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대안학교의 맞춤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2022년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과정 개정의 주요 화두는 고교학점제입니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는 2025년 부터는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대학에서처럼 필수과목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배우고 싶은 교과목을 선택해서 시간표를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한 교실에서만 하루 종일 공부하는 대신에 각 교과목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로 옮겨다니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고등학교에서 개설되는 과목을 듣기 위해 주말마다 공동교육과정이 이루어지는 인근의 고등학교로 등교하기도 합니다.
3년간 졸업의 기준이 되는 학점을 채우고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흥미와 관심사를 고려해 선택적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만들겠다는 교육부의 취지가 고교학점제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교육과정이 새로 개편될 때마다 이제까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반가움 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번 맞춤형 교육과정의 일환인 고교학점제는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긍정적인 기대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물론 혁신적인 제도가 정착화되기까지는 그만큼의 시행착오와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전교생들의 시간표가 도장을 찍어내듯 완전히 동일했던 예전의 학교 교육 시스템을 생각하면 이번 교육과정의 개편은 여러 면에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다닌 대안학교에서는 이미 맞춤형 교육과정의 고교학점제를 7년전부터 체계적으로 시행해오고 있었습니다.
고교학점제가 잘 운영이 된다면 아이들 개개인의 잠재력을 발견해내고 자신의 적성과 전공의 길을 찾아가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그동안 아이들을 통해 직접 경험해 왔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개정된 교육과정과 앞으로 전국의 공립학교에서 시행될 고교학점제가 어떤 모습으로 정착화 될지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학교는 전교생이 대략 300명 정도 되는 대안학교입니다. 학교는 6년째 맞춤형 교육과정을 진행하면서 현재는 고등학교에만 대략 300여 개의 수업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졸업을 위해 아이들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목을 제외하고는 학생들 각자가 필요한 수업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언뜻 듣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업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교사가 개설한 과목들도 있고 학생들이 직접 개설한 과목들도 있습니다.
이런 설명을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이 있는데 그 많은 수업을 지원할 교사와 교실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저 역시도 처음에는 학교의 이런 교육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구심을 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학교의 맞춤형 교육과정이 정착화 되고 지금까지 잘 운영이 되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쿼터제와 어드바이저제도 그리고 멘토링제도를 비롯한 맞춤형 교육과정을 완성시키는 다양한 제도들이 함께 적용되고 운영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제도를 만들고 정착시키기 위해 빼놓을 없는 학교의 교육철학과 교사들의 집단 지성이 가장 튼튼한 토대가 되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쿼터제는 일반 공립학교의 학기제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일년을 1학기와 2학기로 나누어 놓은 제도가 학기제라면 쿼터제는 일년을 4등분한 제도입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매 쿼터가 시작될 때와 마무리 될때가 가장 바쁘고 할 일이 많았습니다. 쿼터 시작전에는 먼저 한 쿼터동안 자신이 학습할 시간표를 디자인해야 하는데 이때 학교의 온라인 학습관리시스템인 BLMS 시스템에 접속해서 개설된 과목을 확인하고 듣고 싶은 과목의 수강신청을 합니다.
만약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이 개설되지 않은 경우에는 멘토교사의 승인을 받고 학생 스스로 수업을 개설할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큰 아이와 둘째 아이가 직접 개설한 과목들도 그동안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큰 딸아이가 음악을 전공하기로 했을때는 음악과 관련된 수업을 직접 개설하거나 멘토 선생님과의 일대일 관리를 받으며 혼자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도 했고 둘째 딸의 경우는 다야한 관심사를 따라 심리나 미술 영어 등의 과목을 개설해서 친구들이나 멘토 교사와 함께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멘토링 수업이나 학생 개설 수업에서는 평가를 통해 성적을 매기기도 하지만 보통은 Pass 와 Fail로 쿼터말 평가를 받습니다. 아이들의 관심사를 따라 각자가 18학점부터 24학점까지 학점을 신청한 이후에는 약 두 달간의 한 쿼터 기간동안 다양한 학습이 진행됩니다.
쿼터 마지막 주인 9주차에는 쿼터말 발표회가 있습니다. 쿼터 발표 역시 학습과 평가의 연장선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디자인 하고 진행한 학습에 대해 자기 평가서를 쓰고 담당 선생님과 부모님들 앞에서 한 쿼터동안의 주도적인 학습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합니다. 자기평가서 작성과 발표 준비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고 쿼터말에 치러지는 시험도 봐야해서 아이들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일년에 네 차례 그런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학습 동기와 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진로나 관심사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탐색을 하게 됩니다. 또한 비교적 단기간인 2개월 마다 이런 계획과 평가를 새롭게 함으로써 자신의 학습 속도와 스타일까지도 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처음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이런 쿼터제 학습이나 맞춤형 교과 학습이 아이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10학년의 교과목은 주로 필수교과의 비중이 크게 잡혀 있습니다. 이런 교육 시스템에서는 학급의 구성이 그다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학기초에 반을 나누는 대신에 어드바이저 팀을 구성합니다. 각 어드바이저 팀에는 담당 어드바이저 교사가 한명과 6-8명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드바이저 교사는 1년 동안 아이들의 학교 생활 전반과 진로진학 그리고 생활 관리까지 담당하는 담임교사의 역할을 하는 분입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의 학점제나 쿼터제를 잘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학교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중심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바로 어드바이저 선생님 입니다.
멘토 교사의 범위는 어드바이저 교사보다 더 광범위합니다. 또래나 선배 멘토가 있는가 하면 교과목 교사 멘토도 있고 외부 멘토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멘토링을 신청할때는 좀더 아이들의 입장에서 심사숙고해서 지원합니다. 자신이 한 쿼터동안 어떤 멘토에게서 학습과 진로와 생활면에 도움을 받아야 할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지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멘토링의 기간 역시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한 쿼터를 진행한 이후 연속해서 신청하고 배움을 이어갈 수도 있지만 한쿼터 단위로 단기간 멘토링을 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선후배 양육프로그램이나 유턴쉽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등을 통해 아이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학습 환경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개인의 속도와 흥미를 고려한 맞춤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고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온 현재 교육부에서 교육과정 개정안을 발표한 내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이미 시행중인 내용이라서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 보게 되었는데 이미 대안학교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내용을 공교육에 시스템과 시켜 도입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을 획일화하고 틀에 맞춘 교육을 고집했던 기존의 교육은 이제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