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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26. 2021

7일간의 아름다운 기록

#1 우리 동네 바를레타에서 7일 동안 생긴 일 

지금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우리네 삶의 기록이다.


   서기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날씨는 대체로 화창하며 오후 5시 현재(현지시각) 수은주는 17℃를 가리키고 있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다른 날씨를 보이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겨울 문턱에 들어섰다면 이곳은 우기에 해당한다. 물론 겨울이다. 특히 이탈리아 남부는 북부와 달리 기온이 영하를 기록하는 일이 드물거나 아예 보지를 못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지난 3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영하의 온도를 기록한 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우기)이 되면 매우 음산한 날씨가 지속되곤 한다. 바를레타 시민들의 온차림을 보면 우리나라의 한 겨울 차림과 별로 다르지 않다. 수은주가 대략 10℃를 가리키면 사람들은 두툼한 겨울옷에 목도리를 두르거나 장갑까지 완벽한 겨울 차비를 하게 된다. 이런 차림은 최근에 자연스럽게 목격되기 시작했다. 우기에 접어들면서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체감 온도가 떨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 집에도 전기 히터나 가스난로를 가동한다. 잠자리에는 전기담요가 필요하다. 


서기 2021년 11월 5일 오전의 기록




이번 포스트에 쓰고 있는 7일간의 아름다운 기록은 이런 날씨가 한몫 거들었다. 우리가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FIRENZE)서 살다가 이곳 바를레타로 이사를 온 이유가 기록 속에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 포스트에서 수차례 언급했지만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이유는 하니의 그림 수업 때문이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퓌렌쩨서 어느 날 한 예술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의 이름은 루이지 라노떼(LUIGI LANOTTE).. 


그녀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가 5년 전에 그린 작품(바를레타에 살고 있는 어느 여 의사의 초상이다)


퓌렌쩨 예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순수미술을 하는 보기 드문 화가였다. 그를 만난 장소는 퓌렌체의 재래시장 산타 암부로지오(MERCATO DI SANT'AMBROGIO)에서 지근거리에 위치한 롯지아 델 뻬쇄(Loggia del Pesce)였다. (아래 첨부한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기록에 따르면 이곳은 1568년 퓌렌쩨 공국의 매디치 가문의 코시모 1세(Cosimo I de' Medici, 1519년 6월 12일~1574년 4월 21일))가 조르지오 봐사리(Giorgio Vasari )에게 뽄떼 베끼어 옆에 위치한 아르키부지에리(Lungarno degli Archibusieri)를 본떠서 물고기를 전시(판매) 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아래 자료사진이 뽄떼 베끼오 옆의 룽가르노 델리 아르키부시에리 풍경이다. 따라서 그곳에는 기다랗게 계단이 시설되어 있고 아치형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는 곳이다. 

루이지는 그 계단에 당신이 그린 작품들을 늘어놓고 관광객을 상대로 판매하는가 하면, 현장에서 직접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퓌렌체에 상주하고 있는 화가들 다수는 연필로 캐릭터를 주로 그리거나 풍경을 주로 그렸다. 


하지만 루이지는 인물을 중심으로 작품을 그렸고 가끔씩 퓌렌쩨의 고풍스러운 건축물 주변을 배경 삼아 화폭에 담았다. 어느 날 하니와 함께 재래시장을 다녀오다가 루이지와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이다. 운명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는 계단에 펼쳐둔 루이지의 작품에 호감을 가지는 한편, 그에게 그림을 배울 수 있는지 등에 대하여 묻게 됐다. 그때 처음으로 루이지는 생전 듣보잡이었던 이탈리아의 한 도시를 내게 일러주었다. 그곳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바를레타였으며, 이탈리아 반도를 장화에 비교할 때 장호 뒤꿈치 바로 아래에 위치한 곳이었다. 



루이지는 "그림을 배우려면 우리 집이 있는 바를레타까지 오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마음의 정리가 되면 연락을 하겠다" 루이지의 메일 주소를 적어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리고 해가 바뀐 어느 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 루이지한테 그림 배우고 싶어..!"



루이지는 바를레타로 돌아갔고 우리는 퓌렌체서 살고 있었다. 그해 겨울은 요즘 우리가 느끼고 있는 우기처럼 도시를 음산하게 만들고 있었으며, 죽기 전에 꼭 한 번 살고 싶었던 퓌렌체는 점점 우리를 다른 곳으로 떠밀고 있었다.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준 미켈란젤로의 도시는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어준 것이랄까.. 그런 어느 날 우리는 재래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가 루이지를 다시 만났다. 너무도 반가웠다. 그는 이날부터  롯지아 델 뻬쇄와 산 로렌죠 성당 옆 광장 두 군데서 그림을 전시하고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위 자료사진은 그때 촬영되었으며 당시 작품들 다수는 모두 판매되었다.



지난 11월 5일 아침 바를레타는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면서 우산을 늘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일기예보를 자주 들여다보았다. 이날은 몇 가지 소묘 작품들 중에서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루이지의 그림 수업 지도는 엄격했다. 



