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잡지의 추억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우리 집에는 매일 일일공부라는 학습지가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씩 어린이 성경 만화 잡지가 집으로 왔습니다. 소위 잡지 구독이라는 것을 엄마 덕분에 아주 어릴때부터 시작한 샘입니다. 성경 만화 잡지의 제목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지혜로운 솔로몬 왕이 두 여인 앞에서 아이를 반으로 가르려고 했던 충격적인 장면과 꼬마 다윗이 거인 골리앗에게 물맷돌을 던져 쓰려트렸던 통쾌한 장면들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그 만화 잡지가 얼마나 재미있고 기다려졌던지 만화책이 집으로 오는 날이 가까워지면 며칠동안 대문 앞에 앉아서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렸던 기억도 납니다. 일일공부는 제가 한글을 읽기 전부터 했던 거라 주로 엄마가 글을 읽어주시고 저는 점선을 따라 그리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당시에는 수학 대신 산수라고 했는데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나는 기억은 9와 6중에 더 큰 수를 고르는 문제가 너무 어려워 엄청난 고민에 빠졌던 기억입니다. 큰 수의 개념이 전혀 없던 나이에도 일일공부나 만화잡지를 읽는 것을 그렇게도 즐거워했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챙겨서 했습니다.
그렇게 정기 간행물이라는 것을 이른 나이부터 좋아하던 제가 어느날은 시골 할아버지댁에 놀러를 가게 되었습니다. 막내 삼촌이 <소년 중앙> 이라는 어린이 잡지 두 권을 선물로 사오셨고 큰 집 오빠랑 저에게 한 권씩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 하늘을 나는듯 황홀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반짝거리고 두툼한 표지며 다양한 단편 만화들이며 어느것 하나 제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 페이지가 없었습니다.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지루할 틈없이 페이지가 아까울 정도로 소중히 잡지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사촌 오빠가 제 잡지를 달라고 하는 겁니다. 삼촌이 자기에게 두 권다 준거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참 욕심쟁이였던 것 같습니다. 저보다 세 살이나 많은 사촌 오빠에게 어린 마음에 제대로 반박도 못하고 얼마나 속앓를 했는지 모릅니다.
할아버지 댁에 있던 그 며칠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고 빨리 잡지를 가지고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습니다. 잠을 잘 때는 벽장 속 안보이는 곳에 잡지책을 숨겨두고 잘 정도로 잡지를 빼앗길까봐 조마조마했습니다. 드디어 집에 가는 날이 되었고 잡지를 꺼내려고 벽장을 열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잡지가 없었습니다. 사촌 오빠가 먼저 출발하면서 제 잡지를 가져가 버린 것입니다. 그 날 받은 충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을 잃은 것처럼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저절로 났고 괜스레 잡지를 지켜주지 않은 엄마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때 그 사건이 계기가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잡지’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한한 애정이 솟아오릅니다.
이 세상에 잡지라는 장르의 책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일단 기분이 좋습니다. 가벼운 내용에서부터 아주 전문적인 지식 세계에 이르기까지 잡지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넓음이 있습니다. 게다가 한 번 나오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주제를 가지고 매번 다른 이야기를 연속해서 출간한다는 것도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구독신청을 하면 매월 집으로 도착하는 잡지를 기다리는 기대감도 정말 설렙니다. 잡지는 한 사람이 절대 만들 수 없는 장르의 책입니다. 우선 에디터가 필요하고 글을 수집하는 기자들도 있어야 하고 작가도 필요하고 포토그래퍼와 디자이너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와 잡지 발행이라는 목적을 향해 제한된 시간안에 모든 것을 마감해야 하는 잡지는 출판계의 종합예술과도 같습니다. 어릴 때 잡지 때문에 받은 깊은 상처가 잡지에 대한 무한 사랑으로 바뀌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일년 단위의 구독을 자주 했습니다.
대학생 때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National Geography> 같은 잡지들을 구독했고, 아이를 키울 때는 육아잡지를 섭렵했습니다. 한참 요리에 빠져 요리를 배우던 때에는 요리 잡지가 집에 넘쳐날 정도였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읽고 싶어하는 잡지를 구독해서 읽게 했습니다. 지금은 재즈를 전공하는 큰 아이가 읽는 <재즈 피플>이나 성경묵상을 위한 QT 잡지를 제외하고는 다른 잡지를 구독하지는 않지만 언제라도 끌리는 분야의 잡지가 있다면 마음은 항상 구독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 학교에도 <BMR Magazine>이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한 쿼터 동안 아이들이 학교에서 생활한 다양한 활동들과 프로젝트 동아리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추천도서 코너도 있고, 교사들과 부모들의 에세이도 들어있습니다. 전문가 칼럼의 연재 코너가 있는가하면 교육 공동체가 함께 지향하는 철학을 공유하는 코너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모 인터뷰라는 코너가 있는데 글이 구성되기까지의 과정도 내용도 정말 감동적입니다. 이 코너의 이야기는 학생기자단 들이 선생님의 인솔을 받아 인터뷰할 부모님을 직접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번호에서는 기자단 아이들이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학부모 한분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딸인 그 학부모의 효심은 뭐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할머니 앞에서 준비해 가져간 악기 연주도 해드리고 따뜻하게 할머니를 안아드렸습니다.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이제는 다시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할머니는 아이들의 연주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처음에 학교잡지의 발행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고 학부모 편집위원이 되기로 자처한 것도 다 어릴적 잡지에 대한 강렬한 기억들 때문인것 같습니다. 잡지라는 정기간행물을 읽고 보는 것을 좋아했을 뿐 잡지사에서 일을 하거나 잡지 발행에 관련된 일을 전혀 해보지도 않았던 제가 오로지 ‘잡지’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학교 잡지 편집이라는 과감한 도전을 했습니다. 사실 주중에 아이들을 부모 이상으로 돌봐주시고 키워주시는 학교와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마땅한 방법이 없던 차에 학교 잡지의 학부모 편집위원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일이었습니다. 학부모들의 에세이나 칼럼을 모으고 인터뷰 요청을 하고 또 글이 모아지면 꼼꼼히 읽고 편집해서 디자인회사에 넘기는 이 모든 과정의 일들이 처음 해보는 일들이었지만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즐겁게 했습니다.
어느덧 창간호가 발행된지도 5년 이라는 시간이 흘러왔고 올해로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봉사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일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부모들과 교사들 그리고 아이들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과월호 잡지들을 가끔 꺼내 읽을 때마다 그리움과 추억과 기쁨의 감정이 뒤얽힌듯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전자책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종말이 도래했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던 것처럼 웹진이 대세가 되는 시대에도 종이잡지의 매력은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