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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04. 2021

봄볕에 졸고 자빠진 아드리아해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봄바다

코로나 피해 바닷가에 나가봤더니..?!!



   이틀 전, 그러니까 서기 2021년 4월 2일(현지시각)의 날씨는 화창했다. 바람도 쇨 겸 운동도 할 겸 겸사겸사 바다가 보고 싶었다. 코로나 시대에 흔치 않은 외출이었다. 바를레타 앞바다의 방파제에 가면 인적도 드물 것이며 봄바다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던 것이다. 집을 나서면 그곳까지 10분이 채 안 걸리는 지근거리이다. 그런데 집을 나서서 눈에 띄는 건 바를레타 성(Castello di Barletta) 앞에 위치한 공원이 개방을 한 것이다. 



궁금했다. 코로나 때문에 늘 걸어 잠겄던 공원이 문을 연 것이다. 공원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시민들이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봄볕을 쬐고 있었다. 시민들은 많지 않았으며 주로 노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동안 잔디밭에는 풀꽃들이 빈자리를 찾을 틈도 없이 빼곡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들도 코로나가 덜 심하던 때와 달리 서로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봄볕은 또 얼마나 따사로운지 극락조 꽃이 나른해하는 표정이다. 공원을 가로질러 곧바로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음이 설렌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한 푸른 빛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걸음을 재촉하여 간 곳은 바닷가에 위치한 카페(Beach Bar Coffe) 앞이다. 바닷가에 가면 습관처럼 이곳에 들러 바다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다. 어떤 때는 거친 바람을 동반한 파도가 넘실대거나 또 어떤 때는 졸고 있는 아이들처럼 바다는 말이 없는 것이다. 이날은 파도도 없었지만 졸고 있는 아이들 같은 풍경 조차 없었다. 바다가 저만치 도망(?) 친 것이다. 

이런 때를 조수간만의 차에서 말하는 '간조'때가 된 것이다. 늘 바닷속에 잠겨있던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곳에는 맛조개가 서식하는 곳으로 관련 포스트 그 바다에 맛조개가 산다 편(자료사진)에서 물 때를 언급한 바 있다. 이랬다.


바다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어민들이나 낚시꾼들에게 물때만큼 중요한 게 없다. 어릴 때 바닷가나 강가로 놀러 다녔을 때도 어른들로부터 학습한 물때를 확인 후 다녔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노인의 모습이 그러한 것 같았다. 물때를 알아야 바닷물이 저만치 빠져나가 광활한 개펄을 드러내면 조개며 낚지 등 해산물을 채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때를 다시 한번 더 복습하면 이러하다.



봄볕에 졸고 자빠진 아드리아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낡고 오래된 포구 허리춤까지 차 올랐던 바닷물이 저만치 밀려간 간조의 모습이다.


주지하다시피 바다는 물이 불어서 해안선까지 밀려왔다가 다시 빠져나간다. 또 한 번 물이 들어왔다가 다시 한 반 나간다. 하룻만에 생기는 일이다. 이 같은 일은 대략 여섯 시간 간격으로 벌어진다. 옛사람들은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들물' 혹은 '물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바닷물이 밀려 들어온다 하여 '밀물'이라고 불렀다. 그런가 하면 '물이 나간다'거나 '물이 썬다'고 해서 '날물' 혹은 '썰물'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밀물과 들물은 같은 말이다. 그리고 바다는 하루에 두 번 물이 들었다가, 두 번 물이 나가는 것이다. 물이 최고로 많이 들어왔을 때가 만조라 부르고, 가장 많이 나갔을 때를 간조로 부른다. 이 같은 차이를 '조수 간만의 차'라고 학습한 바 있다. 동해안이나 남해안보다 유독 서해안이 이 간만의 차가 극심하다. 물때는 음력 기준으로 대략 15일 만에 다시 반복되곤 한다. 



내가 바닷가로 나선 시각은 용케도 간조 때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바닷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소환해 본 그 바다에 맛조개가 산다 편은 지난해 1월 25일에 발행한 글이므로 시간차가 두 달 이상 벌어져 있다. 이날 기온이 섭씨 23도씨였으므로 조개잡이가 적당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이 바닷가에는 세 개의 카페가 있는데 이날 '비치 바 커피' 카페와 또 한 군데의 카페는 문을 닫았다. 코로나 시대의 바닷가에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여지없이 문을 닫는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즐비한 장의자에 사람들의 도란 거리는 소리가 넘쳤을 텐데.. 그런데 방파제 입구의 풍경은 이곳과 사뭇 달랐다. 맨 먼저 만났던 바닷가가 썰렁한 느낌이었다면 방파제 입구는 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지난여름 잠시 바캉스 시즌을 즐겼던 시민들이 사리진 곳에는 풀꽃들이 자지러지고 있었다. 희한한 일이지.. 그동안 봄비가 오락가락하시더니 어떻게 때를 알고 한꺼번에 무수한 풀꽃 무리들이 꽃을 내놓는 것이다. 봄볕이 좋은 날 녀석들은 말을 붙일 수도 없을 정도로 통째로 졸고 자빠진 것이다. 



눈이 부셨다. 풀꽃들 너머로 삼삼오오 상춘객들이 오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마도 그들도 나처럼 사람들을 피해 바닷가로 나왔을 것이다. 이곳 시민들이 집콕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아드리아해가 조망되는 바닷가인 것이다. 그런데 방파제 입구에 위치한 카페에 모여든 사람들 다수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거리두기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그곳에는 주로 중년의 시민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무섭지도 않았을까.. 