그는 동시통역 수업 중에 가끔씩 "예술학교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면서 그녀의 수업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학교에서는 교수님들이 너무도 엄격하여 학생들이 눈물을 펑펑 흘리곤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수업 중에는 몇 마디의 말이 전부일뿐 스스로 대상을 깨닫게 만드는 혹독한 훈련이 있었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늦깎이 학생인 하니에게는 많은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과제가 주어지면 첫 단계부터 마지막까지 차근차근 대상을 이해하고 정확히 선을 그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작품이 하나둘씩 완성되어 나갔다.



서기 2021년 11월 8일 오전의 기록



바를레타 구도시 전체는 대리석으로 만든 도로와 건축물이어서 나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부른다.


지난 11월 8일 바를레타는 밤부터 아침까지 부슬부슬 보슬보슬 주르륵 쭉쭉.. 비가 오셨다. 우리는 이날도 어김없이 시내 중심(구도시)의 집에서 출발하여 유서 깊은 여관 깐띠나 델라 스퓌다(Cantina della Sfida) 앞을 지나치는 것이다. 바를레타의 정체성이 이곳에서 발현되었다고 관련 포스트를 통해 말한 바 있다.



비에 촉촉이 젖은 깐띠나 델라 스퓌다..



깐띠나 델라 스퓌다 앞 도로는 마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폭으로 일방통행로이다. 한 때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번 부자들이 주로 살았던 곳. 당시도 오늘날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돈과 권력을 쥔 인간들은 보다 가난하고 약한 시민들에게 우쭐댔던 것일까.. 



이 도시의 정체성이 이곳으로부터 나왔다. 어느 날 바를레타인(이탈리아인)들이 프랑스인과 13:13으로 맞붙어 혼내준 이후로 이 도시의 이름은 라 디스퓌다 디 바를레타(LA DISFIDA DI BARLETTA)로 불리기 시작하며 어느덧 518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루이지 화실까지 거리는 걸어서 3~5분이면 족하다. 주변은 고급진 리스또란떼가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비록 코로나 시대로 손님이 급감했지만 이곳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곳이 깐띠나 델라 스퓌다가 위치한 아름다운 길..



화실에 도착하면 맨 먼저 루이지의 환대를 받는다. 그는 우리 내외를 위해 커피를 끓여놓고 기다렸다가 도착하는 즉시 주방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누고 잠시 담소를 나눈 다음에 수업이 시작된다. 수업 시작은 정확히 오전 8시 30분이며 3시간 동안 진행된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서기 2021년 11월 10일 오전의 기록




서기 2021년 11월 10일,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깐띠나 델라 스퓌다 앞을 걷고 있다. 잠시 비가 그쳤다. 수업은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하여 3시간의 수업이 이어지고 11시 30분에 끝난다. 그동안 거의 쉬지 않고 그녀는 까발레또(이젤) 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짬짬이 루이지의 지도가 이어진다. 영상에서 확인되는 루이지의 지도는 그녀가 미처 그려내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거니 너무 과도하게 작업된 부분을 지우는 등 지도를 통해 그녀가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까칠한 시간이 3시간 동안 이어지고 집중에 집중을 통한 무념무상의 경지로 다가서게 된다.



그녀는 "이때가 가장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작품에 몰두하고 있으면 세상만사가 잊히는 것이랄까..



그녀는 아들 벌 되는 그림 선생님의 지도를 통해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수업 인양 착각을 하게 된다. 그림 수업은 도를 닦는 과정과 비슷했다. 통역을 하면서부터 점점 더 그렇게 느껴지며 미켈란젤로를 보다 더 위대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초보자들은 맨 먼저 마음을 비우고 대상에 접근해야 한다. 대상 전체를 먼저 파악하고 1단계 소묘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함이다. 대상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형체를 잘 잡는 것이다. 까르본치노(CARBONCINO, 목탄)로 형체를 구성한 후 차근차근 구체적인 대상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루이지는 그 단계를 7단계로 나누고 있었다. 1단계가 향체를 단순화하는 과정이었다면 7단계는 대상의 구체적인 모습까지 섬세하게(delicato, 디테일) 그려내는 것이다. 대상에 집중하여 잘 관찰해서 그려내는 것.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의 적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루이지를 맨 처음 퓌렌체서 만났을 때 그저 거리의 화가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그로부터 수업을 받는 동안 그는 준비된 예술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쳇말로 '돈도 안 되는' 순수미술에 사활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알아본 그녀의 선견지명도 대단하다. 루이지는 빛의 마술사 램브란트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당신의 팔에 아예 문신까지 새겼다. 그가 요즘 그리는 작품 또한 빛을 이용한 작품들이며 매우 단순해 보인다. 그러니 그런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7일간의 아름다운 기록에 루이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Un ottimo record per una settimana della Disfida di Barletta
il 25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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