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유재 Oct 25. 2024

열차 속에서 공동체를 느끼다

10월 25일 출근길

  사거리를 앞에 두고 섰다.

  맞은편 보도에 한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노인은 여자였다. 노인의 머리는 푸석푸석하고 동글동글한 빛바랜 파마머리였다. 위에는 등산용 허름한 점퍼를 입고 바지는 밝은 노란 바탕의 꽃무늬 일바지를 입었다. 리어카에는 종이박스가 실려 있었다. 노인이 보도에서 움직일 때 리어카가 쿨렁하더니 박스가 터럭 떨어졌다. 때마침 뒤따르던 젊은 여자가 박스를 주웠다. 여자는 아이와 함께였는데 아이는 □□초등학교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길이었다. 여자는 리어카 위에 박스를 올리고 고정끈 아래로 밀어 넣더니 리어카를 밀어주었다.

  "그러면 엄마 싫어…"

  젊은 여자는 아이에게 뭔가 주문을 하며 스쿨버스 정거장 쪽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아이는 킥보드를 타며 앞으로 내달렸다.

  노인은 보도 끝 모퉁이에서 고개를 힐끗 꺾어 모퉁이 너머를 봤다. 그 앞 쪽은 쓰레기 더미가 있는 장소인데 주울 만한 종이류가 변변치 않은 지 그냥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쪽으로 리어카를 끌었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노인은 대각선으로 리어카를 끌고 나 또한 대각선으로 건너며 노인과 가까워지게 됐다. 리어카가 지나가도록 걸음을 멈추어야 하나 서둘러 지나가야 하나, 아니면 밀어드려야 하나 머뭇거리며 생각만 하다가 리어카의 느린 속도에 그냥 지나쳐 버렸다.

  '우리 동네에도 폐지 줍는 분이 있네… 그것도 리어카로…'

  버스를 타기 전, 집 가까이에서 벌어진 이 모습은 내게 주관적인 감흥을 일으켰다.


  신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탔다. 열차가 지체되었는지 신당역부터 승객이 많았다. 두세 정거장을 지나며 출입구는 승객들로 만원이었다. 승차한계 수준으로 빽빽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서로 몸이 닿았고 승객들의 열기에 공기는 들떠 있었다. 약간 공간을 확보한 승객들은 휴대전화에 눈을 고정했고 밀착된 승객들은 눈을 감고 열차의 흔들림에 따라 흔들거릴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인내가 승객들의 얼굴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내 옆 사람도 자리가 불편한지 창문 쪽을 보았다가 조금 위치를 이동했다가 다시 되돌아서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를 툭툭 건드리고 밀고 그러며 내 인내심이 얼굴에 나타나게 만들고 있었다.


  "… 뒤로 가란 말이야!"

  출입구 쪽에서 갑자기 꺼칠하고 사나운 소리가 들뜬 공기를 갈랐다.

  "아줌마가, 왜요! 뒤로 가요!"

  젊지만 둔탁하고 강한 소리가 이어서 나왔다.

  "니가 가! 가라구!!!"

  "왜 반말이야! 내가 왜!"

  젊은 목소리는 더 사나워졌다.

  "니가 가! 아줌마가 가!!!"

  "니가 먼저 탔잖아! 니가 움직여야지!"

  "내가 왜! 이 XX!”

  "%#&₩&¿…"

  주변에서 투정하며 참견하는 소리도 들렸다. 정확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조용히 좀 가자는 소리일 것이다. 참견은 별 소용없었다. 몇 번 더 둔탁한 소리를 주고받더니 제풀에 잠잠해졌다.

  열차 안 공기는 더 탁해졌다. 두 사람의 말싸움은 열차 속 승객 모두에게 지금 상황을 알게 만들었다. 불편하고 거북하고 짜증 나는 상황.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 처지. 지하철. 지하. 모두 말이 없다. 열차 안은 늘 말이 없지만 지금처럼 말이 없는 것은 좀 다르다. 자기 처지를, 자기 인식을 알게 됐을 때의 숙연함이 가져오는 침묵. 그런 조용함이었다. 두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지금 열차 속 사람들에게 어떤, 아이러니하지만 공동의 느낌, 잠깐이지만 공동체의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가운데 같은 열차를 타고 같은 객차를 타고 앞뒤 좌우로 열기를 느끼며 18개 역을 31분 동안 같이 간다. 위험하다면 위험하고 불편하다면 불편한 길, 같은 상황을 같이 겪으며 같이 느끼며 같이 간다. 뉴스에서는 며칠 동안 10.29 1주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