이탈리아인들은 배타적인 듯 열린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누구인가 낯선 사람일지라도 마음을 터 놓는 순간부터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유럽의 다른 나라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그들의 지나치게 열린 문화 때문에 코로나 시대를 힘들게 살고 있는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이런 일은 미국이나 브라질 혹은 인도에서 나타난 코로나 성적표에서 도드라진다. 이날 집계된 코로나 성적표에 따르면 불명예의 1위를 차지한 미국은 누적 확진자 수가 3천만 명에 달하고 누적 사망자 수는 54만 명에 달한다. 또 브라질은 누적 확진자 수가 1천275만 명에 달하고 누적 사망자 수는 32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봄축제가 한창인 인도에서는 하루 확진자가 7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코로나 재확산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조금은 느긋(?)한 통계수치를 보이고 있지만 이들의 지나치게 열린 문화는 좀처럼 코로나의 기세를 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자(4월 3일)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도 나아진 게 없는 참담한 기록을 내놓고 있다. 신규 확진자 수는 21,261명이고 사망자 수는 376명이다. 현재까지 누적 사망자 수만도 11만 명에 이른다. 대략 사정이 이러한 때 내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 인근의 아드리아해와 안드리아 평원은 큰 위안이 되어주는 것이다. 잠시나마 코로나로부터 해방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랄까..



그런데 방파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또 다른 걱정을 하게 된다. 도심을 벗어나 이곳까지 진출한 젊은이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방파제를 활보하는 것이다. 이날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은 딱 한 사람이었고 중년층의 남자였다. 



바닷바람이 살랑댓지만 봄볕이 너무 따사로워 상의가 땀에 젖기 시작했는데.. 이곳에서는 때 이른 일광욕과 해수욕을 시작하는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일광욕을 하는 반라의 여성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자리를 깔고 한 곳에 엉겨 붙어있었다. 엉겨 붙거나 말거나.. 마스크 착용은 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었다. 청춘과 안 청춘의 차이가 이런 것이란 말인가.. 



아무튼 바닷가로 나오길 참 잘했다. 잠시나마 봄볕에 졸고 자빠진 봄바다에 빠질 수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실루엣이 발아래에 오롯이 펼쳐지고 있었다. 작은 홍합의 씨앗(?)들과 연초록 파래들이 바위에 달라붙어 속이 말갛게 드러나 보이는 방파제 옆에서 동시에 졸고 자빠진 것이다. 대자연이 연출한 아름다운 작품이 나의 뷰파인더를 자극했다. 



영상, 봄볕에 졸고 자빠진 아드리아해



*영상에 오롯이 남겨진 간조 때의 갯벌(한국과 달리 주로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과 아드리아해의 모습이 살아 숨 쉰다. 이하 사진으로 몇 장면을 감상한다. 이 바닷가에서 가장 좋아하는 풍경 중 하나이다.







바를레타의 명소 일 뜨라부꼬(Il Trabucco di Barletta)




바를레타 시내를 벗어나 바닷가 방파제에 들어서면 멀리서 바다로 손을 내민 듯한 나무로 된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이 조형물의 이름은 일 뜨라부꼬(Il Trabucco)이다. 일 뜨라부꼬는 원시형태의 고기잡이 시설이다. 기다랗게 바다로 향한 나무 기둥에 줄을 매달고, 그물을 바다에 늘어뜨려 일정기간 동안 기다렸다가 나무로 만든 윈치를 돌려 그물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당시 완공 직전에 현장에서 만난 조업은 형편없었다. 달랑 손바닥만 한 물고기 몇 마리와 해초들이 전부였다.ㅜ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탈리아 남부 아드리아해의 항구 시스템 관리 기구의 회장인 우고 빠트로니 그리피(Ugo Patroni Griffi)와 코시모 깐니토 바르르레타 시장(il sindaco di Barletta, Cosimo Cannito)에 따르면, 일 뜨라부꼬(Molo di Levante라 부른다.)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구조물로 부른다. 두 사람이 양해각서에 서명하면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된 것이다. 옛날의 한 어구 형태를 부활하는 데 든 비용은 60만 유로였다. (출처: https://www.barlettanews24.it/)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짙푸른 아드리아해는 하늘과 어우러져 더없이 아름다웠다. 코로나 시대가 아니라면 이렇듯 평범해 보이는 바다가 가슴 깊이 와 닿았을까.. 뷰파인더가 머무는 등 뒤에는 청춘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간간히 마스크를 내려 심호흡해 봤지만 그게 성에 찰 리가 있겠는가.. 




만조에서 간조를 거쳐 다시 만조가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2시간(정확히 11시간 20분 정도) 주기로 한 바퀴 돌게 된다. 즉 조금에서 사리를 거치면서 다시 조금에 이르기까지 걸리는데 15일이 필요한 것이다. 이 과정은 1물, 2물, 3물, 4물, 5물, 6물, 7물(사리), 8물, 9물, 10물, 11물, 12물, 13물, 14물, 15물(조금)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주기를 선조님들께선 한물, 두메, 무릎 사리, 배꼽 사리, 가슴 사리, 턱 사리, 한사리, 목사리, 어깨 사리, 허리 사리, 한 꺾기, 두꺽기, 선조금, 앉은조금, 한조금으로 불렀다. 참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물 두메로 다시 이어지는 게 바다의 살아있는 변화무쌍한 모습이라고 쓴 기록은 서기 2020년 1월 22일이었다. 그동안 세상은 몰라보게 달라진 것이다. 늘 바라보던 풍경 속에 전혀 원치 않던 한 녀석이 꼽사리 낀 것이다. 불과 한 해 전의 일이다. 부활절을 하루 앞둔 이곳 바를레타는 점점 더 긴장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이다.


La bassa marea dell'Adriatico_il mare di Aprile BARLETTA
il 03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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