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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10. 2021

달팽이로부터 배운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6월

철학하는 달팽이..?!!


   어느덧 사흘 전의 일이다. 나는 아침 운동을 위해 집을 나섰다. 바닷가로 가려면 이곳 바를레타의 상징물인 바를레타 성(Castello di Barletta)을 거쳐야 했다. 성 앞에는 시민들의 휴식처인 공원이 있고 그곳에는 대여섯 그루의 유칼립투스(Eucalyptus globulus) 고목이 자라고 있다. 공원의 모두 다섯 군데인데 그중 한 그루는 남쪽 문 바깥에서 자라고 있다. 



내가 유칼립투스 나무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됐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머물 때 쎄로 산 끄리스토발(Cerro San Cristóbal) 공원에서, 하니와 함께 아침 산책을 하던 중 새잎을 따다가 향을 맡으면서부터 였다. 호주에서 많이 자라고 있는 이 나무는 코알라의 식물로도 유명하다. 코알라의 생김새만큼이나 독특한 향기를 지닌 이 나무는 전 세계에 300종 이상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나무는 높이가 100m 이상인 것도 있다고도 한다. 이곳에서 자라는 나무도 20m에 육박하는 거대한 나무이다. 바오밥 나무에 비견되는 참 특이한 나무인데 나무의 껍질은 종이장처럼 얇게 잘 벗겨진다. 탈피를 하며 자라는 것이다. 줄기의 겉모습은 매끈한 시멘트 기둥처럼 보이기도 한다. 잎사귀는 홑잎으로서 가죽 같은 질감이 나고(자료사진 참조),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흰빛이 돌고 어긋나거나 마주나는 나무이다. 




영상, LA LUMACA_달팽이로부터 배운다




잎을 따서 코에 대면 멘타(La menta) 향 보다 신선한 향기가 풍긴다. 이 나무에서 유칼리유를 채취해 약으로 쓰는데 호흡기와 정신적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하며 벌레를 퇴치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이 나뭇잎의 향기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서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것이랄까.. 



공원에서 산책을 할 때나 바닷가로 운동을 갈 때 늘 마주치는 나무가 유칼립투스인데.. 어느 날 이 나무 곁을 지나치다가 달팽이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달팽이들은 주로 바닷가 풀숲이나 언덕이나 평원 등지에서 떼를 지어 살고 있다. 그런데 녀석은 혼자 이 나무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녀석은 유카립투스 나무의 향이 좋았을까..?)



이날도 혹시나 하고 살펴봤더니 녀석은 특유의 몸짓으로 느리게 느리게 느려 터지게 유칼립투스 나무둘레를 기어 다니는 것이다. 얼마나 느려 터졌는지 한 뼘의 거리를 5분은 걸리는 듯했다. 운동을 가다 말고 모처럼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지난해 집에서 길렀던 달팽이 기족들


지난해.. 그러니까 서기 2020년 5월 21일, 하니가 바닷가에서 데려온(?) 달팽이는 곧 반려동물로 급변하여 테라리움 속에서 키워본 적 있다. 처음에는 두 마리였는데 개체수가 적어 보여 11마리까지 늘려 키우며 신기해했던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달팽이의 정체를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녀석들의 삶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나는 그때 달팽이가 이빨(치설이라는 돌기가 난 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이빨 수가 2만 개를 넘는다고 한다. 입을 대는 순간 꽃잎이 싹둑 잘려나가는 걸 목격한 바 있다. 그리고 꽃잎을 뜯어먹고 배설물을 테라리움 곳곳에 발라놓았다. 따라서 청소를 자주해 주어야 하고 아이 돌보듯 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녀석들의 삶을 관찰하며 이른바 '영물(靈物)'아라는데 동의를 하게 된 것이다. 



모든 가치를 인간 중심에 두는 것은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랄까..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녀석들은 눈도 없고 손과 팔다리도 없이, 오직 더듬이 하나로 살아가는 것이다. 얼마나 불편한 삶이겠는가.. 싶었다. 



그런데 이날 아침 만난 달팽이 한 녀석을 통해 그가 철학자다운 면모를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녀석은 절대로 서두르는 법이 없다. 수직의 나무껍질을 이동하는 동안에도 절대로 추락하지 않는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짧지만 먼 거리를 정확히 이동하는 것이다. 만약 덤벙대거나 허둥대는 인생을 보거나, 나의 삶을 돌아볼 때 달팽이처럼 신중했다면 삶을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람들은 "실수를 통해 삶을 배운다"라고 말한다. 인정한다. 실수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고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다. 인생은 80년.. 오래 살아봤자 100년이다. 80년 넘게 살다 간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이전의 삶과 비교가 안 되는 모습이다. 그 시간을 보다 행복하게 즐기려면 촌음을 아껴 써야 할 게 아닌가. 이날 달팽이가 내게 말했다. 서두르면 망치는 게 인생이란다.



Una bella vista del nostro villaggio_BARLETTA
il 09 Giugn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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