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인 걸 인정하게 된 순간들

by 희지

1. 찬이는 2024년 2월 작년부터

시력을 서서히 잃어갔다

눈이 안 보이면서부터 배변 실수도 늘어나고

점점 늙어가는 찬이를 보며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과정은 매우 슬펐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비싼 검사비용을 들여서 검사를 했어도

시신경이 노화되어서 약도 없다는 걸 어찌하겠는가

눈이 안 보이는 찬이를 병원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데

어쩔 수 없이 슬프지만 체념하게 되었다


2. 몸에 작은 혹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살을 잡으면 탄력이 없어서 그대로 축 늘어진다

작은 혹들을 만지고 있자면 가슴이 아팠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이게 암이면 어쩌지?'

'암으로 변하면?'

'더 커지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럼 수술비는...?'

이런저런 걱정이 많이 되었고

무엇보다 돈 걱정도 많이 되었다

그래서 검사도 여러 번해보았다

늘 지방종이라고 나와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안심하곤 했다


3. 잠을 많이 자면서

솜이는 잠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다

찬이는 원체 잠이 많은 아이였지만

솜이는 활발하고 4~5시면 낮잠을 잤었다

하지만 이 아이도 점점 잠이 많아졌다

찬이는 엄마 오는 시간인 저녁 10시쯤부터 빼고는

하루 종일 잠만 잔다


3. 찬이 코는 아주 촉촉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코가 빠싹 말라있는 시간들이 늘어갔고

코 윗부분부터 각질이 생겨

코 살점이었던 부분이 딱딱하게 변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콧잔등 털도 빠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수북했던 모량과

촉촉했던 코, 초롱초롱했던 눈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아려온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제는 오히려 찬이가 날 바라보면

이상할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산책 시간에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느라

조용한 장소까지 안고 가서 산책하느라

시간이 더 많이 늘어났지만

나도 찬이도 눈이 안 보이는 삶에

지금은 완벽히 적응했다


찬이는 눈이 안 보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아주 용감한 편이다

여기저기 부딪혀도 자주 놀래지 않는다

덤덤히 다시 부딪힌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 또한 배우는 것이 많다


그저 이 아이들은 늙어갔고

나는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자주 이 아이들이 나보단 낫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아이들도 과거보단

지금의 모습만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고 있다

나는 사람이기에 과거를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사진들 따위는 뒤로 한 채

현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려고 한다

앞으로도 순간순간의 모습이 변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03화유기견 솜이가 우리 가족이 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