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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Sep 13. 2024

집 앞까지 다가온 도시 정글

9월 13일 출근길

  “비가 조금 오는데? 우산을 쓴 사람도 있네. 오는 듯 안 오는 듯해.”

  아침밥을 먹는데 배우자가 말했다. 

  집을 나오는데,

  “우산은 안 가지고 가도 되겠어.”

  판결이 떨어졌다. 집을 나와 사거리로 향했다. 우산을 안 쓴 중년 여자가 지나가고, 부둥부둥 살집이 있는 몸에 체격이 큰 남자가 커다란 우산을 쓰고 앞서가고 있었다. 비는 흩뿌리며 눈가에 몇 번 닿았다.

  ‘조금 더 오면 안 되겠는데…’

  하늘에는 구름이 어둡지 않은 회색으로 깔려 있었다.


  사거리를 바라보니 버스가 지나쳐 가고 있었다. ####번 녹색 버스, □□□□번 녹색 버스가 연달아 지나갔다. 둘 다 내가 타는 버스가 아니다. 또 한 대가 지나갔다. 눈길이 쏠렸다. ◇◇◇번 파란 버스. 이 버스도 내가 타는 버스가 아니다. 나는 ○○○번 버스를 탄다. 안도의 느낌이 가슴 아래에서 터져 가볍게 위로 올라왔다.    

  ‘시작이 좋다.’


  사거리에서 허리를 숙인 채 일을 하는 청소부가 보였다. 사거리의 보도블록 틈새, 보도블록과 철제 기둥 사이, 볼라드 틈새로 풀들이 자라 있었다. 어떤 풀들은 무릎 높이까지 자라 황폐한 도시 느낌까지 만들어지던 참이었다. 도시의 식물들은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만큼만 자라야 한다. '정해진 장소'를 넘은 풀들이 오늘 제거되고 있었다. 줄기를 모두 잃은 풀들이 밑동만 뭉쳐진 모양으로 여기저기 보였다. 조금 멀리 다른 청소부가 잘린 풀들을 그러모으고 있었다. 한쪽에 리어카를 이어 달은 삼륜 오토바이가 있고, 그 옆에는 리어카 없이 삼륜 오토바이만 한 대 서 있었다.

  ‘오늘, 둘이 날 잡은 게로군!’

  사거리 한쪽에는 공용 자전거 수십 대가 크게 무리 지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는 자전거를 공용 자전거 무리에 붙여 세웠다. 중년 여성이었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번 버스는 아직 사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앞선 버스들도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아직 승객들을 태우는 중이었다. 사거리를 중간쯤 지났을 때 ◇◇◇번 버스가 사거리를 벗어났다. 승용차 두 대가 어정쩡하게 사거리 횡단보도에 걸쳐 있었다. 나는 차들 사이를 굴절된 발걸음으로 지나갔다. 신호등 아래 숫자 표시는 한 자리로 바뀌어 줄어들고 있었다. 승용차는 빨간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버스 세 대가 지나갔음에도 정류장은 한산하지 않았다. 빗발은 조금 늘어 대부분 우산을 썼다. 정류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기세는 우산을 써서 더욱 무게감 있게 느껴졌다. 길 건너에도 버스가 서서 승객들을 태우고 있었다. 그 앞으로 직진과 좌회전을 하려는 차량 서너 대가 줄지어 있고 사람들이 그 사이사이를 잰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버스 뒤로는 청소 오토바이 한 대가 리어카에 쓰레기를 한가득 싣고 있었다. 그 뒤로 조금 떨어져 초등학생 대여섯 명이 모여들며 줄을 만들고 있었다. 학생들 주위로 엄마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쳐다보며 손을 흔들며 어수선한 모습을 만들었다. 때마침 노란 버스가 왔다. 인근 사립 초등학교 버스였다. 교사가 내려와 아이들과 인사하고 엄마들과 눈인사를 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버스에 올랐다.


  “부릉 부르릉! 빠앙 빵 빠앙!”

  신호등이 바뀌자 길 건너 차들은 소음을 일으키며 서둘러 사거리를 지나갔다. 승용차들과 오토바이, 버스의 차량 소음들이 이어지며 일어나더니 시끄럽게 뒤섞였다. 신호등이 바뀌자 뒤를 이은 차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급하게 멈춰 서고 있었다.

  “트르르릉, 끼긱 끽 끼익!”


  ○○○번 버스가 왔다. 앞 문과 하차문으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차문으로 다가섰다. 내 옆에서 먼저 움직인 젊은 여자가 버스를 타려고 하다가 버스 안을 보고는 멈칫했다. 나도 멈추었다가 젊은 여자가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 서둘러 올라탔다. 하차문 좌우로 빈틈없이 사람들이 서 있어 달리 이동할 수가 없었다. 그냥 하차문 중앙에 서서 손잡이를 잡았다. 뒤이어 탄 젊은 여자는 내가 서있는 쪽의 빈 손잡이를 잡으려고 하다가 팔이 짧아 그만두었다. 무언가를 잡으려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버스가 굉음을 내며 출발했다.


  오늘 아침 사거리는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머리가 혼미할 정도로 번잡했고 시끄러웠다. 도시의 소란스러움으로 집 앞까지 침범을 당한 모습에 무언가 없어져버린 허전함을 느꼈다.





도시의 식물들은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만큼만 자라야 한다




※  이번 글로 ‘.여름’편을 마칩니다. 여름은 일평균 기온이 20도씨 이상인 기간이라고 합니다. 9월은 원래 가을의 시작인데, 아직 덥기만 하니 두 주는 여름에 포함했습니다. 덥더라도 추석은 가을이지요. 추석을 맞이하며 ‘가을’편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간 올린 글을 부끄러움으로 살펴보니 내 얘기일 뿐 아니라 ‘출근하는 다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출근길 인생』, 부제로 ‘어느 소시민의 30년 번째 출근길’입니다.

간간히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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