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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Oct 29. 2024

도시 걸음, 보통 이상의 걸음

10월 29일 출근길

  버스 정거장 맞은편에 모녀가 지나가고 있다. 지난번 폐지를 주워 리어카에 올려 주었던 모녀다. 엄마는 오버핏이라고 하기에는 후줄근한 검은색 상의를 입었다. 바지도 헐렁했고 굵고 둥글둥글한 파마머리는 어깨 위에 얹어져 굴러 다녔다. 한쪽 팔에는 검은색 등가방과 아이의 상의를 걸치고 있다. 아이는 오늘도 킥보드를 밀며 움직였다. 보도는 좁아 아이의 움직임은 느리고 엄마는 아이를 뒤따라 느적느적 걸었다. 스쿨버스가 도착하고 엄마는 겉옷과 가방을 아이에게 건넸다. 스쿨버스에 아이가 타고 버스는 출발하고 엄마는 손을 격하게 흔들었다. 그러고 난 후 엄마는 되돌아 걸었다. 킥보드를 한 손으로 끌며 왔을 때와 별 차이 없는 걸음새로 툴툴거리며 걸어갔다.


  정거장이 있는 도로변에 붙어서는 마을 공원이 있고 그 뒤로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아침이면 아파트 단지에서 이곳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제법 흘러나온다. 내가 늘 이용하는 버스 정거장과 다음 정거장과의 거리는 155 미터로 짧은 편인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버스 정거장 사이 그러니까 이쪽 정거장에서 85 미터 정도에 아파트와 연결된 이면도로가 있고 사람들은 도로까지 나와서는 일부는 이쪽으로 일부는 다음 정거장으로 간다는 점이다. 이쪽으로는 85 미터, 다음 정거장은 70 미터를 걸어야 한다. 다음 정거장이 가까우니까 그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15 미터를 더 걷더라도 이쪽으로 오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가 있는 걸 까.

  '그야 앉아가고 싶은 거겠지?'

  이쪽으로 걸어와서 사람에게 걸리적거리지 않는 안쪽 자리를 잡거나 운 좋으면 앉아서 갈 수 있는 그런 편리를 찾는 발걸음일 것이다.


  돌곶이역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여기에서 지하철 출입구까지 140 미터를 걸어가야 한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간다. 앞서 내린 사람들은 벌써 10 미터 넘게 앞서가고 있다. 성큼성큼 걷는 이들은 아무래도 젊은 축이 많다. 젊은 여자들도 당찬 걸음걸이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일단의 무리는 기다랗게 형태를 바꾼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는 사람, 보통의 걸음으로 뒤따르는 사람, 나이 들었거나 휴대전화를 보거나 원래 걸음걸이가 느리거나 한 사람들은 뒤처져 걸었다. 다들 저마다의 자기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지하철 출입구에 다다를 때까지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있었다. 사실 우리가 내린 이곳 정거장은 돌곶이역에 제일 가까운 정거장은 아니다. 사거리를 직진으로 지나면 이름이 '돌곶이역'인 버스정거장이 있다. 지하철입구까지의 거리도 35 미터 밖에 안 된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우리는 거의 모두가 한 정거장 앞에서 내리는 셈이다. 105 미터를 더 걷더라도 미리 내리는 이유는 뻔하다.

  '시간 때문이다…’

  아마도 대합실로 내려가면 승강장으로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음 열차를 타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외쳐봐도 우리에게는 소용이 없다. 조금 편한 버스 승차를 위해, 2분 내지 3분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제법 긴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이번’ 열차를 그냥 보내는 것은 따르기 어려운 요청이다.


  열차를 탔다. 지하철역에 설 때마다 승강장에서 걷는 사람들이 창 밖으로 보였다. 성큼성큼 뚜벅뚜벅 또각또각 저벅저벅 느적느적 느릿느릿. 승객들은 제 각각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누구는 끌리듯이 누구는 쫓듯이. 이들은 보통 이상의 걸음을 걷고 있다. 좀 더 빠르거나 하면 숨이 차거나 땀이 나거나 하는 그 언저리 바로 아래 정도로 걷고 있다. 이 길은 출'근'길이기 때문이다.


  출입구 근처에 서있는 늙었다고 해야 할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짙은 감색의 바람막이 점퍼 때문도 사냥모자 때문도 아니었다. 남자는 누런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흰색의 마스크를 여러 차례 오랜 시간 사용해서 땟국물이 절은 누런 마스크였다. 사냥모자를 쓰고 등가방을 메고 운동화를 신은 모습. 구릿빛 피부에 짙은 주름이 깔렸다. 뿔테 안경 속 또렷한 눈빛은 마스크의 사연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켰다. 덴탈마스크가 아니어서 안면에 착 달라붙은 마스크.

  '돈 때문일 것 같지 않은데…’  

  쓰잘데 없는 의문에 잠겨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니 신당역에 도착했다. 남자가 내렸다. 이어서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남자의 걸음새가 성큼성큼 탄탄했던 것이다. 늙은 남자 또한 보통 이상의 걸음에 동참하고 있었다.






빗물에 비친 불빛은 마치 화염이 하늘로 솟구치어 오르듯이 몸통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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