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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Sep 27. 2024

출근길 환송 찬가

9월 27일 출근길

  "우산 안 쓰고 가도 되겠어."

  오늘도 판결이 내려졌다. 우산 없이 집을 나섰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약간 신경이 쓰였다. 머리가 착 가라앉을까 주저되는 정도였다. 사거리로 향했다. 어제처럼 ○○○번 버스가 지나갔다.

  '어제같이 반복인가…’

  버스정거장에 도착하니 다음 ○○○번 버스는 6분 뒤였다. 어제처럼 9분도 아니고 우산도 없고, 기다리기로 했다.


  어디서 비를 피해야 했다. 정거장 뒤쪽은 마을 공원이었는데, 화장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출입구의 처마 밑을 보며 걷다가 좀 더 안쪽에 퍼걸러가 보였다. 버스 정류장과 거리가 조금 되었지만 사거리 쪽도 보이고 해서 기다리는데 별 문제없어 보였다. 퍼걸러 옆은 모래밭이었는데 나이 많은 여성 한 명이 맨발로 걷고 있었다. 퍼걸러 안으로 들어가 버스 정거장과 사거리를 보며 섰다. 

  앞쪽에 폭이 3 미터 내외의 출입로가 왼편에서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지나갔고 출입로를 따라 대왕참나무가 줄지어 서있었다. 대왕참나무부터 보도까지 관목들과 풀들이 무성했다. 그 중간에 산책로가 있고 산책로 좌우 경계로 메타세쿼이아가 심겨 있었다. 퍼걸러 뒤쪽에도 산책로가 있는데 그 주변으로도 풀들이 허리 높이로 자라 있었다.

  주변 풍경을 보다 보니 새소리가 들려왔다.

  '퓌 퓌 퓌 퓌'

  '찌이찌이찌 찌이찌이찌'

  '휘휘휘익 휘휘휘익'

  '쯔쯔쯕 쯔쯔쯕 쯔쯔쯕'

  '찌르찌르찌르 찌르찌르찌르…’

  대왕참나무 위쪽 가지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울더니 다른 쪽에서도 울려오고 뒤쪽 덤불에서도 앞쪽이며 사방에서 들려왔다. 새들은 여기저기로 움직이며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중첩되어 요란하게 울고 있었다. 버스 정거장 위 전신주에서는 까마귀가 까아아아아악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다. 누구에게 들려주려는 지 유별나고 소란스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새소리를 듣고 있으니 6분이 어느새 지나가고 버스가 도착했다.


  신당역에서 2호선 쪽으로 움직였다. 계단을 오르고 또 계단을 오르고 수평의 무빙워크를 왼편으로 두고 걸어 나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무빙워크의 중간쯤 왔을 때 젊은 여자가 내 앞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탁탁탁탁 경쾌한 걸음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에 이어서 다른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주변 소리들이 내 귀에 몰려왔다.

  '크응 크응 크응 크긍'

  '처걱 처걱 처걱 처억'

  무빙워크가 내는 금속성 쉰 소리에,

  '슥 슥 스윽 스윽, 슥 슥 스윽 스윽'

  '차악 착 착 착, 차악 착 착 착'

  사람들의 옷 스치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에,

  '딱 딱 딱 딱, 따악 딱 딱 딱'

  장우산을 바닥에 두드리는 소리까지.

  가지가지 소리들이 귓가에 쏟아지며 나를 혼돈 상태로 만들었다. 잠시 후 소리들은 서로 섞이고 동화되며 리듬감 있게 바뀌었다.


  도시의 소리들이 부정의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다. 오늘 내 귀에 들려온 소리들은 나를 밀어주는 느낌이었다. 내 발걸음을 띄우고 출근길을 가볍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 정도면 유토피아 아닌가! ... 무사히 출근할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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