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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23. 2020

목마른 자 우물을 판다(渴而穿井)

#8 파타고니아의 숨겨진 오지 코크랑 찾아가는 길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덩실덩실.. 이때부터 운전사의 태도가 돌변했다. 내가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 그 순간 덜컹거리던 먼짓길이 잠시 조용해지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속도를 줄인 것이다. 나는 그의 배려를 단박에 알아차리고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그는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며 좋아했다. 그때부터 셔터음이 들릴 때마다 찢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이다. 신명 난 버스 운전자와 신명 난 한 여행자.. 그리고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원주민들까지 기분 좋은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여정 신명 난 파타고니아의 버스 운전자 편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나는 이때부터 사부작사부작 버스 안 복도를 오가며 열린 창으로 바깥 풍경을 카메라에 담다가.. 성에 차지 않아 운전자 곁으로 다가가 양해를 구했다. 그곳은 버스 출입문 입구의 계단이었다. 아예 계단에 기대어 서서 버스 앞으로 다가오는 먼짓길과 버스를 따라다니는 창밖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요량이었다. 버스 운전자는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이때부터 코크랑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선 자세로 파타고니아의 비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목마른 자 우물을 판다(渴而穿井)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당시 내가 운전석 옆의 계단에서 바깥 풍경을 기록에 남기지 않었다면 지금 컴 앞에 등장한 풍경들은 그저 기억에 남았다가 어느 날 흐지부지 잊히고 말 것이었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파타고니아의 어느 시골로 가는 길.. 그때 만난 거대한 바위산과 이름도 알 수 없는 나무와 풀숲의 풍경들.. 그리고 엄청난 수량을 지닌 리오 코크랑(Rio Cochrane).. 정도가 기억에 남았다가 어느 날 사라지게 될 것. 



미지의 세계에서 여행자의 눈에 나타난 풍경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것들이며, 어떤 때는 그냥 지나칠 때가 있었으므로, 그때마다 후회가 남기도 했다. 여행 경험이다. 따라서 초행길의 여행지에 들어서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시간만 때우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 따위는 적성에 맞지도 않고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다. 


 


고사성어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渴而穿井, 갈이천정)는 이야기기 그저 나온 것인가..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는 뜻의 '갈이천청'은 사전에 준비를 하지 않아 때가 닥쳐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일컫는다.(어느 세월에..ㅜ) 자주 듣던 말이자 나에게도 해당되었던 명언이었다. 그런가 하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하니가 좋아하는 말이자 게으른 자를 빗댄 말이다. 



버스는 여전히 먼짓길 위를 적당한 속도를 유지한 채 달리고 있었고, 나는 계단에 기대서서 셔터음을 날리고 있었다. 때로는 바퀴가 돌을 밟아 덜컹거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셔터는 흔들렸으며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난간에 바짝 기대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창밖의 풍경은 전혀 모나지 않았으며 인심 좋은 어떤 아주머니 아저씨의 넉넉한 인상을 닮았다. 



이들의 모습에서 세월과 모질게 싸운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작은 풀꽃 하나 떨기나무 하나 조차 한아름 보듬고 파타고니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뭉게구름이 적당히 높은 곳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곳. 먼 산 안데스 줄기는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하니는 가끔씩 졸고 있었다. 또 승객들 대부분은 눈을 감거나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들은 자고 나면 봐 왔던 풍경이므로 창밖의 풍경이 맹숭맹숭.. 그저 그런 것이랄까..



나는 한순간, 한곳에 집중하며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찬스가 오면 셔터를 누를 심산이었는데 그때가 다가온 것이다. 먼짓길 주변의 지형이 서서히 변한 그곳에 올망졸망 방울처럼 매달린 숲이 나타난 것이다. 까칠하기로 유명한 녀석들이 무리를 지어 카메라 앞에 등장한 것이다. 이 식물의 이름은 물리눔 스피노줌 (Mulinum spinosum)으로 불리는 가시덤불(떨기나무)이었다. 



나무에는 앙증맞은 노란 꽃이 피는데 가시가 얼마나 촘촘하고 단단한지 자칫 잘못 건드리면 바늘에 콕 찔리 듯 통증이 단박에 느껴진다. (찔려 봤다.ㅜ) 그래서 독초 혹은 풀뱀이라는 별칭(neneo, hierba negra, hierba de la culebra)을 가지고 있다. 참 까칠한 이 녀석은 파타고니아 땅이 시작되는 뿌에르또 몬뜨(Puerto Montt)에서부터 땅끝 마을 우수아이아(Ushuaia)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가히 파타고니아의 대표 선수로 일컬을 만 한데.. 하니와 내가 이들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본 건 피츠로이(Fitz Roy)를 트래킹 할 때였다. 처녀 트래킹에서 산길 옆에 무리를 지어 자생하는 녀석들을 그때 만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 코크랑을 찾아가는 길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너무 반가웠다. 녀석들은 무리를 지어 순한 양 떼처럼 변신하여 카메라 곁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알고 보면 너무 까칠한 녀석.. 녀석들은 그 어떤 허기진 동물이라 할지라도 절대 입을 댈 수 없는 파타고니아의 강자라고나 할까.. 짧은 순간, 나는 집 나간 아이를 찾은 것처럼 기뻐하는 것이다. 가시덤불 속에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었던 것이며, 목마른 자의 우를 범하지 않은 결과물이 그때부터 줄줄이 카메라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La strada per andare a Cochrane, la destinazione nascosta della Patagonia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con mia moglie_Patagonia CILE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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