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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Sep 24. 2024

'무표정 플러스'를 가진 사람들

9월 24일 출근길

  계절에 맞지 않게 아침부터 비가 또 내리고 있었다. 추석 전후인 지금 시기는 햇살이 제법 따갑고 맑은 날들이 이어져야 하지 않나? 하긴 가을 태풍으로 몸살을 앓았던 지난 해에 비해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날들이다.


  요즘 비는 흩날리는 비다. 오늘 비도 흩날리고 있었다. 떨어지는 비는 신발 앞을 적시고 날아드는 빗발은 웃옷에 묻으며 체온을 빼앗아 음산한 기운을 만들었다. 버스를 탔다. 사람들이 우산을 접고 털고 부산을 떨며 승차했다. 버스 안 서너 사람이 승차하는 사람들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눈길을 돌렸다. 마치 낯선 타국에서 맞보는 이질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이 버스의 뒷자리는 2인석이 3줄이 있고 나는 2인석 맨 뒷자리에 앉았다. 앞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옆 얼굴도 대부분 굳어 보였다. 저쪽에 있던 나, 이쪽에 있는 나.

  ‘내 얼굴도 이럴까…’

  의문은 일어나자마자 사그라지고 무덤덤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여성 세 명이 탔다. 그들은 뒤쪽 문으로 들어왔다. 첫 번째 여자는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옅은 노랑색 상의와 검은색 직물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짧고 곧은 커트머리였다. 얼굴은 말랐는데 윤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물광이 저런 건가…?’

  눈빛은 선명해서 안광이 드러났고 표정은 없었지만 어둡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뒤쪽 4인석 의자로 가서 앉았다. 4인석 의자는 앉기에 불편한 의자여서 망설였던 듯했다. 

  그 뒤의 여자는 40대 후반의 여자였다. 위아래로 검은색 옷을 입었고 중년 여자가 흔히 갖는 두툼한 몸매를 하고 있었다. 내 1미터 앞쪽에 서서 자리를 잡았다. 버스가 설 때, 출발할 때, 좌회전을 할 때마다 바닥은 미끄러웠고 중년 여자는 급작스럽게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나도 불안해지네... 자리에서 일어서야 하나…?’

  불안정한 자세는 내게도 불안함을 일으켰다. 짧은 파마머리에 살짝 각진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승차의 격한 움직임 때문이었을까? 눈가는 불그레 상기되었지만 얼굴 전체로는 맑은 표정이었다. 손잡이를 하나하나 잡으며 여전히 불안하게 움직이더니 앞의 여자와 마찬가지로 뒤쪽 의자에 앉았다. '끄응'하는 신음소리와 '처벅'하는 의자 소리가 연달아 뒤쪽에서 들려왔다. 

  세 번째 여자는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회색 상의에 물 빠진 진청색 데님 바지를 입고 있었다. 마른 체형을 가진 여자는 머리도 착 달라붙은 커트머리를 하고 있었다. 눈썹의 끝은 선명하고 날카로웠다. 눈썹 아래로 보여지는 눈매도 뚜렷했다. 맑은 톤의 화장으로 얼굴은 투명한 느낌을 주었다. 내게 보여지는 옆 얼굴은 무표정하면서도 굳지 않은 표정이었다.


  ‘무표정하면서도 뭔가 밝음은 뭐지? 화장 때문인가…?’

  화장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고 출근길에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다만, 나는 남 모르게 슬쩍 입꼬리를 당기고 내 앞에 보이는 버스 손잡이에 초점을 맞추고 눈에 힘을 주었다. 지금은 그냥, 보여지는 얼굴을 '무표정 마이너스'로 놔두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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