이 한결같이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환경이 이상적인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하는 다양함 속에서 아이들 스스로 방향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한 환경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대안학교를 다니는 동안 공동체 안에서 자녀 교육에 대해 비슷한 철학을 가진 부모님들이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각 가정의 분위기와 환경이 다르고 대안교육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들도 다양했습니다. 다만 그 부모들에게 한 가지 교육에 대한 공통된 생각 있다면 그것은 직업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교육이 아닌 아이들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게 하는 배움터로서의 학교의 모습을 기대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통념적 가치관을 넘어선 자녀교육에 대한 생각을 확고히 하기 위해 공동체 안에서 부모들도 함께 소통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에게는 대안학교라는 역동적 교육 공동체로서의 울타리가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졸업 이후의 주도적인 삶을 준비시키기에 더없이 훌륭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역동성은 다양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의미입니다. 역동적 온실로서의 대안학교 안에서도 문제와 갈등의 상황은 늘 존재합니다. 다양한 아이들이 모이고 또한 다양한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대안학교에 대한 순수한 환상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곳 대안학교의 아이들은 공립학교에서 흔히 있는 문제들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대안학교야 말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국의 아이들이 한데 섞여 있고, 심지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양성을 거세한 평온한 환경이라기 보다는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면서 서로의 다름과 소통의 방법을 배워가게 하는 안전한 교육환경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세상의 논리만으로 삶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성숙한 가치관을 배워나갔습니다. 돌아보면 아이들보다 오히려 부모인 제 자신이 성장해온 시간들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문제 상황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성숙함이 더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모든 정답이 한 곳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더 성장해서 넓은 대지로 나가야 하고 부모로서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시기마다 다르게 아이들을 지지하고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의 왕도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지난 10년의 시간이 저와 아이들의 인생에 너무도 중요하고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어느 시기보다 치열하게 자녀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아이들을 이해하며 돕기위해 노력하고 배우고 성장해 온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공교육의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찾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동안 대안교육의 밭에서 성장한 아이들에게는 자생력이 생겨났고 주도적인 삶의 자세를 갖추었습니다. 10년전 아이들을 기숙형 대안학교에 보냈던 것은 분명 용기있는 결단이었고 지금 돌아보면 결국 그 선택은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지금도 여전히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교육에 대한 정답을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반드시 교육비를 많이 들여야 좋은 교육이라고 할 수 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교육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그 교육의 철학을 가지고 중심을 지켜나갈 수만 있다면 자녀교육에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